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 北 비핵화 대가 한화 2150조 원 규모 예상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경제적 지원 부담을 한·중·일 3국에게 미루는 발언을 한 것과 관련해 각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아무래도 한국이 대북 지원의 대부분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느냐는 관측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대북 경제 지원과 관련해 “한국이 나설 것이고 중국과 일본이 도움을 줄 것”이라며 미국은 빠지겠다고 밝혔다. 이는 경제적 보상을 할 주체로 한·중·일을 직접 지목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의 당사자인 한국이 주로 부담해야 한다는 의사를 공식화한 것이다. 미국은 생색만 내고 막대한 비용은 한국 몫으로 떠넘기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트럼프 대통령 “한국이 나설 것이고 중국‧일본이 도움 줄 것”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北경수로 건설 비용 한국‧일본이 7:3 분담

 
‘세기의 담판’으로 불리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비핵화의 구체적인 로드맵과 함께 비핵화의 보상 비용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경제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 없어 보인다.

지난 8일 NHK는 백악관에서 전날 이뤄진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인터뷰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김정은 위원장이 “큰 전략적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에 응하는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체제 보장과 함께 경제적으로 실현 가능한 길(지원 가능한 방법)이 있다는 것을 북한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을 연동시키는 데 있어 일본의 경제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하면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등 많은 국가가 북한의 경제 지원에 참가하게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경제 지원은 북한이 진정한 행동과 변화를 보여줄 때까지는 없다”며 “일본의 경제 지원도 마찬가지”라면서 북한의 비핵화가 경제 지원의 전제 조건이라는 점을 못 박았다. 당시 인터뷰에서 미국의 경제 지원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북한에 무조건으로 ‘퍼주기’식이 아닌 우리의 명분과 실리를 얻는 방향으로 대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친북 성향을 보이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퍼주기’를 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이유다.
 
권혁철 교수
핵 폐기 비용 약 29조 원

 
향후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보상 비용은 수십조 원에서 수백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남궁영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은 북미정상회담에 대해 적극적인 메이커 역할을 했다”면서 “트럼프가 봤을 때 한국은 북미회담, 북측 관계를 만들어 나간 액터이기 때문에 한국이 가장 많이 비용을 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핵을 폐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직간접 비용과 경제 원조를 포함하면 최대 270억 달러(약 28조9000억원)로 추산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Fortune)과 영국의 유라이즌 캐피털 연구소는 북한이 비핵화를 하는 대가로 10년간 2조 달러(한화 2150조원) 규모가 추산된다고 예상했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비용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중국과 일본도 부담 비율과 액수를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남궁 교수는 “(북미 협상) 결과에 따라 다르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뿐만 아니라 일본 안보의 치명적인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폐기까지 합의했다면 (일본이) 국가안보를 위해 기꺼이 내야 하고 트럼프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중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간다면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 선배로서 지원해 주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미국이 1994년 제네바 합의 때도 북한 핵 동결의 대가인 경수로 건설 비용(46억달러)을 한국과 일본에 70%와 30%씩 부담토록 한 적이 있어 이번에도 유사하게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럴 경우 우리 정부의 부담 비율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일본 고노 외무상은 지난 5일 각료회의 후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은 한국, 일본, 중국이 하라고 한 데 대해 “일본은 핵미사일, 납치 문제가 포괄적으로 해결되면 국교정상화를 할 용의가 있으며 이때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도 할 뜻이 있다”고 미국에 전했다고 말했다.
 
대북 경협사업
명분과 실리 우선돼야

 
전문가들은 우리 정부가 북한 비핵화에 따른 대북 지원을 하되, 무조건이 아닌 명분과 실리를 얻을 수 있는 대북 경협 사업을 재개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내에서 북한에 퍼준다는 여론이 있는데 이를 의식하면서 통일이 되면 우리 영토가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에게 유리한 것부터 점진적으로 인프라를 투자해 나가야 한다”면서 “어느 정도 투자해서 북한 전역을 경제적으로 한국의 영향권 안에 둬야 통일됐을 때 국제사회 반발 없이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어느 정도는 지원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일단 인도적 지원과 우리에게 이로운 개성공단, 산림협력, 철도·도로건설은 중국과 같이 협력해서 한다. 북한의 인프라 구축은 국제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전 세계 투자자금을 모으고 북한을 국제기구에 가입시켜서 경제개발을 하면 된다”며 “국제사회에서의 북한의 투자 기회를 늘리고 신의주나 나진선봉 등 북중 국경에 전략적으로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궁 교수는 “현명하게 명분과 실리를 얻어야 한다. 무조건 부담하는 게 아니라 줄 것은 잘 주고 안 줘도 될 건 안 주고, 받을 건 잘 받는 게 좋은 외교이자 협상”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고조되자 자산운용사들이 기존 ‘통일펀드’를 재정비해 발 빠르게 수요에 대처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또한 남북 경제협력주들의 연일 강세에 힘입어 통일펀드의 인기와 수익률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액티브자산운용은 남북 양국 간 경제협력 수혜가 예상되는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는 ‘삼성통일코리아 펀드’를 출시한다고 이날 밝혔다.

기존에 운용해 오던 ‘삼성마이베스트 펀드’를 재정비한 펀드로 주목할 만한 남북 경제협력 수혜 업종과 종목을 선별해 투자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청산하려고 했던 통일펀드가 최근 남북관계 훈풍에 힘입어 기사회생한 후 선전한 사례도 등장했다.

하이자산운용은 통일펀드 ‘하이코리아통일르네상스증권자투자신탁’을 정리하려던 결정을 철회하고 최근 펀드를 재정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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