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의 공세에 맞서, 파격적인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한 SK(주)의 향방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개선안 중, 손길승 이사(SK그룹 회장)의 퇴진은 지난 5년간 지속되었던 ‘최태원-손길승 투톱 체제’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밖에도 SK는 사외이사 비중을 70%로 늘리는 등 파격적인 지배구조안을 발표, 오는 3월 12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SK(주)는 지난 22일 지배구조개선안 발표와 함께 “이번에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진들의 재선임 추천은 없다”고 밝혀, 손길승 회장의 퇴진을 공식 확인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98년 최종현 회장 작고 이후, SK 경영의 축이었던 ‘전문경영인-오너 체제’는 막을 내리게 됐다.이번 개선안으로 손 회장과 함께, 황두열 부회장, 김창근 사장(이상 사내이사)과 하죽봉 변호사, 박홍수 교수(이상 사외이사) 등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특히 지배구조개선안 발표에 따라 향후 SK는 최태원 회장을 중심으로 한 ‘오너 체제’가 확립되고, 대폭적인 세대교체도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이같은 대폭 물갈이는 그 동안 소버린자산운용이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경영진 혁신’에 대한 SK(주) 나름의 적극적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SK(주) 이사회가 신임 이사후보로 추천한 인물은 사내이사에 신헌철 SK가스 대표(사내이사), 사외이사에는 조순 전 경제부총리, 남대우 전 가스공사 사외이사, 오세종 전 장기신용은행장, 서윤석 이대 경영대학장, 김태유 전 대통령 정보과학기술보좌관 등이다.

소버린 공세에 적극대응

특히 남대우 전 가스공사 사외이사의 경우, 지난 1월 29일 소버린이 이사후보로 추천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SK의 대 소버린 대응방향이 적극적으로 선회했음을 엿볼 수 있다. SK측은 “이사후보 선정기준에 적합하다면 소버린의 제안도 배제할 이유가 없다. SK(주)의 이익에 부합되면 어떤 주주, 이해관계자의 제안도 적극 수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같은 SK의 방향 선회는 대외적으로 소버린의 명분을 약화시키며, 내실을 기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공통된 분석이다.SK(주)는 또 이번 개선안을 통해 사외이사 비중을 70%로 확대, 3명의 사내이사와 7명의 사외이사로 경영진을 꾸려나가겠다고 밝혔다. 애초 SK는 1월 발표한 개선안을 통해, 당분간 사외이사 비율을 50%로 하고, 2006년부터 70%로 확대한다고 제시했으나, 최태원 회장이 ‘더 이상 미룰 필요 없다’고 제안, 앞당겨 시행키로 결정했다. 또한 사외이사가 중심이 되는 투명경영위원회를 신설해, 내부거래와 경영진 평가 등을 결정토록하는 방안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SK(주)가 상당히 파격적인 개선안을 제시함으로써, 그동안 투명경영과 경영진 교체를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소버린의 명분은 상당부분 퇴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SK, 일단은 유리

이번 개선안 발표로 그 동안 궁지에 몰렸던 최태원 회장측은 명분싸움에서 일단 승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은 개선안 발표와 관련 “이사회 중심 경영에 주력, 회사의 장기적 발전과 주주 이익 극대화에 앞장서겠다”고 말해 향후 적극적 경영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현재 SK(주)의 지분비율은 최 회장 우호지분이 36% 선, 소버린 우호지분이 30%를 약간 밑돌고 있다. 현재 구도로선 박빙의 표대결이 예상되지만, 이번 SK(주)의 개선안이 소액주주 및 기관투자가들의 호응을 얻는다면, 최소한 올해 주총에서는 최 회장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주주총회 이후. SK가 내놓은 이번 개선안이 올 한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겨지느냐에 따라 향후 최 회장의 입지는 판가름날 전망이다.또 불법정치자금 수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점도 최 회장의 활동반경을 좁히고 있는 대목이다.

만약 개선안이 실제 경영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소버린에 또 한번 빌미를 제공하거나, 최 회장이 검찰의 강도 높은 처벌을 받게 된다면, SK(주)의 향방은 다시 오리무중으로 빠질 가능성도 있다. 내년에 임기만료되는 최태원 회장이 다시 한번 퇴진압력을 받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초부터 ‘최태원 회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온 소버린과 일부 외국인대주주들의 향후 대응이 주목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한편 SK(주) 정기 주주총회는 3월 12일 9시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되는데, 재무제표 승인(배당: 액면가 15%), 이사선임, 정관변경, 이사보수한도 선정 등의 안건을 표결에 부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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