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의 유통기한이 문제시 된 것은 지난 96년. 당시 한나라당 김재천의원이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가 국회 재경위에 낸 국감자료를 근거로, 한국담배인삼공사의 담배판매관리규정의 위반 사항을 거론했다. 96년 6월 한국담배인삼공사는 유통기간이 6개월 지난 재고담배 41만 6,350갑을 군·경 및 외항선원용으로 판매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이런 행위는 유통기간이 지난 담배는 기술감식을 통해 폐기처분하거나 담배원료로 재사용 하도록 한 ‘담배판매관리규정’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KT&G는 “담배는 식품으로 분류되지 않는 만큼, 유통기한을 표시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신 담배는 유통기한이란 표현보다 담배맛이 변할 수 있는 정도의 기한인 ‘상미기한(賞味期限)’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KT&G 품질국은 “담배는 오랜 기간이 지나도 제품의 변질이 없다. 대신 ‘상미기한’을 둬, 10개월 이상 방치된 제품은 반환해준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상미기한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보루로 구입하는 경우는 봉투에 바코드처럼 찍힌 출고일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한 갑씩 구매할 경우는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애연가 이모(32)씨는 “항상 동일한 상표의 담배를 구입해 피는데, 가끔 맛이 유독 텁텁한 담배가 있다. 그런 제품을 피면 건강에 더 큰 타격을 입을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모(29)씨도 “가끔 가방 속에서 오래된 담배를 발견하면 피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그럴 땐 유통기한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반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문씨 또한 잘 팔리지 않으면 영업소에서 다른 담배로 바꿔 한달 이상 방치된 제품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도라지, 솔, 하나로 등 오래 전에 출시된 제품의 경우, 상미기한 10개월이 지난 제품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에 KT&G측은 “담배 재고를 줄이기 위해 공급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있다. 평균 수요를 파악, 분기별로 월별 공급량을 조절해 재고를 없애고, 장기간 유통되지 않는 담배는 폐기처분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KT&G측 입장에도 불구, 애연가들은 “요즘처럼 사재기가 극성일 때는 유통기한 표기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올 10월부터 값당 500원씩 올리겠다고 발표한 직후, 일부 소매점들이 시세차익을 노려 담배를 마구 사들이고 있다.Y영업점의 한 직원은 “보통 사재기를 하는 경우, 현금 유동성을 따져, 많이 사는 경우는 1주일에 500만원어치를 산다. 어떤 판매점은 방 하나에 50박스를 가득 채워 놓았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들인 담배가 가격인상 이후인 10월부터 유통된다면 이미 그때의 담배는 유통기한 3개월을 넘기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재경부가 물가인상을 우려해 담배 값 인상시기를 11∼12월로 미뤄 줄 것을 요청해 인상시기가 더욱 늦어진다면, 현재 보관되는 담배는 12월 경 유통기한을 최대 6개월을 넘기게 된다.

한갑씩 담배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이미 몇 개월이 지난 담배를 피울 가능성이 높다. KT&G 홈페이지에 건의의 글을 올린 J씨는 “얼마전 사재기로 인해 오랫동안 쌓아놨던 썩은 담배를 산적이 있다”며 “담배값 인상과 동시에 디자인도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KT&G측은 “인상시 담배갑의 디자인을 변경한다든지, 담배갑 일부에 도안을 넣는 문제는 제품 브랜드의 고유성확보에 많은 어려움이 뒤따른다”며 “소비자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여러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 네티즌은 “담배에 유통기한이 표시돼 있다면 반환·교환을 통해 사재기의 피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유통기한을 표시한다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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