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볼 수 있는 곳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서울시 관악구. 빽빽이 들어선 상점 틈 사이로 작은 서점이 하나 보인다. 문을 열면 고양이 한 마리가 반갑게 손님을 맞이하는 독립서점 ‘여행마을’이다.
 
여행마을이라는 서점 이름에 걸맞게 내부에는 여행 관련 서적‧사진들이 가득하다. 인테리어에도 운영자의 고심이 엿보인다. 이 서점은 ‘지구책방’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각 나라에 대한 다양한 여행 콘텐츠로 지구를 품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공공기관에 다녔다는 운영자 정지혜 씨. ‘좋아하는 걸 하자’라는 생각으로 독립서점에 뛰어든지도 어느덧 1년 2개월이 흘렀다. 정 씨는 서점의 주인이자 ‘여행마을’의 이장으로도 불린다.
 
다음은 운영자 정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여행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볼 수 있는 곳

- 여행마을에 대해 소개해 달라.
▲ 서울시 관악구에 위치한 여행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이다. 주로 매입하고 있는 것은 여행 독립출판물이다. 여행 독립출판물이 80% 이상이고 기타 여행 기성도서나 중고품도 같이 판매하고 있다.
 
- 여행마을이라는 이름이 궁금하다.
▲ 처음 컨셉을 잡을 때 어떤 서점을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됐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다른 서점과 차별화가 될 수 있는 것’, ‘내가 힘들어도 오래 할 수 있는 것’ 등을 생각하다가 여행을 테마로 하게 됐다.
 
그 다음 서점 이름을 지어야했다. 당초 에버랜드에 있는 ‘지구마을’을 따려고 했으나 지구마을과 이름이 같은 곳이 있더라. 여행에 관련한 책들이 여기에 있으니 ‘여행이 이곳에 다 있다’는 의미에서 ‘여행마을’이라고 정했다. 또 지구를 품고 있으니 지구촌 책방이라는 뜻을 내포하고자 넓게는 ‘지구책방 여행마을’이라고 하고 있다.

 
   - 독립서점을 운영하게 된 계기는?
▲ 나는 전공이 과학정책이라 ‘관련 계통으로 가자’라는 마음으로 과학 정책과 관련한 공공기관에 다녔다. 3년차가 되니까 흔히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이라 말하는 증상이 오더라. ‘이 길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상담을 해봐도 “너만 힘든 것 아니다”, “그때는 다 그래” 등의 말을 듣게 돼서 이 말들을 믿고 버티다가 5년차 때 건강이 많이 악화됐다. 정신과 진료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던 중 독립출판물을 접하게 됐다. 독립출판물은 기존 출판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탈자본주의’, ‘공감’ 등을 매개로 하는 것들이 많아서 위안을 받게 됐다. 또 출근길에 독립서점이 뜬다는 언론 기사를 보게 됐는데 잠이 안 올 정도로 설레더라. 이것도 해보고 싶고 내가 이런 공간을 만들면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3~4일 간 고민을 하다가 퇴사를 결심하고 서점을 차리게 됐다.
 
- 서점을 열기까지 준비과정은 어땠나.
▲ 퇴사를 한 뒤 지난 2016년 11월에 준비를 해서 지난해 4월에 서점을 오픈했다. 2016년 11월, 12월에는 부동산을 알아봄과 동시에 전국에 있는 독립서점을 다 돌아다녔다. 그때 당시에는 독립서점이 204곳밖에 없었다. 또 때마침 오사카에 갈일이 있어서 서점의 운영 시간‧요일 등을 특징으로 한 큐레이션(curation‧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을 뜻하는 말) 방식, 인테리어 방식 등을 다 메모하고 다녔다.
 
