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전두환, 최종진압 작전 지시”…美 국무부 비밀 문건서 드러나
헌트리·피터슨 목사 부인 “전두환 쿠데타로 5.18 발발”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38주년을 맞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민간 차원의 실체적 진실 규명에 속도가 붙고 있다.

38년 만에 최초로 시위대와 계엄군 대치 등 미공개 5·18 영상물이 상영되고 미국 외교 기밀문서 국문 번역본이 알려진다.

게다가 그간 광주의 침상을 세계에 알린 고 찰스 헌트리·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전두환 씨의 집단발포 배후 등 진상규명에 얼마만큼 다가설지 주목되고 있다.

재출간 ‘전두환 회고록’도 출판 금지…“허위투성이”
전씨의 일방적 주장 입증할 근거 확인된 것 없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 씨가 전남도청 진압 작전을 직접 지시했고, 북한군 광주 투입설도 유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SBS는 지난 14일 ‘8시 뉴스’를 통해 1980년 5.18 당시 미국 국무부의 비밀 전문을 입수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 비밀 전문에 따르면, 1980년 5월 25일 오전 9시 머스키 당시 미 국무장관은 한·중·일 대사관 등에 보낸 비밀 전문에서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당시 보안사령관)이 (5.18민주화운동에 관해) 군사 작전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아울러 머스키 전 장관은 “마지막 협상 시도가 실패하면 진압 작전이 시작될 예정”이라며 “이 경우 합참의장이 미국에 먼저 알려주기로 약속했다”고도 전했다.

미국 기밀문서 발견에…

5월 26일에는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가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후, 머스키 전 장관에게 긴급 전문을 보내 ‘27일 0시경 진압 작전이 시작된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 후, 미국 시각 5월 26일 오전 7시, 머스키 전 장관은 ‘한국 상황 보고서’를 통해 ‘전두환 장군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광주 진입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또 “(대한민국의) 합참의장이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27일 0시부터 계엄군을 투입한다고 알렸다”고도 전했다. 즉, 전 씨가 민주화운동에 나선 광주 시민 학살을 직접 계획했고, 사전에 미국 측과도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그간 자신의 책임을 강하게 부인하던 전 씨의 모든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미국 측 자료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국내 주장이 아닌, 미국 정부 측의 자료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라 특히 5.18을 왜곡해 온 국내 극우세력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하루 뒤인 15일에는 이와 유사한 주장이 담긴 기자회견이 열려 전두환 씨를 향한 비난 화살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간 광주의 침상을 세계에 알린 고 찰스 헌트리·아널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마사 헌트리·바바리 피트슨 여사는 서구 치평동 5.18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주항쟁 당시 전두환씨가 쿠데타를 일으켜 무고한 광주시민이 죽거나 다치는 거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선동하고 사형을 선고한 것도 5·18 발생의 한 배경”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북한 특수군 개입설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다. 광주시민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와 운동을 했다. 계엄군 총칼에 쫓기면서도 정말 용감하게 맞섰다”며 “전두환씨가 자기 집권을 위해 잔인한 무력을 써 희생이 많이 발생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증언한 피터슨 목사의 부인 바바리 피터슨 여사는 “사택 2층에서 남편과 함께 헬기가 기총사격하는 것을 보고 두 아들(당시 5·8살)을 지하실로 대피시켰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앞선 지난 9일에는 5·18기념재단(재단)과 민주화운동기록관(기록관)등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3에서 공개되지 않은 5·18 영상기록물을 38년 만에 공개했다.
영상은 1980년 5월20일부터 6월1일까지, 국군통합병원과 적십자병원 환자 치료 상황, 헌혈과 영안실 모습, 도지사 기자단 브리핑, 수습위 면담 장면, 기자들이 헬기에 탑승해 도청 상공을 쵤영한 장면이 담겨 있다.

또 시민들의 무기 회수, 도청 주변 정리하는 계엄군, 도청 현관 앞에 회수된 무기들과 거리 청소, 도로와 기관 앞에서 경계 중인 계엄군, 망월동 안장 모습 등이 상영된다. 영상기록물은 16㎜ 흑백 필름 총 3롤(권)로, 상영시간은 72분이다. 안타깝게 무성으로 소리는 들을 수 없다.

5·18 관련 영상기록물이 많지 않은 실정에 이번 영상기록물 수집은 1980년 광주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높다.

“북한군 개입설 유포자도 전두환”

이같은 소식이 알려진 직후 정치권과 관련 단체는 논평을 통해 사실 확인은 물론 법적 처벌이 불가피함을 전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했다. 추 대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북한군 개입설을 가장 먼저 주장한 이가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명예훼손 일삼은 역사범죄의 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마지막 남은 도리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5.18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 문건에서 최종 진압 작전의 지시에 대해 ‘전두환이 결정했다’고 명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며 “전두환은 그간 회고록까지 출간해가며 끝끝내 자신의 죄를 부정했지만, 결국 끔찍한 살상의 최종 책임자였음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계엄군에 의한 집단 성폭행 등 20년 전 재판에서 기소·인정되지 않았던 죄상들이 새롭게 수면 위로 드러났고, 1995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공소시효 진행 또한 정지된 상황”이라며 “전두환에 대한 조속한 수사와 죄에 따른 엄중한 형사책임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5.18민주유공자 3단체(5.18민주유공자유족회,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구속부상자회)또한 같은 날 발표한 공동 입장문을 통해 “5.18 희생자와 유가족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검찰이 전두환을 재판에 넘긴 것에 대해 환영한다”며 “명예훼손만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 및 암매장 문제, 발포명령자 규명, 고문 및 가혹행위, 5.18왜곡 등의 5.18 진상을 규명하고 전두환 등 책임자를 엄중 처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생들도 동참했다.

대학생들이 5.18과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 재수사와 미국 측의 사과를 요구하는 행동에 나섰다.

지난 5일 어린이대공원에서 대학생들이 대학생 검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캠페인을 펼쳤다. 이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수사와 5.18에 개입한 미국의 사과를 요구했다.
대학생 검사단은 이번 캠페인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재수사해야 하는 4가지 이유와 5.18에 관련해서 미국의 사과를 촉구해야 하는 3가지 이유를 정리해 시민들에게 알렸다. 이와함께 전두환 재수사와 미국사과를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진행했다.

23년 만에 법정에 설까?

5.18 캠페인 어린이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잘못을 반성하라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 

그 외에도 피켓 전시, 스티커 설문, 퀴즈대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서명에 참여한 한 시민은 “전두환 재수사를 촉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며 “아직 5.18이 전부 밝혀지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른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이와 관련, 전 씨는 거짓으로 일관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은 회고록에서도 당시에 관해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되풀이한 바 있다. 북한군 투입설은 제5공화국 들어 안기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민간에 유포되었다는 게 그간 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단 한 차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전 씨가 5.18과 관련해 23년 만에 다시 법정에 서는 날이 언제가 될지 이목이 쏠린다.  광주지방검찰청 형사1부(부장검사 이정현)는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계엄군의 기관총 사격을 증언한 조 신부를 비난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전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전 씨의 기소는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1980년 5월21일 광주 일대의 상황을 담은 비밀문서가 발견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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