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비핵화의 전제 조건으로 북한 ‘체제 보장’을 요구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월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중국 다롄(大連) 회동에서도 체제 보장을 되풀이했다. 그는 관련국들이 “대북 적대정책과 안전 위협을 없앤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미국이 김정은 권력의 안전을 보장해 준다면 핵은 필요 없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북핵은 체제 보장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북핵의 궁극적 목적은 핵으로 미국인들에게 핵 피격 공포심을 자극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남한 적화를 위한 데 있다. 이미 1960년대 말 김일성 북한 주석은 핵과 미사일을 빨리 개발해 미국인들을 위협,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고 독려했다. 1993년 10월 이철 유엔주자 북한대사는 북핵 문제는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할 경우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년 3월 북한 총참모부는 한·미연합군사훈련과 관련, “우리 군대는 정의의 핵보검으로 무자비하게 (한·미를) 짓뭉개버릴 것”이라고 겁박했다. ‘핵보검’ 위협으로 한·미군사훈련마저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체제 위협을 되풀이 주장하지만, 미국은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의 끊임없는 군사 도발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도 북을 공격한 적 없다. 미국은 북한이 중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는 터이므로 중국의 개입이 우려돼 군사적으로 북한을 건드리지 않는다. 김정은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붕괴를 예로 들며 핵을 포기하면 자기 권력도 파괴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카다피 정권이 붕괴된 것은 핵 포기 때문이 아니다. 카다피 붕괴는 중국과 같이 리비아를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막아 줄 강대국과의 군사방위조약이 없었던 데 기인한다. 미국은 조·중(朝·中)군사방위조약에 따른 중국의 군사 개입을 우려, 북한을 아프간·이라크·리비아처럼 침공할 수 없다. 북한이 감히 세계 최대 군사 강국 미국을 상대로 겁 없이 까부는 것도 바로 중국을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미국이 자기 권력을 파괴코자 한다고 기망한다. 분명히 노리는 게 있다. 미국이 북 정권을 적대시하고 위협하므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 주한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위해서이다. 북한은 1974년부터 미·북평화협정을 끈질기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미·북평화협정은 미국이 1년 전인 1973년 베트남과 ‘파리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월미군을 60일 안에 모두 철수시킨 사례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김정은은 미·베트남 평화협정을 모델로 미·북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시켜 결정적 시기에 남한을 적화하고자 한다. 미국과 한국은 김의 체제 보장 요구가 주한미군 철수를 노리는 것임을 직시, 그에 말려들지 말아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미·북평화협정만은 받아들여선 안 된다. 바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적시한 대로 주한미군을 목적으로 한 “북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은 한국을 사형시키는 것과 같다”는 데서 그렇다. 미국은 독일이 통일된 뒤에도 주독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고 있는 것처럼 북핵이 폐기된 뒤에도 미군을 이 땅에 주둔시켜야 한다. 중국의 아시아 패권을 견제하고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특히 김정은은 소련이 핵·미사일을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었으면서도 경제정책 실패로 내파(內破)됐다는 사실을 잊어선 아니 된다. 김은 북한 체제 안전을 위해선 내파된 소련처럼 핵·미사일 보유 보다는 북한 경제 개발이 더 시급하다는 시실을 통감해야 한다.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