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김범수·방준혁 ‘자녀 대물림 안 한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기업 세습 경영에 새로운 지표가 열릴 전망이다. 벤처 1세들이 자녀 대물림은 없다며 고액을 사회 환원하고 있다.

그동안 일부 재벌가에서 보여줬던 양상과는 다른 행보다. 특히 김정주, 김범수, 방준혁 등 벤처 출신 오너들이 ‘세습경영’의 고리를 끊고 수평적인 기업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면서 창업자들의 새 본보기가 되고 있다.

김정주 NXC 대표 “경영세습 안 해…1000억 사회 환원”
수평적인 기업문화 만드는 데 앞장…창업자 새 본보기 될까


‘넥슨 공짜 주식’을 건넸다는 혐의를 받다가 최근 법원으로부터 무죄가 확정된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대표이사가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1심 법정에서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사회에 진 빚을 갚겠다고 1심 법정에서 약속한 바 있다”며 “지난 2월 발표한 넥슨 재단의 설립도 이 같은 다짐의 시작이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2년 전 약속을 실천해 나가야 할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본인과 일가 재산 일부를 사회외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대표는 “국내외 5000여 구성원들과 함께하는 기업 대표로 더욱 큰 사회적 책무를 느끼게 됐다”며 “넥슨이 성장하는 데에는 직원들의 열정과 투명하고 수평적인 문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문화가 유지되기 위해 경영권 승계 불가 원칙을 실천해가겠다고 강조했다.

기부 규모와 방식, 운영 주체 등의 계획은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진행한다. 준비 과정을 마치는 대로 조속하게 기부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에 끊임없이 고민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며 입장문을 마쳤다. 김 대표는 자녀로 미성년자인 두 딸을 두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방준혁 넷마블 의장도 평소 지인들에게 ‘2세 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넷마블 창업주 방준혁 이사회 의장도 2세 승계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앞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넷마블 내부 사정에 정통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방 의장이 2세 승계에 대해 거부감이 커, 전문경영인 체제로 가겠다는 게 내부방침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금 많은 재벌이 경영권을 3·4세들에게 물려주는 과정에 있다”
며 “경영 능력과 도덕성이 떨어지는데도 총수의 아들이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경영 세습’을 법과 제도로 제어할 수 없다면 이번 벤처인들의 행동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성도 있다”고 말했다.

세습 경영 순기능도 있어

세습 경영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너가 경영하면 경영자와 주주 사이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최소화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 장기 투자가 가능해 성과 위주의 근시안적 경영의 폐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채조달 비율도 낮추고 인수합병 가능성이 낮아 불필요한 가치 하락도 방지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빠른 의사결정으로 기업의 미래전략을 구상하는 데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순기능이 분명 있다. 심지어 외국의 사례에서는 후계자 경영 기업이 비가족기업에 비해 더 좋은 경영 성과를 보이기도 한다.

외국에서도 창업주의 후손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경우가 있다. 또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너 경영’보다 반드시 낫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외국에선 창업주와 핏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경영권을 물려주는 ‘경영 세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영권을 이어받으려면 공정하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후계자로 선정돼야 한다.

한 재계의 관계자는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해진다면 이런 논쟁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며 “세습 경영의 순기능에 대한 기업별 고찰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고 했다.

이어 “논란이 된 기업인들이 자중하거나 경영에 열중하는 모습을 더 보여준다면 이 같은 논쟁이 사라질 것이고 문제 발생 시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강력한 규제가 이어질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현 정부의 핵심 경제 공약인 경제 민주화를 실행하기 위해 대통령 지시로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경제 민주화 태스크포스에 힘이 더 실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정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말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공정위에 ‘경제 민주화 TF’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공정위가 ‘총대’를 메고 법무부, 금융위원회 등 유관 부처에 흩어져 있는 경제 민주화 정책을 총괄해 추진하라는 취지다.

공정위는 그동안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지적해 왔다. 그런 공정위가 힘을 더 받으면서 자연스레 그동안 지적했던 일에도 힘을 받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사정 당국의 메서운 눈초리도 한몫

국세청도 ‘금수저 탈세’를 근절하기 위해서 편법 상속·증여가 있는 50개 기업에 대해 전국 동시 세무조사를 착수했다.

특히 이번 세무조사는 이전과 달리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 사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세청이 최근 오너 2·3세들의 갑질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서 편법, 탈법을 통한 경영권 세습에 근절을 위해서 칼을 빼든 것이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기업 자체가 아니라 ‘사주 일가’에 대한 증여세·상속세 탈세 혐의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사주 일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최근 국세청인 대기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 대상에 역외탈세를 이용한 상속·증여세 탈루 혐의자도 있다”고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착수 대상 중에서는 조세회피처에 설립한 회사와 전직 임직원 등에게 분산·관리하던 명의신탁 주식을 자녀에게 저가로 양도해 우회 증여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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