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 핵합의 탈퇴 이어 이란에 최대 압박

이란, “미국이 세계 좌지우지하던 시절 끝났다” 반박
전문가, “미국 이 요구는 암묵적인 체제 교체 전략”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재의 핵 합의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는 2015년 7월 이란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에 독일을 더한 6개국(P5+1)과 맺은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JCPOA)’에서 탈퇴한 데 이어, 미국이 이란의 체제 변화를 겨냥한 ‘플랜B’를 공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보수 성향의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에서 ‘이란 핵합의 탈퇴 이후 전략’을 주제로 연설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단순한 이유 때문에 그 합의에서 탈퇴했다”며 “그것은 이란이슬람공화국 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위험으로부터의 미국민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실패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란에 대한 12가지 요구를 담은 새 합의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가지 요구에는 ▲우라늄 농축 중단 및 플루토늄 재처리 금지 ▲핵 시설에 대한 완전한 접근 허용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등 테러단체 지원 금지 ▲시리아에서의 모든 군사력 철수 등이 포함됐다. 폼페이오 장관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12가지 목록이 길어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은 단지 이란의 광범한 악행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이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으면 “전례 없는 재정적 압박을 이란 정권에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은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 낸 ‘최대의 압박’ 전략을 이란에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그 누구라도, 특히 이란의 지도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그가 가진 비전의 진정성을 의심한다면 북한과의 외교를 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눈은 이란 정권의 본질을 꿰뚫고 있지만, 우리의 귀는 열려 있다”며 이란이 변한다면 모든 제재를 해제하고 외교관계를 복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란은 미국 제안을 곧바로 거부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폼페이오 장관의 언급 직후 “이란과 전 세계를 좌지우지하려는 당신(폼페이오)은 도대체 어떤 자인가”라면서 “(12가지 조건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맞받았다. 로하니 대통령은 “각 나라는 독립적인 만큼 미국이 세계를 위해 결정하는 것을 세계는 수용하지 않는다. 그런 시대는 끝났다”고 강조했다. 이란 외교부도 “폼페이오의 무례한 발언은 이란 내정에 노골적으로 간섭하는 주권 침해행위”라고 반발했다. 이란 핵합의 유지를 주장해온 유럽연합(EU)도 미국의 새 제안을 일축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폼페이오 장관의 연설은 우리가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해도 유리한 위치에서 이란의 행실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며 “이란 핵합의의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수전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폼페이오가 발표한 이란 ‘플랜B’ 전략은 평양에 대한 최대의 압박을 테헤란에도 적용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끈 건 경제 제재와 군사 압박보다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진보에 따른 것이었으며, 이란과 새 합의를 위해 동맹국과 파트너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플랜B 전략은 궁극적으로 이란의 체제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수전 멀로니는 “이것은 암묵적인 레짐 체인지(체제 교체) 전략”이라며 “그것 말고는 (폼페이오의) 연설을 해석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폼페이오 장관의 플랜B는 사실상 현 이란 지도부 교체를 겨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노골적으로 이란 정권 교체를 촉구하지는 않았으나 현 이란 정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 조건을 내세운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의 요구는 현 이란 정권 교체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015년 JCPOA 협상의 미국 측 수석대표였던 웬디 셔먼 전 국무차관은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정권교체를 조장하려는 것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보국(CIA) 관리 출신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낸 네드 프라이스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내놓은 요구 조건은 ‘실행이 명백히 불가능한 것'으로 단지 ‘이성과 실용주의의 겉치레로 포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반면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회의 이란 실장을 지낸 마이크 싱은 폼페이오 장관의 ‘불만'이 역대 미 행정부가 표명해 온 우려와 일치하는 것이라고 두둔했다. 요구 조건이 급진적인 것도 아니고 정권교체를 조장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는 그러나 동맹들이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고, 협상 타결의 간극이 지나치게 큰 점을 단점으로 지적했다. 셔먼 전 차관은 “물론 폼페이오 장관이 제시한 요구 중 되도록 많은 것이 이뤄지기를 희망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이라면서 특히 유럽 동맹들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도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는 만큼 (폼페이오의 요구는) 방법에 관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랜B에서 열거한 12개 항을 동시에 모두 달성하려면 “아마도 수십 년이 소요되는 복잡하고 장기간의 협상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 합의 파기와 제재 부활을 결정하면서 국무부 관리들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이른바 ‘플랜 B' 성안에 급거 착수했으며 이번 주 유럽 동맹들과의 회합에서 이에 대한 전략을 설명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관리들은 현재 78세로 건강이 좋지 않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 하메네이의 후계구도를 내다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메네이가 사망할 경우 이란 정국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지난해 말과 연초 이란 내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주목하면서 역풍이 일수 있는 시위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 대신 주민들의 인터넷 접속을 지원하는 등 이란 정권의 외부 정보 차단 공세에 맞서고 있다. 그러나 프라이스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주민들이 혁명 직전이라는 오도된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이날 사설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요구를 ‘강요에 의한 외교'로 비판하면서 이란이 수락하기 힘든 요구를 제시함으로써 상황을 미-이란 간 전쟁이나 이란의 정권교체 방향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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