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반발이 연초부터 노동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노동계와 정계 일각에서 삼성의 노동 탄압에 대한 고발이 잇따르고 있으며, 지난해 말 삼성 해고자 모임이 오는 10월 예정된 ILO아태지역총회에서 삼성의 노동 탄압을 고발키로 결의(본지 560호 보도)하는 등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반발이 쏟아지고 있는 것. 특히 삼성 해고자 모임이 ILO총회에서 전세계 노동관계자들에게 ‘노사관리지침’ 등 삼성그룹의 노동 탄압 관련 극비문건 등을 공개키로 하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지에서는 지난 87년부터 수차례 작성, 보완된 것으로 알려진 삼성의 노무관리 관련 극비문서를 입수, 이 문서에서 드러난 삼성의 노동 탄압을 집중 해부했다.삼성이 노사관리에 관심을 갖고 내부 노사관리지침서를 극비로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7년부터다.고 이병철 회장에 이어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바통을 이어받은 시기다.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현 구조본부)이 삼성경제연구소와 노무관리 전문가를 동원해 작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노사관리지침서’는 지난 87년의 ‘345수호전략’을 비롯해 88년 ‘노사관리지침’, 89년 ‘비상노사관리지침’ 등이 있다.이후 90년대 들어서는 ‘345수호지침’을 근간으로 삼성 계열사에 의해 수차례 수정·보완된지침서들이 실제 노사관리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삼성의 ‘노무관리 법전’으로 활용되고 있다.삼성 노사관리지침의 근간이 되는 ‘345수호전략’은 노조설립 분위기가 가장 활발한 3, 4, 5월을 주의해 노조결성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의 ‘345수호전략’과 이것을 기본 툴로 만들어진 노무관리지침서들이 실제 노조 말살과 노동 탄압에 이용된 사례들이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다”며 “전략지침서 내용을 보면 복수노조금지조항을 철저히 활용하고 시청 및 군청, 경찰서 등에 삼성관계자를 배치,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노조 설립을 원천봉쇄한다는 전략 등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또 “그동안 삼성그룹과 계열사에서 유출된 극비문건들이 수건에 달하지만 삼성에 의해 언론에서 조차 보도되지 않아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극비문건들을 보면 삼성이 무노조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동원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 계열사에서 유출된 극비문서’

본지에서 입수한 삼성의 극비문서에서는 삼성의 노무관리 실태와 노조말살 전략 등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었다.‘절대 복사 유출 금지’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 극비문서는 삼성그룹의 ‘345수호전략’을 근간으로 수정·보완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삼성그룹 계열사의 구조조정과 노조설립에 대한 상황별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제시하고 있다.지난 98년에 작성된 이 극비문서는 삼성그룹 계열사에서 유출된 것으로 당시 구조조정 계획에 따라 일부 수정·보완됐으며, 상황별로 세분화된 시나리오 및 대응방안까지 포함하고 있는 등 삼성그룹의 무노조 전략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특히 이 극비문서에는 삼성 사업장 관할 노동청, 시청, 검찰청, 경찰서 등 ‘관공서 업무담당자 내사람화’라는 전략을 통해 노조설립이나 노동자 집단 반발에 미리 대비한다는 지침까지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극비문서에서 삼성은 노동부 근로 감독관, 직업안정과 등 ‘기존 라인을 강화하라’는 지시와 함께 시청, 검찰청, 경찰서, 관할 파출소 등 관할 관공서는 물론 당시 기무사, 안기부 등 정보기관과 노동계, 언론계 등에 대해 내부 담당자를 정하고 이들이 관련 관공서 담당자를 ‘내사람’으로 포섭하라는 지침까지 만들었다.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관공서 직원들을 포섭한다는 전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노동계 한 관계자는 “노사관리지침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동안 삼성의 노조 말살과 노동 탄압 등이 가능했던 것은 관할 관공서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실제로 삼성 계열사 사업장을 관할하는 시청, 구청에는 삼성 인사팀 직원들이 상주하면서 노조 설립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30장에 달하는 이 문서는 ‘구조조정 및 대응방안’과 ‘노사관리 비상대책’으로 나눠 조직관리 및 노조 설립에 대한 상황별 시나리오와 대응방안을 주로 다루고 있다.문서에 따르면 ‘모임 및 단체 일일 활동 감시 강화’를 위해 매일 3인 이상 모임을 체크하고 퇴직인력까지 특별관리를 실시, 사내 결연자를 통해 퇴직인력의 최근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또한 제2 노사조직인 ‘번개팀’을 가동, 3분 대기조를 편성하고 사내 분규나 협력업체의 태업시 이들을 투입해 문제 상황을 조기 진압하도록 했다.번개팀은 노무관리T/F(태스크포스)팀 인력 중 A급 인력 10인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시나리오별 행동요령을 숙지, 도상훈련까지 받는다.

