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美당국 김현희 직접 조사 후 北공작원 결론
대선·88올림픽 노린 北 테러 추정… 보복은 검토 안해

 
2012년 미국 국무부가 공개한 지난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관련 비밀 외교문서에는 항공기 실종에서 폭파범 김현희에 대한 특별사면(特別赦免)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미(美) 정부 당국이 김현희를 자체적으로 조사한 뒤 북한(北韓) 공작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으며, 당시 한국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대북(對北) 군사 보복을 검토하지 않았다는 미국 측 평가도 공개됐다. 아울러 당시 유엔에 정식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안보리에 이 문제를 회부하기 위해 벌였던 치열한 외교전(外交戰)도 소개됐다.
 
당시 공개된 외교문서는 1987년 11월 30일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가 대한항공 국제관계부서 담당자와 접촉한 내용을 담은 ‘긴급 전문’으로 시작한다. ‘B.H. WON’으로 표기된 이 담당자는 서울시간 오전 11시 30분 현재 항공기가 실종 상태라고 밝힌 뒤 탑승자 가운데 미국 시민은 없는 것으로 확인했으며, 115명의 승객 가운데 외국인은 레바논과 인도 국적 2명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로부터 사흘 뒤인 12월 3일 항공기 내 폭발물 설치 가능성과 함께 문제의 승객 2명이 이라크에서 탑승했다는 소식이 워싱턴DC 국무부로 전달된다. 한국과 일본 언론들이 북한 연루 가능성을 유력하게 보도하는 가운데 12월 4일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미국대사는 최광수 외무장관을 만나 진상조사에 미국 정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전문은 전했다.
 
미 대사관측은 한국 정부가 ‘사실 파악(팩트 파인딩)’에 주력하고 있다고 전하면서 침착한 대응을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KAL기 참사와 관련해 초기부터 북한 소행을 강하게 의심했으나 동기에 대해서는 의아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한호(宋漢虎) 당시 통일원 남북대화사무국장은 미 대사관 관계자와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연말로 예정된 한국 대선에서 야당의 승리를 원하고 있는데 이번 사태는 여당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송 국장은 아울러 이듬해 여름으로 예정된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려는 시도로 볼 수도 있지만 시간이 많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런 고강도 테러를 감행한 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여당이 대선을 앞두고 당시 사태를 계기로 국가안보를 강조하는 전략을 추진하면서 당시 야당 후보인 김영삼, 김대중 진영이 북한 위협을 평가절하한 데 대해 비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국 유권자들은 이런 정치전략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송 국장은 전망했다.
 
1988년 2월 미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전문에 따르면 미 관련 당국자들은 KAL기 폭파 사건 직후 김현희를 직접 조사했다. 이들은 미 정보당국이 확보하고 있던 북한 공작원 26명의 사진을 보여주며 접촉 인물을 확인토록 했다.
 
이에 김현희는 베오그라드와 부다페스트에서 접촉했던 인물 3명을 지목했다. 또 이와 별도로 중앙정보국(CIA) 산하 외국방송정보서비스(FBIS)를 통해 김현희의 기자회견 발언의 성문(聲紋)도 분석했다.
 
이에 앞서 마인자 초나 주중 잠비아 대사는 ‘김현희가 가짜’라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며 명확한 증거를 요구했으나 미측은 독자적으로 확보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이를 반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정부는 사건 초기부터 북한 연루 가능성을 의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보복은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KAL기 실종 직후인 1987년 12월 4일 외교전문은 “한국 군(軍) 당국자들은 보복을 선택사항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는 대선에서 여당 승리를 위해 필요한 정국 안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듬해 1월 릴리 전 대사와 면담한 전두환 전 대통령도 “김일성 부자는 정신병자”라고 비난한 뒤 “군사 보복이 마땅하겠지만 이 시점에서 보복은 배제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한국이 정권교체기인 데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군사작전 가능성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외교전문은 전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유엔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 국제외교 무대에서 KAL기 폭파사건을 이슈화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이에 따라 1988년 2월까지 전세계 59개국이 KAL기 폭파사건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했으며, 이들 가운데 30개국은 북한을 직접 지목하는 등 적지않은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고 외교전문은 밝혔다.
 
사건 이후 최광수 외무장관은 미 당국자들과 잇따라 만나 전폭적인 지지에 감사의 뜻을 거듭 전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옵서버 자격으로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는 계획도 밝히며 협조를 당부했다. 당초 한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토의 및 결의, 토의, 의장성명, 외무장관 공개성명 등 4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으며, 미국 측은 한국 정부의 의견을 십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중국과 소련이 유엔 안보리에서 반대 입장을 밝힐 것을 우려했으나 릴리 전 대사는 “이들 국가가 오히려 북한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안보리 토의를 반길 수도 있다”면서 “중국은 북한을 직접 지목하지 않으면 안보리 결의도 막지 않겠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한국 측에 설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전문은 김현희의 재판 과정과 이를 둘러싼 희생자 가족들의 반발 등도 비교적 자세하게 전했다. 1988년 4월 전달된 마지막 전문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소식을 전하면서 “이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라면서 “김현희와 같이 북한공작원이 된 것을 후회하는 사람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대한 정책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김현희를 KAL기 희생자들과 같이 ‘북한정권의 희생자’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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