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 선거운동 영남권에 부는 ‘문재인 마케팅’
- ‘대리전’ 캠페인 30년 된 풀뿌리 민주주의 ‘역행’

 
6.1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5월31일 자로 시작됐다. 13일간의 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분위기는 크게 달아오르지 않고 있다. 지역 이슈나 정책 대결은 사라지고 오히려 중앙 이슈가 휩쓸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인물 대결보다는 정당 대결로 굳어지면서 지방선거가 빨간 후보냐 파란 후보냐 친문후보냐 아니냐로 분열적 선거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선거 캠페인이 ‘문재인 마케팅’이다. 여권 한 인사는 “이번 선거는 문재인과 반문재인 선거로 한국당이 어떤 카드를 내놓아도 백약이 무효”라고 평할 정도다.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 훈풍이 불면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대구·경북에서조차 50% 이상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더불어 민주당 정당 지지도 역시 경북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자유한국당을 이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당 후보의 ‘문재인 마케팅’이 도를 넘고 있는 수준이다. 대표적인 광역단체장 후보가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다. ‘대통령의 복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으로 통하는 김 후보는 공식선거운동이 벌어지는 첫날 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에서 시작했다. 김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김경수 경남지사’를 원팀으로 묶어 철저하게 ‘문재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부산도 마찬가지다. 오거돈 부산시장 후보는 정치적 성향을 굳이 따지자면 ‘친문’인사라기보다 ‘친노 인사’가 맞다. 오 후보는 참여정부 시절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냈고 노 전 대통령과 의리로 두 번씩이나 열린우리당 부산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고배를 마셨다.
 
2014년에는 무소속으로 세 번째 출마를 했을 때 김영춘 민주당 후보의 양보로 야권 단일후보가 됐지만 박빙의 차이로 패했다. 당시 민주당 구청장 후보나 시의원, 구의원 후보들과 공동유세를 거부한 게 실패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오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될 당시 이런 점 때문에 ‘김영춘 차출론’, ‘이호철 차출론’이 나왔다. 오 후보와 문 대통령의 인연은 지난 대선 때 부산 선대위원장을 맡은 게 전부다. 하지만 오 후보는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사무실 외벽에 크게 걸었다. 또한 지난 대선 부산 선대본부 출범식에서 문 대통령이 “문재인이 오거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거돈이 문재인을 선택한 것”이라는 발언을 선거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자유한국당 텃밭인 울산에서 시장직에 도전하고 있는 송철호 후보도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과 ‘30년 지기 친구’라는 점을 선거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심지어 한국당을 최근 탈당한 강길부 의원(울산 울주군)은 송 후보를 공개 지지하면서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힘이 필요하다”며 “문 대통령의 30년지기이자 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이야기한 송 후보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2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중 경남 김해을, 해운대을 국회의원 재선거 역시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가 도지사 출마로 의원직을 사퇴해 치러지는 김해을 선거의 경우 ‘노무현 대통령’으로 시작해 ‘문재인 대통령’으로 선거 운동이 끝이 날 정도로 ‘친노·친문 마케팅’이 도를 넘고 있다.
 
김경수 후보는 같은 당 후보로 나선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를 “저보다 더 노무현·문재인 두 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다”, “노무현·문재인·이호철·김정호 이렇게 ‘4인방’이다”고 밝힐 정도다. 김정호 대표 역시 “노무현 대통령한테 배운대로, 문재인 대통령이 하신 대로 김경수 후보가 다져온 대로 지역 주민과 늘 함께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마케팅’은 ‘보수의 심장’이라는 대구 경북도 덮치고 있다. 대구의 경우 권영진 한국당 후보를 한 자릿수로 바짝 추격하고 있는 임대윤 후보 역시 ‘문재인 대통령, 김부겸 행자부 장관, 대구시장 임대윤’이 한 팀이라는 점을 최대한 선거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임 후보는 민주당과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1992년, 1996년 총선에서 대구 동구갑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했다가 낙선한 바 있다. 이후 한나라당으로 입당해 민선 2, 3기 대구 동구 구청장을 지낸 바 있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조정비서관을 지냈지만 문 대통령과 인연은 깊지 않은 인사다.
 
경북 역시 이철우 한국당 경북도지사 후보에 맞서 맹추격하고 있는 오중기 경북도지사 후보도 매한가지다. 문 대통령 1기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지냈고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 후보 경북도당 선대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대표적인 친문 인사다.
 
이처럼 영남에서 ‘문재인 마케팅’이 성행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당선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정책이나 지역 현안을 다루자면 수십 년간 다져온 보수 정당 후보에게 밀릴 공산이 높다. 정당을 떠나 인물 대결을 벌일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산 서병수 후보, 경북 김태호 후보, 울산 김기현 후보의 경우 인물과 경력 면에서 민주당 후보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남북미 정상회담 이슈가 지역 현안이나 정책 대결, 인물 검증을 집어삼키면서 야당 입장에서는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 민주당 출마자들 입장에서는 ‘문재인 마케팅’은 손쉬운 캠페인이자 버릴 수 없는 치명적 유혹이다. 이런 현상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뿐만 아니라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문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수도권 곳곳에서 목도할 수 있다.
 
지방선거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게 핵심 요체다. 이번 선거는 지방분권시대에 맞춰 독립적인 자치분권 시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분수령이다. 그런데 지역 공약은 볼 수 없고 정책 대결, 인물 검증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일부 지역 민주당 후보는 TV 토론도 불참하는 등 오만한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대리선거’로는 올해 7회 30년이 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기보다 후퇴시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집권당 후보들이 깨닫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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