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친다’ 친박 비박 재현… 정신 못 차린 한국당


6.13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이 막장 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선거 패배에 대한 참회하고 반성하기보다는 망당(亡黨)의 한 원인이자 고질병인 친박 비박 계파 싸움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서 향후 꾸려질 당권과 대권을 거머쥐려는 계파 간 속셈이 엿보인다. 문제는 계파싸움이 본격화하기 전 비박계 대표인 김무성 의원은 차기 총선 불출마를,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은 한국당 탈당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김 의원은 “오늘 이 사태에 대해서 누구를 탓하기보다 각자가 자기 성찰부터 하는 반성의 시간이 돼야 한다”고 책임과 희생을 강조했다. 서 의원은 한국당을 탈당하면서 “친이 친박의 분쟁이 끝없이 반복되며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친이 친박 분쟁이 두 분의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지 않았나? 역사에 기록될 ‘비극적 도돌이표’”라며 탈당한 배경을 밝혔다.
 
사실상 친박 비박 간 갈등이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지방선거 참패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외형상 비박과 친박을 상징하는 두 인사가 ‘2선 후퇴’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한국당의 계파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비박 인사로 바른미래당 복당파 출신인 박성중 의원은 휴대폰에 ‘친박 핵심 모인다’, ‘서청원, 이장우, 김진태, 정종섭’, ‘세력화가 필요하다’, ‘적으로 본다/목을 친다’ 등 내용의 메모가 알려지면서 ‘친박 살생부’라는 논란을 일으켰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의 완패를 만든 5대 공신록’이라는 ‘카더라 통신’이 여의도에 급속하게 퍼졌다. 지라시 내용을 보면
 
『1등 공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그리고 청와대 '십상시(十常侍)'
2등 공신- ‘친박 8적'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이장우·김진태(한국당), 이정현(무소속), 조원진(대한애국당) 의원
3등 공신- 홍준표 대표와 그의 비서실장 강효상 의원, ‘이부망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정태옥 전 대변인
4등 공신- 김무성, 김성태, 장제원 의원 등 ‘바른정당 복당파'
5등 공신- ‘할 말도 못하는 거세된 정치인'을 이유로 ‘한국당 현역 의원 전원'』 이라고 적혀 있다.
 
사실상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 의원들이 선거 참패의 원인이라고 적시했다는 점에서 비박계 쪽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퍼뜨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런 의심을 방지하려고 차기 당권 도전 관련 <부록>이라고 말미에 적으면서 ‘한국당 혁신의 걸림돌로서 차기 당권에 도전해선 절대로 안 될 인물들’로 홍준표 대표와 친박 8적, 김무성·김성태(원내대표)·정우택·홍문표·나경원·장제원 의원을 적시했다.
 
박 의원은 자신의 메모와 함께 카더라식 SNS 소문이 퍼지자 “어느 한 분이 지난 지방선거에서부터 친박 정우택, 이완구부터 움직인다. 이런 분들이 세력화하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며 “친박들이 나중에 우리를 적으로 본다, 우리를 치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순서대로 적어내려가다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를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사실상 당내 고질적인 친박 비박 간 주도권 싸움이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자인한 셈이다.
 
당장 친박계 쪽에서도 발끈했다. ‘친박 낙인찍기’를 통한 비박계의 당권 장악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고 그 중심에 김무성 의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사실상 홍준표-김성태 등 비박계 당 지도부가 선거를 좌지우지했으면서도 선거 참패에 대한 원인을 친박계에 덮어씌워 당권을 잡으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친박 김진태 의원은 “잘못하면 당이 해체될 판인데 계파 싸움으로 당권을 잡아서 뭐 하겠다고 저럴까”라며 “겉으로는 반성하니 어쩌니 하면서도 내심은 이것이었나”라며 친박 살생부 논란에 발끈했다.
 
친박계 의원이 몰려 있는 대구·경북 의원들 역시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대구가 지역구인 한 의원은 “당을 추슬러야 하는 마당에 한쪽에선 ‘살생부’를 만들어서 목을 치겠다 하니 의총을 빨리 열어 그 자리에 왜 모였는지, 진의가 뭔지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보수 정당을 대표하는 한국당이 리모델링 수준을 넘어 재건축해야 하는 시점에 친박 비박 계파 간 다툼으로 점점 사지로 몰리고 있는 형국이다. 그 속에는 2020년 치러질 21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한몫하고 있다.
 
현재 한국당에서 유력한 당권 주자로는 친박 색채가 강한 이완구 전 총리와 정우택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비박계 인사로는 김성태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나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국당이 폭망 수준에서 궤멸 수준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지방선거 표심은 집권 여당이 잘해서 표를 준 게 아니라 보수 정당을 대표하는 한국당이 너무 지리멸렬해서 여당 압승 결과를 내놓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당이 얼굴에 분칠하듯 비박과 친박을 대표하는 김무성, 서청원 두 인사를 후퇴시기고 ‘중앙당 해체’라는 립서비스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태도는 너무나도 안이한 사고다.
 
더욱이 친박 비박 간 다툼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당 내에서도 망당병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공천에 목 매 자기 편이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는 현 정치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시각이다. 한국당 이름으로 조기 전당대회가 치러질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서로 수장이 돼 대망론까지 나오는 것은 기기막힐 노릇이다.
 
때마침 김무성 의원의 보좌관이 6월22일 <보수의 민낯, 도전 2022>라는 책을 내놓았다. 주 내용은 2016년 4.13 총선에서 여당이던 새누리당 내부에서 공천을 둘러싼 친박 비박간 최악의 공천 비화를 다뤘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미 그때 친이·친박이 건널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 그리고 그 공천 결과가 부메랑이 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보수 폭망의 단초가 됐다.
 
그런데 아직도 친이 친박 프레임을 활용해 권력을 잡는 도구로 사용하는 한국당의 미래는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한국당이 망하는 것은 정치 이치지만 자신들을 지지해 온 보수 세력까지 함께 추락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 10년 권력을 누려온 정당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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