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세계 음식, 와인, 여행 작가 협회에서 발간하는 FWT 매거진이 선정한 2018년 최고의 여행지 중 남태평양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최상위권인 11위에 올랐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는 하늘의 별 따기인 솔로몬 여행, 그 속으로 어렵게 들어가 봤다.
 
성경과 탈무드에 등장하는 ‘지혜의 왕’, 솔로몬의 이름을 딴 솔로몬 제도는 2만8450km나 되는 널찍한 면적에 992개 이상의 섬들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대각선을 이루며 길게 뻗은, 열도에 가까운 섬나라이다.
   주도 호니아라가 위치한 과달카날과 다이빙 명소로 유명한 기조와 문다 섬이 솔로몬에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슈이젤, 산타이사벨, 말라이타, 산크리스토발, 산타크루즈, 그리고 아직 정확히 몇 개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환초들이 솔로몬을 이루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 모로 운동
 
솔로몬의 원시마을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라져가는 전통방식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일부러 보존한 것이 아닌, 현대적인 삶을 살다가 다시 원시생활로 돌아가기로 작심한 사람들이 만든 공동체로 이를 ‘모로 운동’이라고 한다.

이 독특한 역발상적 운동은 솔로몬 제도의 수도 호니아라가 위치한 과달카날 섬에서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이어진 ‘과거로의 회귀’ 운동을 잇고 있다.
   또 이 운동에는 단순히 전통 부족이 살던 삶의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행위뿐만 아니라 주술적이고 영적인 요소들까지도 결부돼 있다. 모로 운동은 가장 빈곤하고 개발에 뒤쳐진 웨더코스트 지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진행됐다.

현재도 약 3~4000명의 솔로몬 사람들이 이 방식대로 살아간다. 전기와 가스를 비롯해 그 어떤 문명의 이기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급자족하며 자신들만의 라이프를 살아가고 있다. 또 누구도 이들의 결정과 삶의 방식을 평가하지 않는다.
   이들의 표정이나 행동에도 후회나 불편함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야말로 남의 생각과 평가에 관계없이 내 방식대로 살아가는 떳떳한 모습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언어 체계 안에서는 이런 행위를 적절히 정의할 수 있는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에 녹아들어 있는 솔로몬의 복합적인 사회적 배경과 사람들의 철학과 의지는 단순히 ‘원시적’이라는 단어로 폄하할 수 없는 것들이다. 모로 운동에는 솔로몬 사람들의 민족성에 잠재된 ‘불가침의 원칙’이 흐르고 있다.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남의 일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영어로 ‘None of your business’로 표현되는 이 정신이 솔로몬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솔로몬과 함께 멜라네시아 문화권으로 분류되는 피지, 바누아투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수도 호니아라
 
수도 호니아라에는 비가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었다. 공항에 마중 나온 솔로몬 관광청의 크리스는 도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지만, 재정비 중이니 이해해 달라며 차에 타자마자 당부를 했다.
   솔로몬을 처음 찾은 이방인들이 좋지 않은 첫인상을 갖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도로 사정은 경고(?)대로 좋지 않았다. 자갈밭을 달리기라도 하는 듯 자동차는 계속 출렁댔고 황토색 먼지가 일어나 창을 닫아도 매캐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신호등도 없어 방어 운전은 필수. 그렇게 30여 분을 달리자 카지노와 원색의 멋스럽고 버젓한 가게들, 3층 높이의 쇼핑몰 건물까지, 순식간에 현대적인 도심으로 진입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와 다시 달리니 또다시 반전이 시작됐다.
  난전과 쓰러져가는 허름한 주택, 급기야는 원시부족이사는 마을까지. 현재 미래 과거가 한 길에 펼쳐져 있는 듯 했다.

과거여행부터 시작했다. 루마 타포포호라는 이름의 모로 운동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원시부족마을에 도착했다. 여행객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진짜 원시 방식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처음 만났기 때문에 그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태도와 표정에 부쩍 신경을 썼다.
  이방인이 방문했을 때 비틀넛을 깨물며 벌이는 환영의식을 ‘찬다’라고 부르는데, 족장처럼 보이는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자 최소한의 곳만 옷으로 가린 젊은 남녀와 아기, 부인네들이 나와 우리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는다.

족장이 먼저 비틀넛을 깨물고 나뭇잎을 젓가락 두개 넓이만큼 접어 하얀 가루에 찍어 먹는다. 대체 무슨 맛인지 궁금한 마음을 참을 수 없어 매실처럼 생긴 비틀넛 열매를 받아 들었다.
  중간에 단단한 열매를 꺼내어 입 안에 쑥 집어넣고 어금니로 꽉 깨물면 되는데, 아주 떫고 신 감 맛이 전해졌다. 하지만 감처럼 부드러운 과육이 아닌 뻣뻣한 나무껍데기를 씹는 듯한 질감과 떫은 맛이 씹는 순간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앞으로 어떤 음식도 전부 떫게 느껴질 것만 같은 아주 기분 나쁘게 찌릿한 맛이었다. 솔로몬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사람들 모두 치아와 잇몸이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바로 비틀넛 때문이었다.
  비틀넛에는 약간의 대마초 성분이 들어있어 씹고 일어서면 머리가 어질하고 핑 도는 기분이 느껴진다. 특히 젊은 남자들은 특별히 즐길 만한 유흥거리가 없어 비틀넛을 씹으며 시간을 보낸다. 오래 씹으면 구강암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비틀넛은 솔로몬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매개체다.