이와 함께 노무관리 관련 간부들에 대해서는 방어조, 대응조, 순찰조, 격리면담조 등으로 나눠 상황별로 업무를 부여하고 월 1회 비상훈련까지 실시하도록 지침을 정했다.특히 문서 마지막에 4장 분량의 ‘가상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를 첨부, 실제 노조 설립을 막기 위한 사전 전략을 별도로 구성하고 있다.시나리오 중에 노조설립 신고서가 접수된 정보를 입수할 경우 ‘접수자 그림자 실시’라는 특이한 항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이 항목만 보더라도 삼성에서 노동자 감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또 접수자 및 관련인물 해고 방안 강구, 사업장 순찰 강화, 지역 및 중앙언론 차단 작전 등 언론대책 준비 등 세부 시나리오까지 정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사후 대책으로는 접수자 신병을 확보해 격리면담조가 대기하고 있는 정해진 장소로 격리시키라는 지시까지 나와 있다.이에 대해 삼성그룹측은 “현재까지 내부문건에 대해 유출된 적이 없고 그동안 삼성의 ‘노사관리지침’ 등 극비문건이라고 나온 것들은 대부분 허위문서일 뿐”이라며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회피했다.이 문건이 유출된 삼성 계열사 관계자는 “당시 직원이 개인적으로 쓴 것이지 유출된 것이고 회사에 의해 공식적으로 작성되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성환 삼성일반 노조위원장

“삼성, 유령노조 적극 활용”공무원에 급여 지급 ‘준 삼성직원화’전략삼성의 노사관리지침서 등 내부문건에 대해 취재하던 도중 만난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기자에게 삼성 비서실의 노사관리지침서를 요약한 것이라며 관련 자료를 꺼내 보였다.김 위원장은 이 자료에 대해 “삼성그룹이 당시 비서실(현 구조조정본부)의 노무관리 기본방침에 의거해 각 계열사의 실천전략을 모아 종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 자료에 따르면 삼성은 노사관리 전략을 1단계 노사관리 투자단계(1~3월), 2단계 분규요소 제거단계(4~8월), 생산성 노사관리단계(9~12월) 등으로 나누고 각 단계별로 전략을 세분화했다.그룹의 노사대책 조직운영을 강화하기 위해 5개 외부 노사정보기관을 밀착관리하고, 사업장의 해고노동자 동향 및 사업장내 노사정보 파악토록 했다.

또 노사관리 세부실천 사항으로 일일 노사동향 및 주간 노사동향 보고 및 전사업장 정보공유를 의무화했으며, 지도관찰대상사원을 A, B, C급으로 분류관리해 C급은 관리대장 비치 후 특별관리를 하도록 했다.이와 함께 문제퇴직사원에 대해 일일동향 관리를 강화하고 유관기관(노동부, 노동사무소, 군청, 시청, 경찰서, 언론기관 등)과의 유대관계 지속 강화를 통해 ‘준사원화’ 관리목표를 확정해 집중 관리하도록 지시하고 있다.김 위원장은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노사관리 상황실을 운영하고 유령노조 설립을 적극 활용, 노조 설립 주동자들을 해고 또는 격리시켜 타 노동자들과의 접촉을 막고 있다”며 “유령노조의 완벽한 설립을 위해 매일 시청 또는 군청에 지킴이를 보내고 관공서 공무원들에게 매월 급여를 지급하면서 ‘준삼성직원화’ 전략을 통해 유사시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으며 무노조 경영을 지켜오고 있다”고 비난했다.

삼성 해고자 모임 관계자

“ILO 총회때 삼성 노동비리 폭로”지난해 삼성 해고자 모임에서 ‘오는 10월 예정된 ILO아태지역총회에서 삼성의 노동 탄압을 고발하겠다’고 결의한 이후 해고자 모임 핵심멤버를 주축으로 구체적인 작업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삼성 해고자 모임 한 관계자는 “삼성의 노동 탄압에 대해서는 국내 언론에 의해 보도되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ILO총회를 계기로 전세계 노동관계자들에게 삼성의 노동 탄압을 알리기로 했고 최근 외신기자 3명과 전 ILO 국장을 만났다”며 “부산에서 열리는 ILO총회에서 삼성의 노동 비리를 폭로하기 위한 것이었고 총회에서 발표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ILO총회를 겨냥해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관계된 자료를 공개하기 위해 현재 모임 관계자들이 자료를 취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이와 함께 올 봄에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을 고발하는 “삼성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책도 발간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노동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삼성의 노동 탄압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들이 공개되면서 삼성의 무노조가 크게 위협을 받고 있다”며 “올해도 삼성의 노동 탄압에 대한 반발이 계속되는 등 반발여론이 확대되면서 삼성의 무노조 경영이 전환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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