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때리면 피할 수밖에 없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5월 6일 tvN 드라마 ‘라이브’가 종영했다. ‘라이브’는 전국에서 제일 바쁜 ‘홍일 지구대’를 배경으로 밤낮없이 근무하는 경찰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 시청자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드라마 속 경찰들은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고충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주취자들에게 혹사당하거나 사건 관계자로부터 폭언‧폭행을 당하는 모습 등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리 사회에는 시민들 곁에서 항상 시민들의 안전을 돕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경찰과 소방관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충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관심과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구급활동 방해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청원 올린 경찰관 “맞아도 참고 넘어간 사례까지 20번 넘는다”


지난 4월 2일 오후 1시경 소방공무원 강모(51·여)씨는 전북 익산시 평화동 익산역 앞 도로변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윤모(47)씨를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출동했다. 하지만 의식을 찾은 윤 씨는 구조에 나선 강 씨에게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손으로 강 씨의 머리를 5~6차례 가격했다.

강 씨는 같은 달 5일 어지럼증과 경련, 심한 딸꾹질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자율신경 손상 진단을 받았다. 9일에는 기립성 저혈압과 어지럼증으로 2개월 요양진단을 받고 정밀진단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4월 24일 자택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1일 끝내 숨졌다. 화재나 사고가 아닌 폭행으로 인한 구급대원의 순직은 이번이 처음이다.

폭언과 폭행 등 열악한 상황에 노출된 소방관들의 인권침해는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이른바 '매 맞는 소방관'의 신체적·정신적 고통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다.
 
폭행‧폭언 꾸준히 증가
가장 많은 경기도 218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에 따르면 소방관들이 구조·구급 업무중 폭행·폭언 피해를 당한 사례가 4년 새 2배 이상 늘어나고 최근 5년 7개월간 해당 건수는 870건에 달한다.

구조·구급활동을 하던 소방관이 폭행·폭언을 당한 건수는 2012년 93건(폭행 93건), 2013년 149건(폭행 149건), 2014년 132건(폭행 130건·폭언 2건), 2015년 198건(폭행 194건·폭언 4건), 2016년 200건(폭행 200건), 지난해 7월말까지 98건(폭행 97건·폭언 1건)으로 집계됐다.

특히 2016년(200건) 폭행 사례의 경우 2012년(93건) 대비 4년 새 2.2배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218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165건) ▲부산(67건) ▲경북(55건) ▲강원(47건) ▲대구(41건) 등이 뒤를 이었다.

매 맞는 소방관이 이처럼 늘고 있지만 처벌은 미미하다. 소방기본법 제50조 제1호는 출동한 소방대원에게 폭행 또는 협박을 행사해 화재진압·인명구조 또는 구급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처벌은 가벼운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구급대원 폭행 및 처분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최근 3년(2014~2017년 7월)간 구급대원 폭행사범 622명중 314건은 벌금형 이하의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2명 중 1명꼴이다.

한 소방사는 라디오에 출연해 “소방관들은 (경찰처럼) 제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그냥 피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있다. 그냥 때리면 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구급대원들에게
전기충격기 등 지급 검토

 
다행스럽게도 소방청은 최근 구급대원 폭행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키로 했다. 소방특별사법경찰관리가 신속·엄정한 수사와 검찰송치를 진행한다. 이를 위해 소방서․소방본부 소방특별사법경찰관리의 수사 역량을 강화한다.

소방청은 폭행억제·증거확보를 위해 모든 구급차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완료하고 웨어러블캠을 올해까지 100% 지급한다. 또 구급차 내 비상버튼, 휴대전화 앱 등 폭력행위 방지장치를 올해까지 개발해 보급한다. 폭력행위 중지 경고 방송, 119·112상황실에 자동신고 등의 기능이 포함된다.

소방청은 지난달 3일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열어 119구급대원에 대한 폭력행위를 차단하기 위한 자위수단 부여와 폭력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구급대원 스스로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수단과 근거 마련이 필요하다. 제도개선TF팀이 논의해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피해 구급대원 등을 지원하고 폭행피해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빠른 시일 내에 도출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방청은 구급대원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소지하고 유사시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폭력 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에 구급대원 등에 대한 폭행 상황 시 호신장구 등 사용 근거 마련하고 119구조구급법의 구조구급활동 조문에 방해(폭행 등) 금지 조항 외에 방해(폭행) 상황시 호신장구 등 사용 근거조항 추가를 통해서다.

전기충격기와 최루가스 분사기 등이 구급대원이 소유·사용할 수 있는 장비로 검토되고 있다.
 
지난해 공무집행방해범
약 1만 2천여 명

 
지난달 15일에는 현직 경찰관이 현장 출동 시 취한 시민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을 위한 청원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기도 했다.

본인을 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20대 남성 경찰관이라고 소개한 청원인은 “저는 지금까지 112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5번의 폭행을 당했다. 입건한 사례만 5건이고 맞아도 참고 넘어간 사례까지 하면 20번이 넘는다”며 “누구에게 맞았냐고요? 바로 술취한 시민들”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을 저는 3년도 안돼서 20번을 넘게 겪었다”며 “최근 저희 어머니가 피멍든 저를 보면서 울면서 ‘경찰 맨날 욕만 먹고 인정도 못 받는 거, 다치기만 하고 당장 그만둬라’라고 하셨다”고 사연을 전했다.

이어 “우리 전국의 경찰관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제가 유독 많이 맞은 게 아니다”라며 “모두들 맞고도 참아서 국민 여러분이 잘 모르는 것이다. 주취자들에게 ‘상욕’을 듣는 일은 근무마다 하루도 안 빠진다. 도와달라. 경찰이 매 맞으면 국민을 보호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경찰관 모욕·폭행·협박죄 신설 ▲경찰관이 테이저 건, 삼단봉, 가스총 사용할 수 있게 면책조항 강화 ▲경찰청의 적극적인 소송지원 등을 요구했다.

실제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공무집행방해범은 총 1만2,883명이다. 이중 70.2%인 9,048명이 술에 취해 경찰 등에게 폭행을 가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고충에도 불구하고 경찰도 제대로 대응을 할 수가 없는 게 사실이다. 자칫 주취자가 다치는 등 상해를 입을 경우 소송을 걸어오면 최악의 경우 공무원 자격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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