루마 타포포호 마을은 원시부족의 모습으로 사는 10개의 마을 중 호니아라 시내와 가장 가까운 마을이어서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마을이다.
  깊은 산 속에 위치한 마을을 방문할 때는 방문자들조차도 현대적인 옷을 입을 수 없고, 부족 사람들과 같은 옷을 입어야 하며 신발은 벗어야 한다. 부족민들이 실제 먹고 자고 불을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지만, 나뒹구는 쓰레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생각보다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차돌을 달구어 음식을 만드는 방식을 ‘구라’라고 한다. 코코넛 밀크에 펄펄 끓는 차돌을 담그면 코코넛 밀크가 열기로 팍 튀어 오르면서 구수하고 달콤한 코코넛 향이 퍼져 식욕을 자극한다. 따끈해진 코코넛 밀크에 다진 고기와 야채를 코코넛 잎으로 싼 묶음을 넣고, 잎으로 덮은 후 다시 차돌을 돌리는 과정을 세 네 번 정도 반복했다.
  맛이 기대되는 구수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불마저도 직접 나무와 나무를 마찰시켜 피우는데 이를 ‘우수’라 부른다. 말린 코코넛 잎으로 짠 돗자리를 깔고 작은 화로불을 피우고 잠을 청한다.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에 부족의 전통 의상을 입어보고 싶다는 다소 무모할 수도 있는 요청을 했다.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프란시나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옷을 벗어 정성스럽게 입혀주었다.
 나무를 꼬아 만든 끈은 혼자서는 메기가 어렵다. 갑작스런 욕심이 생겨 그 옷을 사고 싶다고 했더니 가격을 어떻게 정해야 할지 몰라 한참 서로 상의를 해야 했다. 옷을 사겠다는 사람이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의 수도 기조와 문자
 
솔로몬의 수도는 ‘호니아라’이지만 여행자들의 수도는 '기조’로 불린다. 기조와 문다에서는 세계대전 당시 난파된 비행기와 탱크, 전투기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굳이 박물관이 아닌, 학교 앞마당이나 전통 공예품 판매장앞 같은 곳에도 늘어서 있다. 전쟁 당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타고 있던 함대가 적의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는데, 간신히 헤엄쳐 나와 구조된 섬에 그의 이름을 붙여 케네디아일랜드로 불리는 곳도 있다.
 예쁜 바다라고 하면 보통 색과 빛깔로 구분하지만, 솔로몬, 특히 기조의 바다는 물고기와 산호, 해삼, 불가사리, 대왕조개가 그득해 색의 경계를 구분짓기가 어렵다.

보통 리조트 인근에 그렇게 많은 물고기와 산호를 보기 어려운데, 남태평양에서도 유독 솔로몬의 수중 환경은 압도적이다. 연산호의 수도로 불리는 피지나, 에메랄드 빛 사모아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갖고 있다.
 
 <tip>
기조와 문다에서 호니아라 사이를 운행하는 비행기의 경우, 좌석 지정이 안 돼 있기도 해서 비행기가 도착하면 잽싸게 달려가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또 경비행기로 운행되고 있어 체크인 시에 사람도 함께 무게를 측정한다.
 
기조의 리조트들
 
다이빙을 즐기고 싶다면 이미지네이션 아일랜드 리조트를 추천한다. 시설은 백팩커 수준이지만, 4명이 1박에 10~15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이 정도의 바다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단언한다.
 기조의 대부분의 리조트들은 다이버와 스노클링 등의 수중 액티비티가 주목적인 손님들을 제일 먼저 고려하기 때문에 얼마나 친환경적인지가 중요하다.

대부분 평가가 좋은 리조트들은 시설보다는 바다와 주변 환경이 더 훌륭한 곳들이다. 선비스 리조트와 오라바에는 ‘에코 리트리트’라는 생소한 분류 기준에 속한다.
 직역하면 ‘친환경 은신처’라는 뜻으로 그 표현이 딱 맞는 곳들이다. 생존을 위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것만 갖춘 지나치게 군더더기 없는 시설이 특징. 사람이 사는 데 고작 이 정도만 필요하다면, 굳이 악착같이 고생하며 돈을 벌려고 애쓸 필요가 있나 싶다는 생각마저 드는 곳들이다.
 
 <info> 솔로몬 어떻게 갈까?

모든 영토가 섬으로 이루어진 솔로몬은 수도인 호니아라에 위치한 호니아라 국제공항에서 각 섬으로 보트 또는 국내선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한국에서 직항이 있는 호주의 브리즈번과 시드니, 피지의 난디에서 가는 방법이 가장 편리하며 일본이나 호주에서 파푸아뉴기니의 포트모리스비 혹은 바누아투의 포트빌라로 먼저 이동한 뒤, 항공을 갈아타고 솔로몬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호주 브리즈번을 경유하는 방법이 도시+휴양으로 가장 괜찮은 조합이라고 할 수 있으며 솔로몬 에어가 브리즈번에서 호니아라까지 주 4회 운항, 약 2시간 50분가량 소요된다. 솔로몬 제도, 먼저 알고 가자.

<사진제공=여행매거진 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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