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노조 등 ‘로비설·정부 특혜 의혹’ 제기대한항공 … “정당한 절차에 의한 것, 특혜 없다”대한항공(KAL)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추진과정에서 ‘로비설’, ‘정부 개입설’ 등 각종 특혜의혹이 제기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KAI 노조측은 “부실기업인 대한항공이 경영내실이 알찬 KAI의 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일련의 사태에 모종의 특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KAI 대주주측이 지분인수 요청을 해왔던 사항으로, ‘특혜설’은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KAI의 인수과정’을 둘러싼 잡음을 들여다봤다. 90년대 들어 정부의 항공산업육성정책에 자극 받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 현대, 대우 등이 항공산업에 잇따라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업체간 과당경쟁, IMF사태 등으로 결국 항공산업은 통합하게 된다.

이에 따라 지난 99년 10월 1일 삼성항공(삼성테크윈), 대우중공업(대우종합기계), 현대우주항공(현대자동차) 3사가 통합하여 만든 항공기 제작회사가 바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회사의 지분은 대우와 삼성, 현대가 각각 28.1%, 채권단 15% 등으로 이뤄졌다. 당시 대한항공측은 “부실회사와 같은 지분으로 항공사업 부문을 통합할 수 없다”며 KAI 참여를 거부했다. KAI는 설립 당시 막대한 부실을 안고 있었고, 낙하산 인사, 외자유치 실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하지만 지난해 160여억원의 경상이익을 내는 등 경영이 호전되고 있다. 그러던 중 대한항공이 최근 KAI의 경영권 인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최대주주중 한 곳인 대우종합기계와 지난 8월 지분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데 이어, 유상증자 등에 대해 최대주주인 삼성테크윈과 현대차의 동의를 얻었다. 대한항공은 지난 10월 중순 “대우종합기계의 지분을 인수하고 유상증자를 통해 KAI 지분의 과반수 이상을 취득해 KAI의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삼성·현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대한항공의 KAI 인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그러나 KAI 노조 등에서 ‘로비설’,’정부 개입설’ 등 각종 특혜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하며, 그 파문이 확대되고 있다.그리고 지난 10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강창희 한나라당 의원이 ‘대한항공의 KAI 인수 특혜’ 의혹을 제기했던 것. 강 의원은 “최근 경영실적이 개선되고 있는 KAI에 대해 대한항공이 지분확보를 통해 인수를 추진하는 것은 특혜”라고 주장했다. 강 의원은 특히 “8월 28일 한국기술센터에서 열린 산업자원부 주재 회의에서 채권단은 대한항공의 KAI 지분 인수에 대해 장·차관도 모르는 상태에서 국·과장이 로비를 받아 인수를 진행하고 있는 듯하다고 주장하는 등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안다”며 ‘산자부 로비설’까지 제기했다. KAI 노조측도 이에 가세했다. 노조측은 “산자부 등 정부가 주주와 채권단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으며,’주인을 찾아준다’는 논리로 대한항공의 지분 인수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1년 전부터 대우종합기계측에서 지분인수 요청을 해왔던 사항으로 특혜는 아니다”라며 “민간기업간 지분 양도양수에 정부의 특혜란 있을 수 없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우종합기계의 지분을 인수하기로 하고 대주주들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실사에도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KAI에 대해 뭐라 왈가왈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제한 뒤 “지분 인수는 민간 기업체간 거래행위로 봐야 한다. KAI가 공기업도 아닌데 정부가 나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이와 관련, 최근 한국중공업 민영화와 KAI 인수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산자부 관계자가 최근 업체로부터 금품로비를 받는 등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에 대해 “KAI 인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고, 검찰도 “산자부 관계자의 구속은 KAI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이러한 해명에도 불구, 대한항공의 KAI 경영권 인수를 둘러싸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우선 KAI 노조측은 “1999년 항공 빅딜 때는 대한항공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가 KAI의 경영이 호전된 상황에서 지분 참여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한항공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99년 1,100억원의 적자로 출발했던 KAI는 2002년 165억원, 2003년 150여억원의 이익이 예상되는 등 최근 흑자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이는 설립 첫 해 500여명의 구조 조정, 그리고 임금 동결과 성과급 반납 등을 통해 이뤄낸 성과라는 것이 노조측 설명이다. 또 2005년에는 증시 상장도 계획하고 있다. KAI는 또 종합 항공 완제기 제작업체로서 KT-1과 T-50 개발뿐만 아니라 이를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미국 보잉사 항공기 종합 설계능력인증도 부여받은 상태다. 노조측은 “이에 반해 대한항공은 올해 6월 현재 경상이익 2,660억원의 적자를 낼 정도로 부실기업”이라며 “대한항공 항공우주산업본부의 경우 매출은 KAI의 1/5 수준이며, 1인당 매출 역시 KAI의 1/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노조는 “대한항공 항공부문의 매출이 급감, 재무구조가 취약하며 자산의 부실화가 극심한 상황”이라며 “경영 악화에도 불구하고 KAI의 지배주주가 되려는 것은 경영권 확보 후 부실 상태인 항공우주 부분을 통합하여 부실을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측은 “부실로 따지면 KAI의 정도가 더 심하다”면서, “작년 이후 KAI가 흑자라고 하지만 이는 영업 이익보다는 자산 매각에 따른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까지 KAI의 누적적자가 1,600억원에 달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여기에 유동성 자금 확보 미흡 등 경영상 문제점도 안고 있다”고 말했다.한편, KAI 노조측은 대주주인 대우종합기계의 지분을 우리사주로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이에 대해 대우종합측은 삼성·현대와 채권단의 동의를 구해 올 것과 국방부와 정부의 승인을 받아 올 것, 대우종합기계의 채권단 보증 문제를 해결할 것 등 3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협상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은 이에 대해 “대우측과 이미 양해각서를 체결한 만큼, 사태 추이를 지켜볼 뿐”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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