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SK그룹 손길승 회장이 지난 9일 구속 수감되면서 재계가 충격속에 설 연휴를 맞이하고 있다. 재계는 이번 손 회장의 구속수감을 김승연 한화 그룹회장과 주요 그룹 총수 및 구조본부장급 최고위 임원들에 대한 사법처리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지난 11일 대검 중수부는 대선불법자금 사건과 연루된 일부 기업 총수 및 주요 임원진을 연휴가 끝나는 대로 공개 소환할 것임을 밝혔다. 이에 따라 각 기업들이 검찰 소환을 막기 위해 정보망을 총 동원, 전방위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손길승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감이 다른 기업의 수사 강도를 판단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대검 중수부는 이학수 삼성 구조본부장과 김동진 현대차 총괄부회장을 조만간 소환해 조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당초 검찰은 설 연휴 전에 소환할 계획이었으나, 불법자금의 출처 확인이 끝나지 않은 관계로 연휴 이후로 계획을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기업 총수 및 고위급 임원진에 대한 소환 조사가 늦춰진 배경은 한나라당이 모금한 불법대선자금의 사용처와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가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선자금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당초 계획은 이 달안에 10대 기업에 대한 조사를 하고 본격적으로 정치인들을 소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들이 당시 노 캠프측에 전달한 불법자금에 대해 적극 부인하거나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검찰의 수사 방향은 자금 출처 조사를 위해 주요기업 총수들을 소환해 압박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주요기업 총수들과 고위급 임원들에 대한 검찰의 소환도 임박해옴에 따라 각 기업들도 자신들의 정보망을 총동원해 검찰 수사에 대비하고 있다.

특히 총수의 소환이 거론되고 있는 A 그룹의 경우 공휴일이었던 지난 1월 1일에도 핵심 임원들이 회사로 출근, 검찰의 수사에 대비해 대응책을 논의했다고 한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또 소환 대상에 올라있는 몇몇 기업들이 정부와 법무부, 검찰 등 관계 기관에 자신들의 인맥을 총동원해 다각도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한 인사에 따르면 “최근 전경련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점을 감안해 재계에 대한 수사를 조기에 종결해 달라’고 공식적으로 요구하는 한편, 일부 그룹들은 학연, 지연 등 인맥을 총동원해 자신들의 그룹 총수를 소환대상에서 빠지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 내에서도 ‘수사상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 아니라면 경제상황을 감안해 소환조사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며 설 연휴가 끝나고 검찰이 본격적으로 재계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시작할 경우 각 그룹들의 로비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현재까지 주요 그룹 총수들 가운데 검찰의 소환 대상 1호로 꼽히는 사람은 C그룹 총수. 이 그룹의 경우 최근 계열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찰 내부에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C그룹 내부에서는 검찰 수사 일정에 촌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D그룹의 총수 역시 소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지적이다. D그룹의 경우 최근 검찰의 계속적인 수사로 비자금에 대한 윤곽이 드러나, 연휴가 끝나는 대로 직접 총수를 소환해 조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B그룹은 정치권 내에 비교적 탄탄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관계로 타 그룹보다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불법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재계에 대해 본격적 수사를 진행한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각 그룹들이 사전에 검찰 수사망을 파악키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그러나 한 정부 관계자는 “김진흥 특검팀이 본격적으로 불법대선자금 수사를 벌이고 있는 마당에 정부로서도 검찰과 특검팀의 수사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한편 참여연대를 중심으로 불법정치자금에 대한 검찰수사와 함께 세무조사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비자금 자체가 분식회계 등을 통해 조성된 돈이기 때문에 탈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에는 검찰의 소환수사와 함께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각 그룹 총수들에게는 어느 때보다 우울한 설 명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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