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월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 합병을 계기로 삼성금융계열사들의 시장 재편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여 재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금융계열사간 지분 정리 작업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역학 구도에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는 것.삼성생명은 이미 합병카드사(삼성카드 및 캐피탈)의 1조원 규모 제3자 배정 유상 증자에 참여, 명실상부한 금융지주사로 거듭날 전망이다. 삼성생명이 탄탄한 자금력과 함께 5개 핵심 금융계열사들의 최대 지분을 확보, 금융계열사의 맏형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가 에버랜드와의 순환식 지분 출자 구조를 구축, 그룹의 실질적인 경영권 행사 등 지배력이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등에서는 삼성생명의 대규모 유상증자 참여와 관련, 보험업법에 명백히 위배되는 행위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서 삼성그룹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합병카드사의 유상증자 방안은 삼성생명을 축으로 한 금융계열사간 지분 정리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삼성생명이 계열사 유동성 위기 진화를 위한 ‘소방수’역할을 맡게 됨에 따라 핵심 금융계열사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합병카드사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의 경우, 현재 시점에서 정확한 실권주 가격 산정이 쉽지 않아 삼성생명의 지분 인수 규모를 성급히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다만 삼성생명이 합병카드의 1조원 규모 유상증자에 참여하면 현재 삼성카드 및 캐피탈의 최대주주인 삼성전자(각각 56.1%, 75.04%)에 버금가는 지분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게 금융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따라서 삼성생명은 현재 선물(80%), 투자신탁운용(5.5%), 화재(9.9%), 증권(11.4%)에 이어 합병카드사의 최대 지분을 확보, 명실상부한 금융지주회사로 탈바꿈하게 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그 동안 삼성카드 및 캐피탈의 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그룹사 지분을 보유, 합병카드사의 지분 확보 차원의 자금지원 시나리오는 꾸준히 제기됐다”며 “탄탄한 자금력 등으로 실질적인 금융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는 점에서 감독 당국 및 업계의 반감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작용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유상 증자 참여는 현행 보험업법상 보험사의 계열사 출자 한도를 3%로 제한하는 조항이 최대 변수다. 삼성생명은 현재 해외 및 국내 계열사에 5천억원 가량을 출자했으며 삼성전자 등의 계열사 주식 및 채권을 1조원 가량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생명이 당초 계획대로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계열사 보유 주식 및 채권을 매각해야 하지만 장기 자산을 운영하는 보험사의 자산 운용 특성상 그리 녹록하지 만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삼성그룹이 재정경제부 및 금융감독위원회 등 감독당국에 보험회사 출자 한도를 5%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건의한 것도 그룹의 계열금융사 정상화 의지와 함께 계열사 자금지원에 대한 어려움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삼성카드가 향후 카드 시장이 정상 궤도에 올라설 경우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타계열사 보유 주식 및 채권을 매각해서라도 삼성카드 자금지원 규모를 최대한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그룹은 또한 이번 삼성생명의 1조원 규모 유상증자 참여로 그룹 계열사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와 삼성생명, 삼성카드 등 금융 계열사간 순환식 지배구조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지분 19.24%를 보유한 최대 주주. 현재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이 각각 에버랜드 지분 14%, 11.6%를 보유한 1, 2대 주주라는 점에서 삼성생명이 합병카드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 완벽한 순환 출자식 지배구조 형식이 되는 셈이다.

기존 이재용, 에버랜드,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의 수직적 지배구조 형태에서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연결고리가 형성됨에 따라 ‘이재용, 에버랜드, 생명, 전자, 카드에서 다시 에버랜드,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지분 구조로 순환된다는 것.순환 출자식 지분구조는 삼성생명을 금융사간 지분 역학 구도, 즉 외형적으론 금융지주회사로 부각시켜 에버랜드의 그룹 경영권 행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상쇄시키고 그룹간 협력 체제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문제는 에버랜드가 최대 주주로 머물러 있는 한 삼성생명이 향후 명실상부한 금융지주회사로 탈바꿈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생명이 금융회사로는 드물게 비상장사로 지배구조가 개인 지분이 아닌 에버랜드, 신세계, 제일제당 등 삼성그룹의 비금융 회사에 편중돼 있다는 점에서 독립된 의사 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특정 계열사 지분을 통해 비합리적으로 금융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구시대 산물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도 부담이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에 대한 검찰 수사의 강도가 높아지고 그룹 계열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쪽으로 흐르고 있다”며 “순환 출자 지분구조는 이러한 업계 우려에 대한 합법적인 대응책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그룹의 계열사 지원 시나리오는 여전히 시민단체의 반발을 어떻게 희석시키느냐가 또 다른 변수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등에서는 보험 계약자 돈으로 계열사를 부당 지원할 경우 배임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소송도 불사한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삼성생명의 삼성카드 유상 증자 참여는 보험사 돈으로 계열사를 지원함으로써 보험업법상의 보험계약자에 대한 충실 의무 조항에 명백히 저촉되는 행위”라며 “현재 삼성카드와 캐피탈이 삼성생명의 최대주주인 에버랜드의 주요 주주라는 점에서 완벽한 순환지분 출자 구조를 통한 부실 계열사 특혜 지원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다만 계열사 합병 및 향후 금융계열사간 지분 교환을 통한 경쟁력 확보 차원 등은 해당 기업들의 고유권한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일각에서는 금감원, 재경부 등 감독 당국이 여론을 의식, 엄격한 관련법 적용을 기반으로 한 합법성 여부와 함께 벌써부터 도덕적 해이 문제를 우려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최근 재경부 및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유래없는 재벌의 경영 지배력 확대에 대한 감시 강화 원칙이 맞물려 자금지원 규모가 휠씬 낮아지거나 계획 자체를 연기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의 계열사 출자 및 자회사 편입 여부 등은 보험업법에 출자 제한 조항이 마련돼 있는 데다 금융회사 인수 요건에 따라 금감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아직까지는 관련법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도덕적 해이 부분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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