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도 더우면 웃통 벗을 날 오길 기대”

선물, 한솔, 해나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불꽃페미액션’ 단체 여성 10명이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상의를 탈의했다. 페이스북이 이 단체 회원들이 찍은 여성 상의 탈의 사진을 삭제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대해 ‘불꽃페미액션’은 왜 남성 상의 탈의 이미지는 놔두면서 여성 몸에만 ‘성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와 맞물려 사회에서 강요한 여성의 기준에서 벗어나자는 의미인 ‘탈코르셋’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적 관심과 반향을 끌어내고 있다.


- 사회 통념상 아직 이르다?…“예방주사 놓은 것”
- 여성 몸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원인은 ‘가부장제’



지난 2일 강남 대로변에는 웃옷을 벗고 맨가슴에 ‘나는 음란물이 아냐’라고 쓴 여성들이 늘어섰다. 페미니스트 단체 ‘불꽃페미액션’의 ‘찌찌해방’ 퍼포먼스다.

앞서 페이스북코리아는 지난해 이 단체가 퀴어축제에서 상의 탈의한 사진을 노출규정에 위반된다며 삭제했다. 페이스북은 지난달에도 이들이 게시한 상반신 노출 사진을 ‘음란물’이라며 지우고 계정 1개월 정지 처분을 내렸다.

이에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은 서울 강남구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여성의 반라 사진만 음란물로 분류하는 것은 ‘여성의 신체는 성적 대상’이라는 전형적인 성적 대상화이자 여성혐오”라면서 상의 탈의 시위를 벌였다.

페이스북코리아 측은 같은 날 해당 사진들을 복원하고 사과했다. 경찰은 이들의 시위가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끝없이 쏟아지는 언론 보도에 주말 동안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지난 5일 서울 동작구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선물, 한솔, 해나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를 만나 ‘여성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여성의 몸,
성욕 자극하는 존재 아냐
 


불꽃페미액션은 지난 2016년 5월 21일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조직됐다. 이들 단체의 이름은 ‘불꽃여자농구단’이라는 이름의 스포츠 모임에서 따왔다.

현재 소속 인원은 200여 명이며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은 30~50명이다. 단체 안에는 ‘우즈’라고 불리는 또 다른 공동체가 있다. ‘기획단’이라 할 수 있다.

우즈가 기획의 큰 틀을 짜 놓으면 참여자들이 모여 세부적인 것을 계획한다. 선물 씨는 “최근엔 가입 신청을 신중히 받고 있다. 공동체 약속문을 읽고 소감을 구체적으로 전한 사람에게만 가입을 허가한다”라고 했다.

이들의 공동체 약속문은 성적 피해 경험을 듣고 피해자에게서 원인을 찾는 말을 하지 않을 것, 상대방의 겉모습을 평가하는 발언에 유의, 성별 고정관념에 바탕을 둔 차별적인 언행 금지 등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재정은 대부분 기고 후 받은 원고료나 굿즈 판매, 아름다운 재단, 한국여성재단 등의 지원 사업 수행 등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 선물 씨는 “이번 시위로 돈 좀 벌었겠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후원금 7만 원 들어왔다. 운영하는 데 힘이 드는 건 사실이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새로운 여성단체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이들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액션’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가슴 노출’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들은 여성 몸을 터부시하는 사회 분위기의 원인으로 ‘가부장제’를 꼽았다. 해나 씨는 “남성의 나체는 ‘인간의 몸’이고 여성의 나체는 ‘성적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성의 몸 자체가 누군가의 소유물 혹은 누군가의 자원으로 여겨지는 분위기 때문이다”라며 “이게 곧 가부장제 시선이다”라고 꼬집었다.

한솔 씨는 “여성의 몸은 늘 보이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가부장제 시선이 여성 신체에 가하는 억압에 저항하는 퍼포먼스를 보면서도 음란물로 규정하고 성희롱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남성이 사회 내에서 여성을 보는 시선에 대한 반증이다”라고 했다.

 
<뉴시스>

실제 악성 댓글도 많이 달렸다고 한다. 활동가의 뱃살 사진을 캡처해선 ‘찌찌해방 아니고 뱃살해방 아니느냐’라고 하는가 하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이런 얼굴이니까 페미니스트하지’ 등의 글이 쏟아져 나왔다.

이에 대해 해나 씨는 “얼굴을 가리면 ‘왜 가렸냐’할 것이고 얼굴을 드러내면 ‘남자 아니냐’ 따위의 댓글이 달린다. 만약 내가 날씬했더라면 ‘왜 예쁘게 생긴 애가 페미니스트 하느냐’라고 했겠죠”라고 토로했다.

특히 그는 ‘여성이 상의를 벗는 것은 사회 통념상 아직 이르다’란 지적에 대해선 ‘예방주사’를 놓은 것이라고 했다.

사회 통념은 늘 이르다고 말하는 것 같으니 대중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미리 시도해 놓았다는 것이다. 해나 씨는 “‘대중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말 지겹지 않나. 통념은 깨라고 있는 거다. 과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같은 길을 가려는 것이고 여러 시도를 통해서 조금씩 길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단체의 강점을 ‘빠른 활동력’을 꼽은 이들은 ‘몸과 섹슈얼리티’ 이슈가 터질 때마다 움직이는 것을 향후 목표로 잡았다.

시류를 가장 빨리 읽고 ‘액션’에 나서는 단체이자 여성 해방에 기여하는 단체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다. 선물 씨는 “언젠가는 노브라로 딱 붙는 옷, 흰옷도 입고 운동하다 더우면 웃통도 벗고 싶다”라고 밝혔다.
 

1960년대 쏘아 올린
‘가슴 해방’ 운동

 

‘가슴 해방’ 운동의 역사는 길다.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인선발대회에 항의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지난 1968년 9월 7일 대회장 앞에서 ‘브래지어 태우기’ 운동을 감행했다.

한국 페미니스트들도 지난 2000년대 여성의 자유로운 몸을 억압해온 브래지어를 벗어던지는 ‘노브라 선언’을 한 바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2014년 서울 홍대 거리에서 개최한 ‘이것도 시위’에서 브라를 자르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같은 여성들의 저항 덕분에 여성의 가슴이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것이 조금씩 해제되는 기미가 보인다.

한 해외 여성 아티스트는 지난 2016년 생리혈이 묻은 옷을 입고 자는 장면을 작품으로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음란물 판정을 받았지만 당사의 사과를 받고 사진을 복원하기도 했다.

최근엔 더 나아가 남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않을 것을 주장하는 ‘탈 코르셋’ 바람이 사회에 불고 있다.

주로 짙은 화장이나 다이어트, 긴 생머리 등을 거부하고 갖고 있던 화장품을 부수거나 머리카락을 잘라 탈 코르셋을 인증한다.

이 같은 탈코르셋 인증·선언은 지난 8일 기준 한 소셜미디어에서 검색했을 때 2660개의 게시물이 검색됐다. 이 중 탈코르셋을 선언한 한 이용자는 “실눈 뜬 채 꽃밭으로 착각하고 사느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세상을 마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탈 코르셋 동참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김은실 이화여대 교수는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시장 권력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이자 남녀 주체의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이라면서 “여자다워야 한다는 억압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구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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