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포스코 권오준 회장의 후임 작업이 끝을 향해 가면서 주목받는 사람이 또 한 사람 있다. 황창규 KT회장이다. 포스코와는 무관한 회사의 경영진이지만 정권 교체 때마다 총수 변경이라는 흑역사를 가진 건 공통된 사안이다.

최근에도 정권 교체 이후에 물러나지 않아 ‘괘씸죄’를 적용, 압박 수사를 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회자된다. 이런 가운데 황 회장이 성과를 내고 뚝심을 이어가면서 ‘황의 철칙’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황 회장이 최근 받고 있는 혐의와 관련해 무협의를 입증해 정권의 전리품으로 취급받는 KT수장 자리를 온전히 지켜주길 바라는 것이다.

검찰, ‘정치후원금’ KT 황창규 영장 기각… “보강수사 하라”
사내 분위기 ‘차분’…적폐경영 고리 끊는 원년되길 기대하기도

 
<뉴시스>
 경찰은 지난 18일 황창규 회장 등 KT 전·현직 임원 4명에 대해 정치자금법 등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은 일명 ‘상품권 깡’을 통해 조성한 4억4190만 원을 19·20대 국회의원 99명의 정치후원회 계좌로 입금한 혐의를 받는다.

KT의 대관부서인 CR부문은 법인자금으로 주유상품권 등을 구입한 후 업자에게 바로 현금화(깡)하는 수법으로 2014년 5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11억5000여만 원을 비자금으로 조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법인이나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고,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된 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그러나 지난 20일 검찰이 황 회장에 대한 경찰의 사전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이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거나 적기 때문에 불구속 수사를 바란다’는 취지의 수사 지휘 문서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는 이날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취재진에 “현재까지 금품 수수자 측인 정치인이나 그 보좌진 등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돈을 준 사람에 대한 수사만 하고 받은 사람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황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수사받게 된다.

 CEO 흑역사 ‘더는 안 돼’ 분위기

이 사안을 둘러싼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앞선 CEO들이 정권교체 직후 예외없이 검찰 수사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의 연장선으로 해석한다.

2005년 취임한 남중수 전 사장은 2008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납품업체 선정 등과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자진사퇴했다. 2009년 취임한 이석채 전 회장도 연임했지만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지난 2013년부터 검찰의 수사 선상에 놓였고, 본격적인 수사 압박이 들어오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때문에 지난 정부 시절에 취임한 황 회장에 대해 물러나야 한다는 사인과 연관이 있다는 시각이 유력하다. 지난해 현 정부가 출범한 후 아직도 회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정권 차원의 괘씸죄가 작용하고 있다는 루머도 적지 않다.  KT회장의 수난사를 다시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공교롭게 포스코도 전임 권오준 회장이 온갖 압박과 못이겨 몇 달 전 그만뒀다는 게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번엔 황 회장을 타깃으로 하는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또 한 번 위기 넘길까

일단 KT는 ‘중도 퇴진’가능성을 일축하며 ‘총력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한 황 회장은 5G전도사다.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 최초로 5G를 시연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일본 아베정권도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 5G서비스를 하겠다고 야심찬 청사진을 갖고 있을 정도다.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  세계각국이 4차산업혁명의 인프라인 5G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황 회장에게 영장이 신청된 지난 18일 KT는 5G 주파수 경매에 결과가 나왔다. KT는 SK텔레콤과 같이 5G 주파수 3.5㎓대역 100㎒폭을 차지하면서 최상의 결과를 냈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황 회장이 구속될 경우 5G 주파수 배정에 따른 다음 수순의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5G는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스마트공장 등 신산업의 기반이 될 국가적 차원에서 중대한 사업이다.

KT 관계자는 “CEO의 구속 등 유고 상태가 된다면 새 CEO를 선출해야 된다”며 “그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고 또한 큰 투자의 결정을 바로 내리기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황창규 회장의 임기는 오는 2020년 3월까지다.

그는 그간 임기를 끝까지 채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다. 최대 위기를 맞은 지금은 어떨까. 일단 KT 내부는 차분하다. KT 관계자는 “황창규 회장은 해당 건에 대해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며 “그간 경찰 수사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 왔다. 경찰의 영장 신청과 관련해 사실관계 및 법리적 측면에 대해서도 성실히 소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황 회장도 잘못이 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 철처한 수사를 통해 적폐경영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런 기대 때문에 이번 경찰의 압박 사태를 계기로 황의 철칙이 탄생하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외압과 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성과로만 평가받는 관행이 황 회장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KT의 바람대로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황 회장의 경영능력을 믿고 보자는 내부 분위기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KT 관계자는 “5G 주파수 경매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만큼 경영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황 회장의 근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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