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냐 봉합이냐’ 김명수 대법원장의 선택은?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두고 법원 내부가 신구 세대 간 이견으로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단독·배석판사 등 소장 판사들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를 강하게 촉구하는 반면, 법원장 등 고참 판사들은 형사고발이나 수사의뢰 등 수사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내부 갈등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소장 판사들 VS 고참 판사들 충돌 ‘내부 갈등 중’
후속조치 관련 사법발전위원회 의견도 엇갈려


지난 7일 전국의 각 법원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국법원장간담회 결과는 예상을 뒤집지 못했다.

이 자리에는 전국 각 법원장들과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 등 총 35명이 참석했다. 제주지법원장은 선거관리위원회 일정으로 불참했다.

당초 법원장간담회는 법원행정처장이 주재해 김명수 대법원장은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안 처장은 특별조사단 단장이었던 점을 이유로 개회 후 인사말만 간략히 한 후 기관 서열에 따라 성낙송 사법연수원장에게 회의 주재를 맡긴 후 퇴장했다.

법원장들은 특별조사단의 조사보고서에 관해 약 20분의 요약 설명을 들었고, 간담회는 자유로운 논의를 위해 비공개로 진행됐다.

간담회 결과 법원장들 다수가 사법부에서 고발이나 수사의뢰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전국법원장간담회
‘재판 거래, 합리적 근거 없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뚜렷한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형사상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처음의 결론이 옳다는 것이다.

또 법원 안팎에 논란이 크게 일고 있는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을 합리적인 근거 없이 제기하는 것을 깊이 우려한다는 의견도 냈다.

이 같은 논의 결과는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 조치 등 검찰 수사에 돌입할 경우 사법부 불신을 더욱 키울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가 직접 형사고발이나 수사의뢰를 할 경우 내부 혼란이 가중되고 사법부 독립이 침해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투표나 의결이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법원장들 다수가 이러한 내용을 김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기로 하면서 형사 조치에 대한 ‘신중론’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다.

앞서 서울고법 부장판사들과 소속 고법판사들이 수사 필요성에 선을 그은 것과 같은 모양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사법행정 담당기구나 자문기구가 형사고발, 수사의뢰, 수사촉구 등을 하면 향후 관련 재판을 담당할 법관에게 압박을 주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단독·배석판사들
‘성역 없는 수사 요구’

 
하지만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는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명확한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들에게 합당한 책임을 물어 사법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1일 의정부지법 단독·배석판사들을 시작으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과 배석판사들, 서울가정법원 단독·배석판사들, 서울남부지법 단독·배석판사 등이 잇따라 판사회의를 열고 철저한 수사 또는 법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촉구했다.

이날 수원지법과 청주지법도 전체 판사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에 대한 엄정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했다. 또 부산지법 부장판사와 단독판사들은 주도적으로 관여한 전·현직 담당자에 대한 형사상 조치를 비롯한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지난 7일 열린 광주지법 부장판사 회의에서는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대한 깊은 유감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실효적 대책 마련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회의에는 총 34명의 부장판사 중 27명이 참석했다.

그 결과 ‘사법 행정권자의 사법 행정권 남용으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점에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또 ‘사법 행정권 남용 행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실효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한목소리가 나왔다.
 
고심 깊은 김명수 대법원장
수습은 어떻게?
 

전임 대법원장의 사법 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인해 사법부는 커다란 내홍에 휩싸였다. 이와 관련한 처리를 두고 법원 내부 젊은 판사들과 고참 판사들 간 갈등도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판사들을 중심으로 진상규명을 위해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반면, 고참급 판사들은 형사고발 및 수사의뢰 등을 할 경우 사법부 독립이 침해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법원 내·외부 의견을 모두 듣고 관련자들의 형사상 조치 등 최종 결론을 내겠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고심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지난 5일 대법원에 따르면 사법발전위원회는 이날 오후 2시부터 3시 20분까지 대법원 회의실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김 대법원장도 참석했다.

사법발전위는 위원장인 이홍훈 전 대법관을 비롯해 박성하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 김홍엽 성균관대 로스쿨 초빙교수, 고미경 한국여성의 전화 상임대표,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 등 총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법원 내부 인사로는 김창보 법원행정처 차장과 이성복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도 포함돼 있다.

이날 위원회에서는 법원 내부 계획에 불과한 내용을 조사했다는 비판과 의혹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엇갈려 나왔다.

후속조치와 관련해선 실현됐다는 증거가 없어 수사를 해도 밝히기 어렵다는 의견과 수사에 적극 협조하거나 필요성을 언급하는 의사 표시로 충분해 고발은 필요 없거나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시됐다.

반면 신속한 징계 등 처분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수사의뢰 또는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 모든 문건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 등도 개진됐다. 이처럼 의견이 엇갈리면서 위원회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와 관련해 뚜렷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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