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중단‧경제 부흥 기틀‧정상國 지도자 이미지 연출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사상 첫 북미정상회담이 지난 12일 종료됐다. 역대 손꼽히는 ‘스트롱 맨’들 간 만남이 전격 성사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북미회담을 둘러싼 평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판정승’을 거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번 회담을 통해 명분과 실리, 이미지까지 ‘1타3피’를 챙겼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北, ‘눈엣가시’ 한미연합훈련 중단 성과…韓美日 막대한 경제 지원 ‘만지작’
金, 싱가포르 ‘깜짝 산책‧셀카’로 독재자 이미지 쇄신 불구 ‘쇼’ 평가

 
김 위원장이 취한 실리는 단연코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이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뜻을 처음으로 밝혔다. 그는 한미군사훈련을 ‘워 게임(war game)’이라고 지칭하며 비용과 도발적이라는 이유로 훈련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해서 날린 트윗에서도 “(북미) 양쪽이 진지하게 협상하는 한 ‘워 게임’으로 인한 엄청난 돈을 아낄 수 있다”며 한미연합훈련 중단 방침을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한미연합훈련이라는 ‘눈엣가시’를 제거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거둔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구체적 일정이 결여된 비핵화 선언만을 얻는데 그쳤다는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미 언론 CNN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는 당장 8월로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에 대한 중단 방침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화 국면의 지속이라는 전제로 한미훈련 중단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실상 우리 정부도 동의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이면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얻게 됐다.
 
미국이 회담 전 강조했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의 문구가 빠진 것도 북한으로선 이득을 챙겼다는 분석이다. 회담 직전인 지난 11일까지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CVID만이 미국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결과”라고 했지만, 합의문에는 관련 내용이 구체화되지 않았다.
 
국내외 일각에서 “북한이 구체적인 일정은 거의 내놓지 않은 채 미국으로부터 일련의 양보만 이끌어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북한 판 ‘잘 살아보세’
폼페이오 “北 투자 준비”

 
지난해 수차례 핵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한반도 위기감을 고조시켰던 김 위원장이 올 초부터 한국과 국제사회에 적극 손을 내밀면서 내세웠던 명분은 ‘경제 부흥’이었다. 비핵화를 통해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 사회주의 경제 개발로 나아가 가난으로부터 인민들을 해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은 대북 경제 지원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지원에서 한 발 뺐지만, 이웃이자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은 대북 관계가 풀리면 경제 지원에 나서기 위해 각종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한국은 각종 고위급 회담을 통해 철도‧도로‧항만 등 북한 인프라와 경제특구 개발 비용 등도 경제협력 대상에 포함할 전망이다.
 
일본도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일관계 개선과 3단계 경제 지원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지난 14일 일본 정부가 대북 지원과 관련,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초기 비용을 제공하는 것으로 시작해 인도적 지원을 거쳐 본격적인 경제협력에 나서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국도 정부 차원은 아니지만 민간 차원에서 북한의 경제 발전을 돕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하면 미국 기업은 수천만 달러를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 민간 부문이 북한에 가서 에너지망과 인프라 건설 등 북한 주민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도울 것”이라고 했다.
 
고립됐던 북한이 국제사회로 알을 깨고 나오면서 주변국들이 북한의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비핵화를 고리로 앞다퉈 지원하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과거 잦았던 북한의 합의 파기 전력 등을 근거로 섣부른 경제 지원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북미 공동합의문에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빠진 것과 관련, 합의문에는 없는 북미 간 ‘구두 합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망도 있다.
 
최근 방한한 폼페이오 장관은 “모든 것들이 다 최종 문서(북미 공동합의문)에 담긴 것은 아니다”라며 “최종 문서로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이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한의 ‘주요 비핵화’를 앞으로 2년 반 내에 달성할 수 있다는데 희망적(hopeful)”이라고도 발언, ‘2020년까지’라는 비핵화 목표 시한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내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모습이다. 공동합의문을 둘러싸고 실질적 성과가 없다는 비판이 지속되자 트럼프 정부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레토릭(수사)일 뿐이란 지적이다. 2년 반의 비핵화 목표 시한을 북한도 동의했는지 여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미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통신은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론을 진화하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核 몰두 미치광이
→ 정상국 리더 부각

 
한편,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첫 국제무대에 데뷔한 김 위원장이 잘 짜인 연출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 개발에 몰두하는 ‘미치광이 독재자’에서 정상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쌓았다는 분석이다.
 
오래 동안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왔던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동등하게 비춰지는 효과를 봤으며, ‘협상의 대가’를 자임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핵 담판’에서도 김 위원장이 밀리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팔이나 등을 가볍게 터치했는데 이는 그가 트럼프 대통령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제스처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회담 전날 ‘깜짝 산책’을 하고 시민들에 손을 흔들어 보이는 한편 싱가포르 장관들과 ‘셀카’까지 찍는 모습 등은 그간의 독재자 이미지를 상당 부분 희석시켰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김 위원장이 참모들에게 조언을 받고 예행 연습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호적인 스킨십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 대북제제 완화를 이끌어 내는 의도로도 읽힌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