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일전쟁 중이던 1905년 7월27일, 미국의 윌리엄 태프트 육군 장관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을 방문해 도쿄에서 가쓰라 다로 총리와 기밀 회의를 갖는다.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주요 의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틀 뒤인 7월29일 둘은 3가지 사항에 합의했다. 첫째, 미국이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 둘째, 극동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영국·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미국은 일본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적 지위를 인정한다.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일본은 영국과 러시아에게도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을 차례로 인정받은 후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려는 야욕을 노골화한다.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1910년 8월29일 마침내 주권을 완전히 빼앗는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이처럼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의 동의를 얻어 한반도의 식민화를 노골적으로 추진해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 1945년 2월4일, 소련 흑해 연안의 얄타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 소련의 요시프 스탈린 최고인민위원 등 연합국 수뇌들이 모여 세계2차 대전에서 패색이 짙은 독일의 전후 관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눈다.
11일까지 열린 회의에서 이들은 미국·영국·소련·프랑스 4국이 독일을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일본 등 다른 패전국이나 우리나라 등 광복을 맞는 민족에 대해서도 별도의 방법을 찾아 합의한다. 특히 소련의 대일 참전 조건으로 루스벨트와 스탈린은 우리나라에 대한 신탁통치 실시를 약속한다. 이른바 얄타회담이다. 이후 연합군 참모장공동회의에서 전후의 한반도는 미군과 소련군이 분담하여 점령하기로 약정한다. 결과적으로 얄타회담은 민족분단을 야기하는 계기가 된다.
# 1950년 1월12일, 미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전미국신문기자협회에서 소련의 스탈린과 중공의 마오쩌둥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에서의 미국 방위선을 알류산열도( 일본 - 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한다고 밝힌다. 이른바 ‘에치슨 선언’이다. 이 선언은 미국이 한국,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를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시킴으로써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공격에는 대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비춰졌다. 그 결과 북한은 6 ·25전쟁을 일으킨다.  
# 최근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는 등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강국들도 숟가락 얹기에 혈안이 돼 있다. 구한말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각축전을 방불케 한다.
이런 와중에 주한미군 감축 또는 철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미국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가능성에 대해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주한미군 상당수 감축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미국 국방수권법안이 최근 상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미국이 한·미동맹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상황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아쓰라-태프트 밀약, 얄타회담, 애치슨 선언 때처럼 미국은 자국의 편의에 따라 한국을 버릴 수도 있다. 절대 아니라고 할 자 있는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이 서글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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