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정상회담이 취소되었다. 지난 밤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어리둥절했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비관론은 항상 있어 왔다.
 
결국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도 성과가 없을 거니 냉정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런 비관론은 회담의 당사자이지만 한반도 평화에는 관전자일 수밖에 없는 미국이 더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담에는 비켜나 있지만 당사자일 수밖에 없는 한국만큼 미국이 간절하길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 내의 이런 비관론이 결국 회담 취소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났듯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북한 정권의 그것을 뛰어넘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사안에 대해 즉흥적으로 보이는 결정을 해왔다. 북미정상회담을 하겠다는 결정조차 즉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즉흥적으로 보이는 것, 즉흥성을 유지하는 것은 사업가 트럼프가 비즈니스에서 우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이런 트럼프를 잘 다뤄 왔다고 평가받은 한국정부나 자신들보다 더 예측 불가능한 상대를 만난 북한정권 모두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북미정상회담이 굴곡이 심한 것은 당연한 측면이 있다. 핵무기 폐기, 종전과 수교, 평화선언, 경제지원과 같은 복잡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져야 할 의제들이 한가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의제가 사전 조율을 거치고 회담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회담이 먼저 결정되고 의제가 조율되는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이야 만남 자체가 성과라고 포장할 수 있지만, 트럼프 입장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보장되지 않으면 만남이 중간선거 패배로 이어지고 재선이 멀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회담을 취소하면서 문제 삼은 북한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발언이나 최선희의 발언을 촉발한 미국 펜스 부통령의 발언도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 막상막하로 예측불가능하고 벼랑 끝에 서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두 나라가 제대로 만난 것이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는 입장에서 희망이 있다면 트럼프의 회담 취소 메시지가 트위터가 아닌 정중한 편지로 발신되었다는 것이다. 미 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이나 이란 핵 합의 파기와 같은 중대사안도 트위터로 발신하는 트럼프 입장에서 편지는 낯선 방식이고 그만큼 계산된 방식이다.
 
북한은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국가로 등장하고 싶겠지만, 여전히 준비는 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최선희가 펜스 부통령을 공격한 언사나 싱가폴 북미 실무접촉 자리에 안 나타난 것, 남북고위급회담을 하루 전에 취소한 것은 국가 간 외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행동들이 벼랑 끝 외교로 포장되어 외교적 실리로 돌아오던 시절은 지났다. 미국과 북한의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인 세련됨과 정중함이 약간의 착시현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회담은 취소된 것이 아니라 연기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미국과 북한은 여전히 탐색전을 벌이고 있고 핵무기와 체제 보장을 두고 거래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회담 취소에 북한이 “우리는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미국 측에 시간과 기회를 줄 용의가 있다”고 답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정상회담이 취소되었다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냉정하게 우리의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단 운전대를 놓고 옥신각신 중인 둘을 달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김정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존재 둘을 뒷자리에 태우고 있으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이 본격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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