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 ‘저항’ 취임 1주년 앞두고 리더십 손상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가 지난 15일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하며 문무일 검찰 총장과 충돌하자 검란(檢亂)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검찰 내부에서 항명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대부분 검찰 수뇌부와 그에 반발하는 검사들과의 충돌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그동안과 다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를 놓고 수사 방향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강원랜드 수사단과 검찰 총장 등 수뇌부가 충돌했다. 일각에서는 검사계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수사권 독립을 보장했던 수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무엇이 문제일까.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개혁 현안 무난하게 처리했는데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에 발목, 검찰총장의 운명은?


안미현 검사와 강원랜드 수사단의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외압 의혹 제기로 문무일 검찰총장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일각에서는 검찰 내부 폭로전이 문 검찰총장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으로 오는 7월 취임 1년을 맞는 문 검찰총장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그동안 문 총장은 취임 후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개혁 현안을 비교적 무난하게 처리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굵직한 수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항명에 가까운 내부 저항을 받게 됨에 따라 향후 리더십 손상이 불가피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안미현 검사‧수사단의
이례적인 기자회견과 발표

 
지난 16일 검찰 등에 따르면 강원랜드 수사단은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문 총장이 지난 2월 출범 당시 독립적인 운영을 하겠다고 공언한 바와 다르게 수사지휘를 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강원랜드 수사 관련 외압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안미현 검사가 같은 날 문 총장의 압력 행사 의혹을 주장한 데 이어 수사단이 검찰총장을 직접 겨냥한 ‘항명’ 자료를 내는 이례적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날 수사단의 입장 발표는 대검과 전혀 협의되지 않았다. 안 검사의 기자회견도 의정부지검장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됐다.

이와 관련해 문 총장은 총장 직무에 따른 것이라며 수사 개입 의혹을 일축하고 있다. 문 총장은 이날 “검찰권이 바르고 공정하게 행사되도록 관리, 감독하는 게 총장의 직무라고 생각한다”며 “법률가로서 올바른 결론을 내리도록 그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파문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검찰 내부로 논란이 더 확산하는 모양새다. 대검이 수사단 발족 당시 일체의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과 다르다며 책임론이 불거지는 반면, 수사단과의 이견에 따른 검찰청법에 규정된 검찰총장의 정당한 수사지휘권 행사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대검은 수사단이 먼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검찰수사심의위원회 회부를 요청해 수사결과를 받아 검토한 것일 뿐 수사지휘로 볼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 총장이 수사결과의 법리적 쟁점에 대한 엄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했고, 수사단 의견을 반영해 외부 전문자문단에 심의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내홍이 격화되면서 이번 사안은 전문자문단 결론으로 파문이 쉽게 가라앉을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전문자문단 심의 결과에 따라 누군가는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을 거라는 얘기가 서초동에서 흘러 나온다.

김회재 의정부지검장은 “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를 대검찰청에 검사윤리강령 위반으로 징계 요청을 검토 중”이라고 17일 밝힌 상태다.

김 지검장은 “언론에 취재 요청을 할 때에는 지검장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안 검사는 이를 어기고 각 언론사에 먼저 취재요청서를 배포했다”며 “기사가 보도된 뒤에야 승인을 요청했다”고 지적했다.

김 지검장은 이어 “뒤늦게 보내온 승인 요청을 보니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있어 확인 후 다시 요청하라고 지적했지만 안 검사는 지적된 사항을 어기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검사윤리강령 제21조에 따르면 검사는 수사 등 직무와 관련된 사항에 관해 검사의 직함을 사용해 대외적으로 그 내용이나 의견을 기고·발표하는 등 공표할 때는 소속 기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위 사항을 위반하게 되면 대검에 징계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이후 법무부에 징계를 청구, 검사징계위원회가 열려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검찰 개혁 추진 제동
구성원들 갈라지나

 
취임 1주년을 앞둔 문 총장은 성추행 조사단, 탈세 변호사 로비 의혹 등 잇따라 내부를 겨눴던 수사로 내홍을 겪어온 조직을 추스리기도 전에 다시 과제에 직면했다.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빠르게 내부 개혁을 추진해 오면서 구성원들의 반발을 받은 데 이어 이 같은 논란으로 남은 개혁 추진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문 총장은 지난달 “내부 제도 개혁은 반 정도 시행되고 있다”며 “나머지 절반도 하고 싶지만 구성원들이 너무 힘들어 하는 상황에서 뒷분한테 과제로 넘겨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 바깥으로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청와대, 법무부 등과 마찰을 빚고 있어 ‘엎친 데 겹친 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의 운명이 걸린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내부가 결집해야 할 상황에 ‘집안 싸움’ ‘검란(檢亂)’ 등으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검찰 내부에서도 안 검사 등의 외압 주장에 대해 논쟁이 뜨겁다.

