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농협중앙회의 개혁문제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농민단체 및 민노당, 전국농협협동조합노조(이하 전농노조) 등은’중앙회의 신용·경제 분리’, ‘시군지부 폐지 및 이사회 개혁’, ‘교육지원·경제사업의 강화’등을 주장하고 있는 반면, 농협중앙회는 이런 주장에 대해 “현 상태에서 신용·경제 분리 등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요서울>에서는 농협개혁에 대해 총 5회에 걸쳐 진단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그 두 번째로 ‘농협중앙회 개혁’문제를 다뤘다.“농민이 주인 되는 농협으로…”그간 정부와 농민, 농민단체로부터 끊임없이 개혁의 대상으로 꼽혀왔던 ‘농협중앙회’. 하지만 추진방법과 시기 등에 대해 각 집단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특히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이하 신·경분리)’, ‘시·군부 폐지’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농협중앙회와 농민단체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농협은 그간 농촌 교육지원사업·경제사업·신용사업·문화활동사업 등을 해왔다. 그런데 현행 농협중앙회 체제가 신용사업 등 은행업무에만 치중하면서, 본래기능인 경제사업과 교육지원사업 등을 등한시했다는 것이 농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이에 농민과 농민단체, 농협전문가, 전농노조 등은 ‘중앙회의 신·경 분리’등 ‘농협중앙회 개혁’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농민단체 등은 중앙회 조직을 신용·경제사업으로 분리해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중앙회 조직은 본래의 기능인 교육지원, 지역농협의 지도·지원사업, 농정활동에 전념하는 비사업적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중앙회의 신용·경제 사업을 분리하는 것은 농협개혁의 기본 전제조건”이라며 “기존 중앙회는 은행업무로 수익을 최대한 증대하는 구조로 돼 있다. 이처럼 중앙회가 신용사업에만 치중하면서 구매사업 및 판매사업, 상호금융사업, 교육사업 등의 기능이 축소·왜곡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이어 이 관계자는 “여기에 신용사업 수입이 농민과 농촌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중앙회의 고비용구조를 유지하는데 상당부분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중앙회의 조직을 분산해야만 농협개혁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며 중앙회 신·경분리를 강력히 주장했다.또 다른 농민단체 관계자는 “중앙회가 맡고 있는 신용, 경제, 지도지원 등의 사업을 분리하고 각 사업마다 연합체를 꾸려야 한다. 이 연합체들은 독자적인 사업에만 충실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자는 것이다”며 “중앙회는 비사업 연합체로서 지역조합과 농민조합원을 위한 지도사업과 교육사업의 기능을 하고, 사업은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가 담당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일부 농민단체에서는 “중앙회의 신·경 분리는 3년 이내에 빨리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신·경분리는 경제사업 활성화와 농민조합원 실익 증진이라는 대원칙 속에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이하 한농련)는 “농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은행·금융업 내부의 주도권 다툼속에서 중앙회 신·경분리가 추진된다면, 취약한 농협 경제·지도사업추진을 위한 신용사업 부문 이익금의 지원통로가 차단될 우려가 높다”며 “중앙회의 신·경분리는 이뤄지더라도, 신용사업 이익금을 경제사업 및 지도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에 대해 중앙회측은 “현 상태로 신·경 분리만 이뤄지면 농민들도 크게 피해를 볼 것”이라며 ‘신경분리’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중앙회는 “신·경 분리시 ‘자본금 확충 문제’, ‘경제사업 적자문제’, ‘교육지원사업비 조달 문제’등 각종 문제가 파생된다”며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중앙회는 “신·경을 분리하려면 신용사업의 현행 자기자본비율(BIS)유지, 경제사업의 정부지도 부채비율(200%)기준, 교육지원부문 필요 자본금을 충족하려면 3조 이상의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며 “농민단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3년 이내에 분리하려면 정부가 공적자금 등을 통해 이 금액만큼 지원해야 한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하고 있다.