이후 지도에 점을 찍게 됐는데 유난히 서울에는 해방촌, 연남동, 북촌에 독립서점이 많더라. 의문이 들었다. 분명히 책이랑 여행에 대해 돈‧에너지‧열정을 쏟고 아까워하지 않을 계층이 20~40세대까지 되는데 이분들이 많이 거주하는 관악구에는 독립서점이 없었다. 이 밖에 지방에 살던 분들이 서울에 상경할 때 관악구부터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보니 서점 위치를 관악구로 잡게 됐다. 세부 위치는 사당에는 반디앤루니스가 있고 신림에는 알라딘이 있으니 ‘중간 위치인 봉천으로 하자’라는 생각에서 봉천에 자리를 잡았다. 인테리어도 페인트칠, 가구조립, 배치 등을 혼자서 해결했다.

 
   - 인테리어 ‘콘셉트’는?
▲ 다른 서점의 경우 큐레이션을 ‘감정’이나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는데 여행서적 특성상 대륙별로 묶을 수밖에 없더라. 손님들이 “00나라 책 있어요?”라고 많이 물어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단은 대륙별로 묶어놓고 사진들을 비치했다. 손님들이 사진을 본 뒤 ‘이 나라는 어디지?’라는 말을 하면 그 책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드리고 있다.
 
-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 동네 특성상 6070세대 분들이 많은데 이런(여행, 독립서점 등) 문화를 잘 이해 못하시더라. 때로는 “집에 돈이 많은가봐”이런 말들을 하셔서 불편할 때가 있다. 이 밖에 어려운 점은 ‘돈’이다. 서점에서는 손님들의 방문 장벽을 낮추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서점들이 커피‧술을 팔고 모임 등을 진행하지만 녹록치 않다.

 
     - 독립출판물을 다루면서 어려운 점은?
▲ 거리에 6070세대 분들이 많아서 방문하시면 “왜 베스트셀러가 없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이런 경우 특정테마만 한다고 말하지만 “이런 책을 누가 구매해”라는 말을 들으면 설명하기 쉽지 않다. 또 내부 문제로 보면 독립출판물 제작자분들은 스스로 홍보를 하는 등의 노력이 있어야하는데 일부 안하는 분들이 있다. 서점입장에서는 열심히 홍보했지만 나중에 판매 실적 등을 말씀드리면 “너희가 잘못해서 책이 안 팔리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조금 속상하다.
 
- 독립서점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내가 지난 2016년 11월에 전국을 돌아다닐 때만 해도 204곳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에는 450곳이 넘는다고 하더라. 1년 조금 넘자마자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생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도 엄연한 사업이다. 따라서 조금 더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또 단순히 책을 비치한다고 손님이 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분석을 해야 한다. 책만 비치‧방치 하게 되면 제작자에게 엄청난 무례를 범하는 것이다. 늘어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다만 복사‧붙여넣기 식으로 양산되는 것은 조금 우려되는 상황이다.

 
   - 창업 전과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 서점을 열기 전, 회사를 다녔는데 회사자체가 공공기관이다 보니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상사가 하라는 일, 나라가 정해준 시책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서점을 해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것’을 펼칠 수 있더라. 능동적인 마인드가 됐다는 생각을 한다. 회사 다닐 때보다 만족도가 훨씬 더 크다.
 
- 독립서점의 장점은?
▲ 대형서점은 엄청난 물량과 편의성을 자랑한다. 반면 독립서점은 동네 근처에 있어서 거리성이 가까운 점, 주인과의 소통 등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숍, 주점 사장들에게는 손님들이 과거를 잘 안 물어보지만 서점 주인에게는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많이 궁금해 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는 서점 공간자체에 매력을 느끼지만 서점 주인에게도 매력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서점 주인과 좀 더 면대면 의사소통을 하고 친해질 수 있는 것이 독립서점의 가장 큰 장점이다. 또 서점 주인이 추천하는 큐레이션 등을 믿고 본인과의 공감점을 찾아나가는 ‘맛’이 있다.
 
- 예비(독립서점) 창업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회사에 다니기 싫으니 커피숍, 서점이나 운영해볼까’라는 말이 많아진 모양새다. 해보는 것을 말리진 않지만 이런 생각이 있다면 환상을 조금 걷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대신, 그 만큼 본인의 노력이 들어간다면 자신이 생각했던 서점을 원하는 삶에 맞춰 꾸미고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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