지난 15일 정희도 창원지검 특수부 부장검사는 이날 오후 검찰 내부 전산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통해 “총장의 이견이 외압인가”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 부장검사는 먼저 안 검사의 인터뷰 및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단(단장 양부남 광주지검장)의 보도자료 등을 거론하며 “간략하게 요약하면 총장이 수사 외압 혹은 공언과 달리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는 취지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총장과 수사팀 간에 이견이 있으면 총장의 이견은 외압인 것인지에 대해 안 검사의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 부장검사는 “총장이 이견을 갖고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을 들어 외압이라 하는 것은 총장의 존재, 권한 자체를 몰각한 어이없는 주장”이라며 “수사팀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고, 정의라는 것을 자신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수사단의 수사 결론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면 총장의 공언보다는 공정한 수사와 수사 결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책임 있는 총장이라면 이전의 공언에 집착하지 않고, 공정한 수사를 위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정 부장검사는 끝으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언급하며 “오늘 수사단의 발표 등 일련의 사건들이 혹여라도 채 전 총장 사태의 반복이 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고 덧붙였다.

정 부장검사의 주장에 대한 찬반 의견은 나뉘고 있다. 일부 검사들의 경우 “의견 제시와 외압은 구별돼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정 검사의 글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한 검사는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일련의 의사 결정 과정이 ‘외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반면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검사는 신승남 전 검찰총장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수사를 받은 사례를 거론하며 “대검 반부패부가 압수수색에 반발한 소문을 들었는데 참 황당했다. 책임과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 검찰에 많았으면 좋겠다”고 글을 올렸다.

외부에서도 검찰 내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6일 “검찰 내부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안타깝다. 빨리 정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고,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검찰 조직이 흔들리는 것처럼 비춰졌다”며 “불필요한 논쟁이 빨리 정리되도록 해야 되겠다”고 밝혔다.
 
정당한 권한? 외압?
여전히 논란 중

 
검찰 내부에서는 문 총장이 총장 직무에 따른 정당한 권한을 행사했다는 의견이 많다. 그 근거로 ‘특별수사·감찰본부 설치·운영 지침’ 대검 예규와 ‘특임검사 운영에 관한 지침’ 대검 훈령 등이 제시된다.

예규에 따르면 특별수사 및 감찰본부는 독립적으로 직무를 수행한 뒤 그 결과를 검찰총장에게 보고한다. 총장은 특별수사 및 감찰본부의 위법 또는 부당한 활동에 대해 서면으로 바로잡을 것을 명령할 수 있다.

훈령의 경우 특임검사는 직무와 관련해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고, 결과만을 총장에게 보고한다고 돼 있다. 다만 특임검사 조치가 현저히 부당하거나 직무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총장이 특임검사의 직무수행을 중단시킬 수 있다.

일종의 특임검사 성격을 지닌 강원랜드 수사단에 대해서 문 총장이 보완을 요구한 것은 이 같은 예규 등이 준용되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반론이다.

특히 법리 검토 등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수사 종결을 의미하는 수사심의위원회 부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직무유기에 해당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문 총장이 수사지휘권을 아예 발동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압력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따질 전제조차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총장이 지휘권을 발동했다는 것은 쉽게 말해 ‘이 사안은 기소가 불가하다’라는 것과 같이 수사의 결론을 내는 행위”라며 “문 총장이 강원랜드 수사팀에게 ‘전문가회의’를 통해서 결론을 도출하라고 의견을 낸 것은 본질적 의미에서 수사 지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안 검사와 강원랜드 수사단이 주장한 문 총장의 수사지휘권 관련 논란은 검찰 외부로부터 관심을 끄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로부터의 지지는 외부 관심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전해진다.
 
채동욱‧한상대‧김준규 사퇴
외부 압력에 대한 조직적 반발

 
그동안 검찰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검란이 있어 왔다.

가장 최근 사건은 2013년 9월에 일어난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사건이다. 당시 채 전 검찰총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를 강하게 밀어 붙였으나 박근혜 정부로부터 미움을 샀고 결국 검사들의 반발에도 불구 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2012년 11월에는 한상대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정부는 대검 중수부 폐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검찰 개혁안을 밀어붙였었다. 하지만 대검 중수부장이 반발하는 등 극심한 내부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사태의 책임을 지고 한 전 총장이 사퇴했다.

2011년 6월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내면서 검찰 내부에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중수부장 등은 수사 지휘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수정 의결된 것을 두고 검찰의 지휘 체계를 붕괴시키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다며 반발했다. 결국 김준규 검찰총장이 사퇴했다.

이들 사건 모두는 정부와 국회 등 검찰 외부의 압력에 대한 검찰 조직의 반발이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