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부산 경남)지역에서 이회창계와 YS계간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지난 16대 총선때 이회창 전총재에게 공천을 배제당했던 YS계가 일전을 벼르고 있어 주목된다. 모두 한나라당과 신한국당 시절 한솥밥을 먹던 동료 일색이지만 이제 피아(彼我)의 경계가 뚜렷해진 셈이다. 한나라당에서 번지고 있는 PK지역 이회창계 공천배제설을 틈타 YS계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총선 초입에서 두 계파간 막후 파워게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이회창 전총재는 연초 선친선영을 찾은 자리에서 “무거운 마음이지만 (마음을)추스릴 때”라고 말한 것으로 한 측근이 전했다. 한나라당에선 당무감사 문건유출파동으로 이회창계가 포진해있는 PK지역이 벌집이 된 상황 직후 흘러나온 말이라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이미 낙마설이 돌면서 이회창계 PK의원 6명이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남은 의원들에대한 공천 지분 확보를 위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YS측 인사들이 주로 이회창계가 포진한 부산 지역구를 겨냥하고 있는 것이 연초 창심(昌心)을 ‘도발’시키고 있다는 후문과 무관치 않다. 하순봉 의원은 지난주 함덕회 모임에 참석, “사즉생의 정신으로 최병렬 대표가 과감히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혀 PK지역의 공천 지분을 뺏기지 않겠다는 선을 명확하게 그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이회창계가 절박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YS계는 이미 고지점령을 향하고 있다. 최근 노무현 사단에 입성, PK점령을 선언한 신상우 평통부의장, 김혁규 전경남지사가 선봉에 서있다. 한때 이 전총재와 얼굴을 붉혔던 YS계 출신들이다.

신 부의장은 지난 16대총선때 이회창 전총재에게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최근 YS계가 이처럼 노골적인 공세에 나선 것도 이같은 배경에 자극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특히 신상우 김혁규 등 YS계와 청와대와의 총선 연대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위기감을 느낀 하순봉 김기배 권철현 의원 등은 지분 확보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공천 문제가 어지럽게 얽히면서 이 전총재의 머리도 복잡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로선 YS계 인사들의 협공이 상상외로 강하다. 더구나 정면돌파 의지를 보이고 있는 2002 대선 자금 문제도 결과예측이 힘들어 상황이 여의치 못하다. 정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이 전 총재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사람은 꼭 도와줘야 한다’고 일종의 심적 부담감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하순봉과 권철현 의원이다.

지난 대선당시 하의원은 이 전총재를 도와 DJ 정권과의 교량 역할을 수행했고, 대학교수 출신인 권의원은 평소 ‘이 전총재의 보필’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하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진주에는 YS계 좌장격인 박관용 국회의장의 공보수석인 최구식씨가 출사표를 던진 상태이다. 권의원의 경우 지난 16대총선때 “7선이니만큼 이제 비례대표로 물러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비판한 신상우 부의장이 이번 총선에서 우리당 후보를 막후에서 지원하고 나서 접전이 예상된다.권의원은 현재 한나라당 부산시지부장을 맡아 정책연구소 설립과 각종 세미나 개최 등 서민 곁으로 다가서는 전략을 구사중이다. 권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번 총선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로 규정하고 “노 정권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한나라당이 선택돼야 한다”고 역설했다.16대총선에서 권의원에게 패했던 YS계 신상우 부의장은 열린우리당 후보를 내세워 대리전을 준비중이다. 신 부의장은 지난 연말 노 대통령과 송년오찬자리를 갖고 부산경남 총선구상을 이미 마무리했다. 부산지역에서는 이회창계 제거와 관련한 큰 구상도 포함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 부의장은 부산 북구 강서을 출마가 유력하다. 해운대 기장을도 이회창계와 YS계의 격돌로 주목받고 있다. 이회창 후보 법률특보를 지낸 김정훈 당대표 부속실 부실장이 YS계 최형우 의원의 참모출신 안경률 의원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안의원은 한나라당 당무감사 문건에서 경선대상인 C급에 포함돼 당지도부와 갈등이 큰게 변수다. YS의 후계자로 지목받던 김혁규 전지사도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한나라당 탈당에 앞서 YS를 찾은 김 전지사가 사전교감을 사후 추인받은 것으로 뒤늦게 전해진다. 김 전지사는 열린우리당에 입당, 김정길 전행자부장관과 투톱 시스템으로 PK지역 총선을 진두지휘할 태세다. 특히 정동영 당 의장이 “PK 총선과 관련 이 지역에 관한 사정은 두 분이 잘 알고 있어 이분들이 결정하는 방향대로 중앙당 차원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밝혀 PK 총선은 김 전지사가 주도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김 전시사는 김 전장관과 구정직전 회동을 갖고 향후 PK 선거전략과 외부인사 영입, 당의 진로 등에 심도있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YS계와 혈전을 목전에 둔 이회창계 의원들은 YS의 영향력을 대수롭지 않게 평가하고 있지만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는 속내다. 이 전총재의 측근인 정형근 의원(부산 북강서갑)은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대구경북, 민주당은 호남, 열린우리당은 부산 울산 경남, 자민련은 충청권을 베이스캠프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나 YS계 인사들이 PK 선거에 주력하는 동안 한나라당은 후보자 선정과정에서부터 이전투구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 의원은 “PK 선거는 곧 바로 수도권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회창 대통령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YS계 김무성 의원(부산 남)은 “상도동 인사들이 PK 선거에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예상못한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은 더욱 어려운 선거를 치러야할 형편”이라고 내다봤다. 김 의원은 특히 “최근 김혁규 전지사의 권유로 박맹우 울산시장의 탈당설이 나돌아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면서도 “그러나 울산지역도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대통령을 배후에 둔 ‘YS 사단’의 전방위 공세에 대한 대응책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정형근 의원은 “물갈이를 잘하면 좋겠지만 물갈이만 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YS계 김기춘 의원(경남 거제)은 “지명도는 떨어지더라도 참신하고 유능한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면서도 “야당은 여당처럼 정치모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만큼 당선 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 공천을 놓고 YS의 차남 현철씨와 신경전을 벌였으나, 김 의원이 공천을 신청함에 따라 현철씨가 경선을 포기하고 무소속 출마쪽으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측근이 전했다. 김의원이 공천을 신청한 배경에는 최근 다시 논란이 일고 있는 ‘안풍’으로 보인다.이는 YS계 사람들의 총선구도에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강삼재 의원 변호인들의 주장처럼 96년 당시 신한국당 총선자금이 YS의 대선자금 잔금이라는 사실이 입증되면 ‘상도동 사람들’은 4월 총선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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