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직원들의 모럴해저드는 그동안 업계에 심심찮게 들려왔다. 특히 산은이 벤처기업에 자금 지원을 하며 일부 기업으로부터 주식을 공짜로 상납 받거나, 리베이트 방식으로 돈을 받고 부실기업에 금융지원을 했다는 내용이다. 또 일부 임직원이 돈을 모아 사설펀드를 운영, 돈놀이를 한다는 소문까지 떠돌았다.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7월20일 ‘주식투자사고’가 발생했다. 소문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반응에 산은은 서둘러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자본시장실 J씨 개인의 주식투자 사고일 뿐, 투자금은 기업관련 불법 자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산은에 10년 이상 근무한 J씨는 IMF당시 주식투자로 상당한 이득을 봤고, 주변 동료들에게 ‘주식투자로 돈 잘 버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99년 초기에 J씨에게 돈을 맡긴 동료들은 이득을 올려 재미를 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1∼2년 전부터 J씨가 달라졌다. 산업은행의 한 직원은 “J씨가 친하지 않은 동료에게까지 직접 전화해 투자금액의 20∼30% 정도의 수익을 올려주겠다며 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직원이 산업은행에서만 50∼60명. J씨가 거래 창구로 이용한 D증권에서 “산은 직원이 주가하락으로 13억원을 손해봤다”는 정보가 흘러나와 금감원이 즉각 산은에 통보해 밝혀졌다. 동료 직원들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까지 피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금감원과 감사원은 J씨의 차명계좌 운영 가능성 여부와 함께 막바지 수사를 진행 중이다.

산은 측은 이 사건으로 은행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될 것을 우려, 초강수의 인사조치를 내렸다. 때마침 부서장급 정기 인사와 맞물려 속전속결의 모습을 보였다. 이날 보직 해임된 부서장급 간부는 기업금융3실장, 검사부 검사역(별정직) 등 일부 지점장을 포함해 총8명이다. 일부 고위 간부는 직책은 유지했으나 한직으로 좌천됐다.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의 여파가 큰 것은 사실이나, 인사 단행이 극단적”이라고 지적한다. 보직 해임 기준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죄의 경중에 상관없이 부서장들에게 책임을 전가, 억울한 피해자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여론이 산은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며 유지창 산은총재의 책임여부까지 들먹이는 것을 우려해 자체적으로 극단적 조치를 내린 것이 아니냐는 추론까지 내놓았다.

산은측 관계자는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었을 뿐”이라며 “감사원의 최종 감사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문책인사를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산은 직원들은 “피해자 대부분이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 때문에 투자처를 간절히 찾던 중 J씨의 말에 쉽게 속은 것이다. 특히 상당수 직원이 퇴직금 중간 정산 자금을 J씨에게 맡겨 피해 금액이 커졌다”며 안타까워했다. J씨는 현재 잠적 상태다. J씨 명의의 재산은 전혀 없고 부인과 합의 이혼해 사기 의혹을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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