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여야가 지난 14일 드루킹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법 도입에 합의했지만 여전히 핵심인 특검 수사의 내용과 범위를 놓고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한목소리로 ‘성역 없는 특검’을 주장하는 반면 여당은 ‘대선 불복 특검’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7일 드루킹이 조선일보에 보낸 ‘옥중편지’ 내용은 김경수 생환에 올인하던 여당에 치명타가 됐다. 김경수 후보를 조사하지 않고서는 드루킹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수 없게 됐다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이다. 더욱이 한국당은 ‘드루킹-김경수-청와대’ 간 연결고리를 입증할 ‘제보’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 ‘文의 남자’에서 ‘위기의 남자’로... “검·경이 못 밝힌 ‘큰 건’ 특검에서 밝힌다!”
- 역대 13번째 ‘특검’, 6.13 地選 이후 수사 시작될 듯... 성과 미미 우려도


이른바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신임 원내대표는 지난 14일 야당의 특검 요구를 ‘대선 불복’으로 규정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지난 대선이 촛불 혁명에 의해서 탄생한 정부지 댓글 공작을 통해서 탄생한 정부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특검보다도 추경을 통과시키기 위해 하루빨리 국회가 정상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신임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드루킹 특검 수사가 김경수 후보를 정조준하는 것만은 막아보겠다는 의중으로 비친다.
 
경찰, ‘댓글 조작’에만
국한된 수사로 ‘빈축’

 
그러나 지난 17일 드루킹 김동원 (49·구속 기소)씨의 ‘옥중 편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드루킹 특검’의 핵심은 더욱 분명해졌다. 탄원서란 이름으로 A4 용지 9장 분량의 옥중편지에는 “다른 피고인의 조사 시 모르는 검사가 들어와 ‘김경수와 관련된 진술은 빼라’고 지시했다고 들었다”며 “경찰은 믿을 수 없고 검찰은 수사를 축소하려 한다”는 주장이 포함됐다.

그러면서 김 씨는 “김경수 전 의원이 매크로 댓글 작업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보고도 받았다”며 “김 전 의원에게 속았다”는 주장을 폈다. 김 씨는 “검·경이 사건을 축소하고 나와 경공모에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도 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경찰과 정치권에 따르면 경찰의 수사가 특검 수사로까지 발전한 이유는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 일당이 ‘민주당원’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이에 따라 경찰 수사 초기에는 수억 원대에 이르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 운영 자금이 민주당에서 흘러들어 간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드루킹 일단 가운데 한 명이 2012년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의혹도 잇따랐다.
 
하지만 경찰은 드루킹 일당과 민주당의 관련 여부가 아니라 댓글 조작 혐의에만 국한에 수사를 했다는 빈축을 낳았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드루킹 일당의 혐의만 더 늘어났다. 경찰은 또 드루킹의 주요 범행 동기인 ‘인사 청탁’ 여부도 확실히 밝혀내지 못했다. 야권은 드루킹과 김 후보 사이에 ‘일본 오사카 총영사’와 ‘청와대 행정관’ 이외에 더 많은 청탁이 오갔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가 드루킹 일당의 여론 조작과 공직을 맞바꾸는 부도덕한 거래를 한 것이다”라며 “물론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그 자체로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 경찰과 검찰이 밝혀내지 못한 부분을 밝히기 위해 특검 도입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드루킹 특검’의 최대 쟁점은 ‘수사 범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드루킹에 국한해 수사할지, 김경수 후보의 개입 여부와 자금의 출처, 또 다른 청탁 등으로 확대할지 여부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8일 ‘드루킹’ 김동원 씨가 조선일보에 편지를 보내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사전에 댓글 조작을 보고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관련 “특검이 왜 필요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며 “민주당은 이래도 특검 수사를 축소하려 발버둥 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인 17일에도 “특검의 수사 범위를 제한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며 "김경수가 수사 대상에서 빠진다면 특검을 왜 하나.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 아닌가”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한국당의 이 같은 자신감은 홍문표 자유한국당 사무총장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홍 사무총장은 지난 15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당에 들어온 제보 내용에 대해) 공개할 수 없지만 상당히 저희들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국민들께서 줬다. 그걸 지금 미리 얘기할 수 없다.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다”며 문 대통령 관련 부분에 대해서도 “상황들이 앞으로 하나하나 이렇게 나오리라고 본다”고 했다. 이는 향후 특검이 실시됐을 때 ‘드루킹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과 김경수 후보, 청와대 간 연결고리를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풀이된다.
 
김경수, 지선 승리 땐
특검 흐지부지 가능성

 
다만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도 특검 임명과 수사 개시 시기는 6.13 지방선거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법 통과 이후, 야 3당 교섭단체는 대통령으로부터 특검후보자추천의뢰서를 받은 날부터 5일 안에 후보를 추천하고, 대통령은 국회 추천을 받은 날부터 3일 안에 특검을 임명해야 한다. 또 특검 사무실 준비 등 20일간의 ‘수사 준비 기간’을 거쳐 공식 수사가 시작되기까지 적어도 한 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의 경우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후부터 공식 수사 개시까지 34일이 걸렸다.
 
그런데 만약 김 후보가 당선된 이후 특검이 실시된다면 김 후보는 국민에게 무혐의 심판을 받았다는 식의 프레임을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정치권에서 특검이 시작되더라도 이런 난관들을 돌파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겨나는 이유다.
 
한편 여야는 지난 14일 쟁점인 특검 추천 방식과 수사 범위 등을 합의했다. 특검 수사범위는 ▲ 드루킹과 드루킹이 연관된 단체 회원 등이 저지른 불법 여론조작행위 ▲ 수사과정에서 범죄 혐의자로 밝혀진 관련자의 불법행위 ▲드루킹의 불법자금과 관련된 행위 ▲ 의혹 관련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사건 등을 포괄하도록 했다.
 
특검법안 명칭에 그동안 여야가 민감하게 반응했던 ‘대통령’, ‘대선’,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 등의 표현은 모두 제외됐다. 협상 과정에서 한국당은 수사대상에 김경수 후보 이름을 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그러면 수사대상을 김 후보로 한정할 것이냐”고 반발해 ‘김경수’ 이름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사범위에 ‘수사과정에서 인지된 관련자의 불법행위’가 포함된 만큼 김 후보에 대한 수사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역시 1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법안 명칭에서 대통령과 민주당을 제외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드루킹 사건에서 인지된 사실이나 관련성 있는 사람조차 제외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김경수 의원이나 그 누구도 성역 없이 포함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특검이 가동되면 현재 검찰과 경찰의 수사는 중단된다. 검찰은 지난달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 2건을 대상으로 매크로를 활용해 여론을 조작한 혐의로 드루킹 일당 3명을 재판에 넘겼다.
 
경찰은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수사를 집중했던 네이버 외에도 최근 다음과 네이트를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망을 넓혔다. 특검은 검·경으로부터 관련 수사 자료를 넘겨받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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