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비슷한 수법이다. 지분 인수 후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재계에 아는 사람이 많다보니 금융권 대출도 쉽게 받는다.” 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씨의 아들인 이동욱(42)씨가 어음위조·회사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됐다. 지난 1일 성진산업의 공시를 통해 알려진 이동욱씨의 혐의를 전해들은 측근은 “또 그런 일이 벌어졌냐”며 혀를 내둘렀다. 이후락씨의 아들이란 사실만으로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는 동욱씨는 지난 2월에도 코스닥등록업체 ‘에이엠에스’로부터 ‘횡령혐의’로 고소됐었다. 이동욱(42)씨는 얼마전까지 식탁용품 제조·가공 업체인 ‘성진산업’의 비상근 부회장직을 지내며 유가증권을 위조한 혐의로 서울 강남 경찰서에 고소된 상태다.

이씨가 유통시킨 어음은 총 3매. 2억원짜리 약속어음 1매는 다행히 은행에 의해 지급정지 처리됐지만 나머지 백지 약속 어음 2매의 행방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이씨는 성진산업의 임원으로 등기되지 않았지만 비상근 부회장이란 직함아래 2002년 10월부터 전 대표이사인 이영근을 통해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 회사의 자금을 장악한 후 임직원들을 속이고 개인적인 용도로 회사자금을 유용·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지난 3월말에 취임한 성진산업 조지호 사장은 “내가 취임한 후에도 이씨는 ‘회사에 도움을 주겠다’며 회사 어음을 임의로 발행, 임직원을 속이는 행위를 계속해 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씨가 2002년 말경 성진산업을 인수해 1년 넘게 회사를 경영하며 각종 부실을 키웠다”며 “경영 부실에 대한 책임을 강력하게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이미 지난 2월에도 코스닥업체로부터 횡령혐의로 고소당한 바 있다. 이씨가 고문으로 활동했던 ‘씨씨케이밴’은 지난 2000년 이동욱씨와 재벌 2세들이 함께 설립한 신용카드 조회 단말기 업체다. 특히 씨씨케이밴은 설립 당시 재벌 2세들이 개인주주 자격으로 참여해 주목받았던 기업이다. 설립 초기인 2000년 11월 기준 주주구성을 살펴보면 이동욱씨 8.8%, SK텔레콤 16%, 애경유지 4%, 정몽혁 전 현대오일 뱅크사장 2%, 이웅렬 코오롱 회장 2.7% 등이 참여했다.

이후 2001년초 옛 한일은행 상무를 지낸 이정호(17.6%)씨가 이동욱씨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는 변경됐지만 다른 재벌2세들의 지분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장외업체였던 씨씨케이밴은 2002년 코스닥 시장에 등록된 IC카드 제조업체 ‘에이엠에스’의 주요 지분을 인수, 최대 주주가 됐다. 2002년 8월 씨씨케이밴은 에이엠에스의 윤용현 회장 보유 지분 중 55만주를 인수, 지분율을 14.8%에서 24.34%로 높였다. 반면 윤회장의 지분율은 기존 14.8%에서 5.21%로 감소했다. 이때 전문경영인인 문영갑 사장이 씨씨케이밴으로 영입됐고, 당시 최대주주가 이씨였다.

그러나 지난 1월 씨씨케이밴은 한국불교 태고종의 재산을 관리하는 태고원의 지현진 부회장에게 지분을 매각하며 손을 털었다. 현 에이엠에스 최대주주인 지현진 대표는 “지분 인수과정에서 씨씨케이밴 법인·특수관계인·문영갑 사장 등이 ‘205억원 가량의 회사자금을 횡령·유용’한 사실을 발견했다”며 청주 지방 경찰청에 고소한 상태다.에이엠에스 측은 “이씨를 포함해 씨씨케이밴 등 관련자들을 ‘횡령’과 ‘채무부존재’ 혐의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올 연말이면 1차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이씨가 에이엠에스에 이어 성진산업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저지른 것 같다”고 전했다.

동욱씨 형 동훈씨도 ‘횡령’전력2000년 제일 화재보험 회장때 19억 유용

이동욱씨의 형인 이동훈씨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바 있다. 이동훈씨는 제일화재해상보험 회장으로 지내며 42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 이중 19억원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 2000년 당시, 제일화재는 지난 96년부터 4년간 201억원 가량의 역외펀드를 허가 없이 조성해 투자하다 100억원대의 손실을 봤다. 금융감독원은 이 사건을 조사하던 중 거액이 빠져나간 것을 확인, 대주주 등에 의한 회사 자금 횡령으로 조사의 폭을 넓혔다.조사결과 대주주이자 회장이었던 이동훈씨가 해외역외펀드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뒤, 개인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제일화재 측은 회사 비자금을 횡령한 이동훈 전회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진행. 서울지법 민사 합의 19부는 2002년 12월 이동훈씨에게 “15억 6,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이씨는 “회사 측에 비자금을 맡긴 것은 사회질서에 반하는 ‘불법원인 급여’인 만큼 이를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비자금 은닉을 위해 피고에게 잠시 맡겨둔 것을 ‘불법원인 급여’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제일화재 회장으로 근무하며 96년 9월부터 말레이시아의 역외펀드에 불법 출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42억원의 비자금을 조성, 이중 19억 2,000만원을 여행경비·아들 유학자금 등 개인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기소돼 2002년 1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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