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은 마구 튀는 스타일에서 닮은 점이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발언하자 “전에 들었던 말일 테니 통역 들을 필요 없다”며 동맹국 대통령에 대한 외교적 무례를 범한 트럼프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원 확약에 힘입어 어께에 힘이 잔뜩 들어가 4.27 판문점 회담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은 김정은이다.

이 두 사람은 동상이몽(同床異夢)의 샅바싸움에 올인하고 있다. 트럼프는 ‘원샷 비핵화’를 요구하며 김정은의 안전보장을 보상책으로 제시한 반면, 김정은은 비핵화의 단계를 늘리고 속도를 늦추며 더 많은 경제보상을 끌어내길 원하고 있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던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공개한 서한에서 “현 시점에서 회담이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당신의 발언에서 보인 엄청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감에 근거하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이번 회담이 열리기에는 지금은 부적절한 시기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북한이 외부 전문가는 배제된 채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진행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쇼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을 비난하고 공개적으로 회담을 구걸하지 않겠다는 등의 시간벌기용 ‘살라미전술’을 전개했지만 트럼프는 불한당의 배짱에 굴복하지 않았다.
 
온 국민과 세계인이 기대했던 미·북회담이 무산돼서 매우 안타깝다. 한반도 평화정착이라는 역사적 과제는 아직도 요원하다. 세계 평화를 위해 미·북 간에 입장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해서 다시 미·북회담이 정상화되길 바란다. 트럼트 대통령의 서한에는 미·북회담의 여지를 아예 봉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북핵’과 ‘한반도 위기’만 남게 되었다. 한·미 공조와 남북관계 재조정에 대한 플랜B가 시급한 이유다. 미국 언론 일각에서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한국의 ‘과대포장(overselling)’이 문제라는 ‘한국 책임론’이 나오고 있다.
 
미·북회담 취소의 가장 큰 원인은 김정은의 2차 방중 이후 돌변한 북의 태도와 오판에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김정은은 더 이상 벼랑끝 전술에 기대지 말고 비핵화를 통한 평화의 길에 나서야 한다. 핵을 움켜쥔 채로는 국제제재를 피할 수 없고, 고립된 경제로는 북한의 활로는 물론 자신의 안전도 도모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향후 보다 냉철한 대북접근이 필요하다. 4.27 판문점 회담부터 일방적 북한 바라기에 매달려온 안보외교라인을 일신해야 한다.
 
다시 국내 경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문재인 정권의 1년은 탈선과 폭주의 ‘잃어버린 1년’이 됐다. 적폐청산의 기조 하에 이념투쟁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진 ‘역주행의 1년’이었다. 세계경기가 호황인데도 불구하고 청년실업은 11%로 치솟고 실업률은 17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금융위기 이후 최저인 70%에 불과하다. OECD발표에 따르면 경기선행지수가 9개월째 하락하고 있어 제3의 경제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은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 반시장 정책에 따른 생산 비용 급등에 따른 일자리 감소 때문이다. 지난 1년간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에서만 고용이 9만 명 가까이 줄었다. 경제학 교과서에 없는 ‘소득주도성장’이 가져온 혹독한 경제실험 성적표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금리, 원화가치,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신3고’ 환경이 갈 길 바쁜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청와대는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며, “고용이 크게 늘지 않는 것은 생산가능인구가 줄어서 그렇다”고 한다. 이것은 책임회피를 위한 지록위마(指鹿爲馬)와 다를 게 없다. 이는 정책 책임자들이 포퓰리즘에 경도되어 외눈박이 눈으로 경제를 잘못 진단하고 있다는 증좌이다.
 
불확실한 비핵화 성과가 경제 실정(失政)을 덮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문재인 정부는 북의 비핵화와 경제를 모두 살피는 투 트랙 정책에 나서야 한다. 산업구조를 글로벌 분업 체계에 맞추고 고용유발 효과를 키울 수 있도록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강성귀족 노조가 가로막고 있는 노동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더 이상 현 정권탄생에 기여한 지분을 행사하려하는 오만한 민노총에 끌려 다녀서는 정권의 미래가 없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니시오스는 “나라를 멸망시키는 가장 가까운 길은 선동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패거리 정치와 대중영합주의가 판치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에서 새겨봐야 할 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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