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결과는 역대 최악의 보수 야당 궤멸이다. 기존 우파 지지층조차 등을 돌린 보수 야당 스스로 자초한 결과이다. 한국당은 17개 시·도 지사 중 대구·경북을 빼고 한 군데도 이기지 못했다. 바른미래당은 안철수 서울시장 후보의 ‘3위’ 낙선이 말해주듯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 민주당은 서울·경기·인천 기초단체장 66석 중 무려 62석을 석권했으며, 광역의원도 824명 중 652명(79.1%)을 차지했다. 여권은 중앙권력에 이어 지방권력까지 장악했다. 범여권 의석은 156석까지 늘어났으며, 사법부도 친(親)정권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2016년 총선과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3연패를 당한 ‘한국당 궤멸’의 원인을 복기(復棋)해 보자. 2년 전 20대 총선에서 집권당인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은 180석을 장담하다가 ‘옥쇄 들고 나르샤’ 등 공천 파탄으로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 그 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사태에 소속당 의원들은 정권과 당이 무너져도 자신만 살자고 탈당과 탄핵 찬성이라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었다. 대통령 탄핵 후에는 책임지는 의원이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복당한 의원들은 백의종군(白衣從軍)하지도 않고 당의 간판으로 기용됐다. 홍준표 대표가 막말을 하고 사천(私薦)을 하고 당을 전횡해도 113명 국회의원 중에 중진 몇몇을 제외하고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은 망하든 말든 자신의 안위(安危)만 걱정하면 그만이었다. 무기력한 보신(保身)주의 에 빠진 당이 민심의 철퇴를 맞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가 지난 14일 지방선거 패배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안철수 전 의원도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다. 김무성 의원과 윤상직 의원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김무성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당 대표를 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길 바란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분열과 직접 관련된 인사들과 원로들을 비롯한 중진들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보수 야당 재건을 위해 총선 불출마 선언(정계 은퇴)을 해야 한다. 그 자리에 건전한 중도-보수 가치관을 지닌 젊은 인재들을 영입해 당에 청신한 새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2년 뒤 총선에서 한국당 의원 전원을 바꾼다는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우파 야당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보수 야당은 붕괴했지만 보수우파가 궤멸한 것은 아니다. 제1야당의 존재이유는 정부와 집권당의 독주를 견제하는데 있다. 진보-보수, 좌파-우파 양쪽의 날개로 나는 정치가 건강하다. 보수 야당의 몰락은 한국 정치에 재앙이다. 때문에 이제는 보수 야당 재건이 과제이다. 그런데 일모도원(日暮途遠),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비상대책기구를 중심으로 완전히 당을 해체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각오로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이념과 정책을 시대에 맞게 고치고, 청년들이 매력을 느끼는 보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여 재창당 차원의 혁신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인 중도 보수 등 제(諸) 세력이 당에 노크할 것이며, 떠나간 국민의 지지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한국당의 정체성 재확립이 우선이며, 바른미래당 등과의 보수 대연합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한국당이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 내부에서 개혁과 쇄신의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 보수 재건은 처절한 반성과 자기희생이 출발점이다. 정종섭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당 초선의원들이 ‘당 중진들의 정계 은퇴 촉구’를 요구하며 정치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용기 있는 결단이다. ‘당을 바꾸자’는 이들의 주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들이 ‘자기 책임과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지 살피면 된다.
 
한국당은 시한부로 당권은 ‘대권-당권 분리’로 가야 한다. 그것이 당의 화합과 결속, 외연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차기 당 대표는 보수의 품격, 선당후사의 자세, 신상필벌의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 대통령탄핵과 연관된 사람은 안 된다. 탈당을 결행했다가 복당한 사람은 더욱 안 된다. 차기 당 대표의 시대적 소명은 천하의 인재들을 영입해서 공정한 대선후보 경쟁이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는 데 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남북 교류 확대, 한미동맹 균열,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해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공부하는 보수’를 만들어야 한다.
 
독일은 브란트 이후 통일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국가부흥과 국민행복을 추구했다. 그 결과로 통일이라는 대어를 낚았고, 오늘날 유럽의 주인공이 되었다. 독일 부흥과 통독의 바탕에는 유아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실시한 철저한 ‘국민정치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이념적 가치와 현대 한국사발전 정신과 전략을 간과하고 막연히 북한의 군사적 위협만으로 표를 얻고 정권을 이끌어 왔다. 앞으로는 한국식 민주시민정치교육을 강화하여 보수우파 세력의 이념적 토대부터 굳건히 구축해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보수에 대한 갈망이 국민들 사이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바닥 친 우파 야당이 재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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