이와 함께 중앙회는 “중앙회 경제사업 적자는 매년 증가추세로 지난 2002년에만 경제사업으로 1,500여억원의 적자를 봤다”며 “신·경이 분리되면 정부가 이러한 적자를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농협 관계자는 특히 “신·경분리 전에는 신용사업 등의 이익금을 교육·지도사업에 투입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신·경분리가 되면 매년 수천억원에 이르는 교육지도사업비를 정부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이어 이 관계자는 “신·경 분리시 신용사업연합체나 경제사업연합체가 이익금을 내서 교육지도사업비로 충당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사업체들도 각자 법인인 만큼 교육지도사업비에 대한 자금 지원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중앙회 관계자는 “외국계 자본이 국내 은행을 잠식하는 마당에서, 농협중앙회의 신·경분리가 되면 급변하는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며 “농협이 무너지면 농민들이 어느 은행에서 지금과 같이 대출을 받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중앙회의 입장에 대해, 농민단체 등에서는 기존 은행권과 시장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비판을 가하고 있다.농민단체는 “교육·지도사업의 경우 시장에서 활동하지 않는 비사업체로, 많은 자본금이 필요하지 않다”며 “중앙회가 시장논리를 협동조합에 무리하게 적용하며, 신·경분리를 반대하고 있다”는 입장이다.한농련 관계자는 “중앙회가 자본금 조달 문제 등을 제기하는 것은 농협개혁에 성의가 없다는 것”이라며 “중앙회의 신·경 분리 문제는 자본금 조달 등과 같은 지엽적인 문제를 뛰어 넘어, 농민들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중앙회 신·경 분리’와 함께 농민단체 등에서는 ‘중앙회 시도지역본부의 통합(농업 비중이 적은 일부 광역시 등)’, ‘시·군지부의 폐지 및 시도지부본부장을 조합원 중에서 선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앙회는 본부시도지부 18개, 지점 출장소 920여개, 하나로마트 등 유통업체 2,200여개, 1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한마디로 거대조직이다. 이렇다 보니 인력감축 및 구조개편 얘기가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농민단체는 “현재 불필요한 시도지역본부의 통합과 함께, 현재 임명직인 지역본부장은 조합원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며 “이들 선출직 본부장은 각 지역의 대표성을 가지고 중앙회의 이사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민단체는 또 “현재 중앙회 시·군지부는 공금고를 유치하는 등 신용사업에만 치중돼 있다. 이로 인해 지역농협과 중복, 경쟁을 하고있는 상황”이라며 중앙회 시·군지부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이에 대해 중앙회는 “조직 및 인력구조를 여건 변화에 맞게 개혁적인 조직으로 개편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대안 없이 시·군지부 폐지와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밖에 농협중앙회 이사회의 개편도 농민단체의 요구사항. 한농련은 “중앙회의 이사회가 단순히 농협 집행부의 의견을 보고 받고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사업을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며”중앙회의 일방적인 사업집행을 견제하고 농민조합원, 전문가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 등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한편, 농림부는 6월말 농협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7월초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개정안 내용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농림부 관계자는 “7월초 농협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게 될 것”이라며 “개정안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다소간의 수정과 보완을 거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민노당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농협 개혁안을 만들고 있다. 농림부의 농협개정안이 미흡할 경우, 국회 내에서 이를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앙회 정대근 회장 농협개혁에 ‘소극적’ 비판
사실상 세번째 연임 … 재임시 평가 엇갈려

7월 1일자로 시작되는 ‘통합농협 제 2기’의 선장은 정대근 현 농협중앙회장이다.새로운 임기 4년을 시작하는 정 회장은 지난 5월 25일 치러진 중앙회장 선거에서 이상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정 회장은 44년 경남 밀양생으로 부산공고를 나와 동국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지난 75년부터 98년까지 삼량진 농협조합장을 8번 연임했으며, 농협중앙회 운영위원, 이사, 상임감사 등을 역임했다.정 회장은 특히 99년 농협중앙회 18대 회장으로 당선됐으며, 2000년 통합농협중앙회장에 선출됐다. 정 회장은 다시 4년간 통합농협 2기를 이끌게 됨으로써, 실질적으로 세번 연임하는 셈이다.

정 회장은 지난 5년간의 재임기간 동안 ‘개혁적 공격경영·괄목할만한 경영성과를 이뤘다’는 평가와 함께 ‘농협 개혁에 소극적이었고, 지역조합을 강제로 구조조정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일부 농민단체와 전농노조 등으로부터 “중앙회 신용·경제 분리 등 농협개혁은 뒷전이고, 수익사업에만 매달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전농노조측은 “정 회장이 중앙회 개혁에는 관심이 없고 지역농협 노동자와 지역농협을 농협 개혁의 희생양으로 바치려 한다”며 “지역조합의 강제 구조조정·상호금융 금리 강제 인하 정책 등도 그 일환”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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