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사위로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른 정태영 현대카드 부사장이 급부상 중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인 정 부사장은 현대카드 대표이사로 취임한지 1년여만에 위기에 빠진 현대카드를 수습, 그룹 내에서 위상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방치했더라면 현대차그룹도 LG그룹처럼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삼성 LG 등 재벌기업들이 계열 카드사의 자금난으로 전전긍긍했지만, 현대차그룹이 큰 어려움 없이 카드사 문제를 풀 수 있었던 것도 정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 재벌가 처가집 눈치 보기 바쁜 여느 재벌가 사위와 달리 정 부사장은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다. 재벌가 사위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입지를 굳힌 정태영 부사장을 분석했다. 재벌가의 사위 정태영 부사장은 60년생으로 서울대 불문학과를 나와 미국 MIT 경영학석사를 받은 엘리트 출신이다.

지난 87년 현대종합상사 기획실 이사로 현대에 입성해 현대차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미국지사 이사를 거쳐 상무와 전무 등을 역임하면서 줄곧 장인인 정몽구 회장을 보좌해왔다. 계열분리가 된 이후 2001년 기아차 자재본부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현대카드 부사장을 맡으면서 전문경영인으로 나섰다. 지난 1월 13일 현대차그룹은 정태영 전 기아차 전무를 없던 자리까지 만들어 현대카드 경영지원실 부사장에 임명했다. 당시 정 부사장의 현대카드 입성은 재계도 놀란 뉴스거리였다. 당시 현대카드는 이상기 사장과 이계안 회장 등 전문경영인이 두 명이나 버티고 있어 정 부사장의 현대카드 입성은 그야말로 ‘의외’의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몽구 회장이 사위인 정 부사장을 현대카드에 입성시킨 이유는 무엇일까.현대차그룹의 금융사업 강화라는 데 무게를 뒀던 게 당시의 재계의 분석이었다.

정작 정몽구 회장은 정 부사장의 취임을 통해 현대카드 경영진의 균열을 예방하고자 하는 의도도 숨겨져 있었다. 정태영 부사장의 취임 첫 일성은 “예전처럼 선배들을 잘 보필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여기서 선배들이란 이상기 사장과 이계안 회장을 말한다. 당시 이상기 사장과 이계안 회장은 불편한 관계였다. 지난해 실적이 크게 나빠진 데 따른 책임론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잦은 갈등 소문이 그룹내부로 퍼진 것은 당연할 터. 중재에 나선 사람이 정 부사장. 결국 현대차그룹은 이상기 사장을 지난 3월 계열사인 오토에버닷컴으로 발령냈다. 이 사장은 8월 현대 하이스코 부회장으로 승진됐다. 현대카드의 본격적인 위기는 지난 3월말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것. 유동성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참여연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현대카드 증자를 단행했다.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문제는 가라앉지 않았다.

이때 해결사로 나선 것이 정 부사장이다. 정 부사장은 그룹의 지원을 최대한 끌어냈다. 정 부사장이 그룹 회장의 사위라는 점이 시장에도 신뢰를 줬다. 현대차그룹이 현대카드를 살릴 의지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 정 부사장은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이하 캠코)를 유상증자에 참여하게 했다. 지난 6월 현대카드 유상증자 시 캠코는 당초 배당된 700여억원 중 100억원만 참여했다. 캠코의 실권으로 현대카드 유동성 확보 계획에 차질을 주긴 했지만, 캠코가 일부라도 증자에 참여함에 따라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정부 출연기관인 캠코가 재벌 계열사를 돕는다는 논란의 소지에도 불구하고 캠코를 유상증자에 참여하게 만든 과정에 정태영 부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과감한 경영 스타일도 눈에 띈다. 두 자릿수에 달하는 연체율로 카드업계가 허덕일 때, 현대카드는 과감하게 현금서비스를 축소해버렸다.

돌려막기로 해오던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회사는 위기를 넘겼다. 지금은 그 때 과감한 현금서비스 축소가 아니었다면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규모를 줄이지 못한 일부 카드사들이 연체율 상승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우리는 연초에 현금서비스 규모를 축소시켜놔서 한시름 놓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카드의 매출은 지난해 12월말(잔액기준) 판매신용 1조 4,435억원, 현금서비스 7,623억원, 대환대출 871억원 등이었다가 올 3월말 판매신용 1조4,062억원, 현금서비스 2,402억원 대환대출 2,307억원 등으로 대폭 줄었다.

특히 현금서비스 규모는 무려 5,000억원이나 삭감됐다. 이는 고객이 일부 떨어져 나가더라도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때 이탈한 고객들은 현대카드가 연초 야심차게 내놓은 M-카드로 다시 회복했다. 정 부사장이 참신한 아이디어로 가끔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평가도 종종 받는다. 현대카드가 내놓은 M-카드는 정 부사장이 광고시안까지 챙겨가며 밀어붙인 케이스라는 것. 현대카드의 TV광고도 정부사장이 일일이 챙겼다고 한다. 그의 세심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근까지 카드업계의 유동성 위기 속에서도 정 부사장은 다이너스카드를 부활시키는 등 공격경영을 펼치면서 경쟁사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이런 일로 남들보다 한발 앞선 경영을 펼친다는 평가를 정 부사장은 받고 있다. 역시 오너 일가답게 튄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 부사장의 경영스타일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문경영인으로 검증받았다고 하기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정 부사장의 공격경영이 곧바로 회사의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카드의 신규연체비율이 타사 평균을 크게 상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이 민주당 조재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현대카드의 11월말 신규연체비율은 2.69%로 타사 평균치인 1.05%보다 2.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삼성카드 1.23%, 우리카드 0.70% 롯데카드 0.74% 신한카드 0.70% 외환카드 0.39% 등에 비해 큰 격차를 보인 것이다. 카드업계가 연체율 상승으로 몸을 낮출 때 현대카드가 사업 확장에 나선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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