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등 훑으며 외국인 투자자 지지호소한 윤창번 사장 전략 적중LG 향후 통신사업 전망 불투명 … “주총 무효소송 나설 것” 울분11억 달러 외자유치안 표결을 놓고 맞대결을 벌인 LG와 하나로통신 간의 격돌은 하나로통신의 압승으로 판가름 났다. 이로써 지난 4월 신윤식 전회장 퇴진으로부터 시작된 LG그룹과 하나로통신간 경영권 분쟁은 지난 21일 임시주총에서 하나로통신이 제안한 외자유치안이 통과됨에 따라 마무리된 셈이다. 당초 팽팽한 표대결 예상과는 달리 뉴브리지-AIG컨소시엄의 외자유치안에 대한 표대결에서 주주들은 하나로통신이 제시한 외자유치안에 절대적인 찬성을 밝힘에 따라 싱겁게 끝났다.

이날 주총은 전체 주식수 2억 7,398만주 가운데 2억 4,031만 1,801주(약 87.7%)의 주주가 참석해 외자유치안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에 대한 주주들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외자유치안이 가결됨에 따라 하나로통신은 뉴브리지-AIG 컨소시엄을 최대 주주로한 외국계 회사로 변신하게 됐다. 이날 주총의 최대 관건은 표대결. LG와 하나로통신은 소액 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내는 등 막판까지 숨을 고를 수 없을 만큼의 팽팽한 접전이 예상됐다. 우호지분을 포함해 양사간의 지분은 비슷한 규모였기 때문. 승패를 가른 것은 소액의 지분을 가진 주심(株心)이었다. 주심이 어디로 쏠릴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정도로 오리무중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주총 시작부터 긴장감이 감돌았다. 주총장 입구에서부터 하나로통신 노동조합 조합원 300여명은 주총장 1층 로비에서 연좌 농성을 통해 `‘LG 규탄시위’를 벌이는 등 신경전을 벌였다. 주총장 안에서의 신경전은 계속 이어졌다.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안을 지지하는 주주와 이에 반대하는 주주간 자리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진 것. 이날 주총장은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안을 찬성하는 주주(대부분 하나로통신 직원)들이 오전 8시부터 주총장 앞자리를 잡고 앉아 뒤늦게 도착한 LG그룹안을 지지하는 주주들 60여명은 뒤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상정안건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잡음은 발생했다. 양측 주주간 고성이 오가는 한편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LG그룹안을 지지하는 주주들이 용역회사 직원들에 밀려 여러 차례 주총장 밖으로 끌려나가기도 했다.

주총장 밖으로 끌려나간 LG텔레콤 직원은 “소액주주 위임장 확보작업을 통해 확보한 지분이 중복됐으나 이를 재차 확인해 우리 쪽 지지의사를 확인했는데 처리가 되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주총장에 앉아 있던 다른 주주들이 `’LG는 주주 자격도 없다’ `’진행을 방해하지 말라’는 등의 고성이 오갔다.주총장 밖으로 끌려나간 다른 LG측 주주도 있었다. LG텔레콤 직원은 “투표용지에 바코드가 찍혀 있는 데 주식수가 명기돼 있지 않았다”며 “내가 확보한 100만주가 `0주로 처리되는 것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하나로통신 측은 “미확인된 중복 위임장은 양측간 합의로 무효 처리하기로 했다”고 반박했다.

LG는 하나로통신 주총결과와 관련 “국가기간통신사업자인 하나로통신의 경영권을 헐값에 외국의 특정 투기성 펀드에 넘기고, 국내 통신업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후발 유선통신 사업자간의 구조조정을 외면해버린 이번 주총 결과에 대해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공식적인 의견을 발표했다.LG는 또 “위임장 진위 여부와 주총 진행의 공정성 및 적법성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며 “이미 법원에 제출한 증거보전신청 결과 등을 토대로 주총 무효확인소송 등 법률적 대응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해 법적 대응에 나설 뜻임을 시사했다.LG의 반발에도 증권가에선 이번 하나로통신의 외자유치안 통과를 환영하는 분위기이며, LG의 데이콤 경영, 두루넷 인수 등 향후 통신사업에 대한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증권사들의 분석 보고서들은 대체로 하나로통신 인수 실패가 LG에 대해 그룹 차원의 전략을 수정할 정도의 큰 사건으로 보고 있다.특히 삼성증권의 최영석 수석연구원은 지난 22일 보고서를 통해 “LG그룹은 두루넷 인수 등 데이콤 경쟁력 강화 전략을 펼치든지, 통신사업에서 철수하든지 양자 택일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증권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은 LG그룹의 계열사로 있는 시외전화사업체인 데이콤을 하나로통신 인수 실패에 따른 최대 피해자로 지목하는 분위기.최 연구원은 “LG그룹의 하나로통신 인수 실패로 데이콤이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면서 “데이콤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시장수익률’에서 ‘시장수익률 하회’로 낮췄다. 목표주가도 기존 1만원에서 8천원으로 하향조정했다.

현대증권도 이날 보고서를 통해 “LG그룹의 하나로 인수 실패로 긍정적인 기대가 무산됐고 기존의 전화사업이 성장 정체 상태에 있는 데다 초고속 인터넷의 경쟁도 심화되는 등 데이콤의 영업 환경이 지속적으로 나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증권은 데이콤이 안고 있는 2조에 가까운 부채도 주가에 부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세종증권은 LG그룹이 하나로통신 경영권 장악에 실패함에 따라 지난해 파워콤 인수로 자금 여력이 없는 데이콤이 생존을 위해 초고속시장에서 공격적인 진출을 모색해야만 하는 힘든 상황에 놓인 것으로 분석했다.한편 하나로통신의 이날 ‘일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은 다름아닌 윤창번 하나로통신 사장이다. 윤사장은 LG와의 대회전을 앞두고 약 10%를 웃도는 지분을 가진 외국인투자가들을 직접 해외로 날아가 설득한 끝에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장본인이다.

어찌보면 수백만주의 지분을 가진 주주를 만나 의견을 들어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윤사장은 해외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포진해있는 미국 뉴욕, LA 등 4개 도시를 훑고 다니며 지지를 호소했으며,그 결과 10.6%에 달하는 외국인 지분 가운데 약 8~9%를 우호 지분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2개월 전 윤사장이 취임할 때 우려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기업 경영을 해본 적이 없어 위기에 몰린 하나로통신의 방향타를 제대로 조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윤사장은 탁월한 성실성과 치밀한 전략으로 지난 8월 단기 유동성 위기에 몰린 하나로통신을 SK텔레콤의 도움을 받아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는가 하면, 이번 표 대결에서도 외국계 투자자들의 신임을 얻어내 위기에 빠진 하나로통신을 구해내는 구원투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윤사장은 외자유치안이 통과되자 기자 회견에서 “지난 1년 6개월 동안 하나로통신은 외자유치에 매달렸다. 많은 주주, 특히 소액주주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감사한다”면서 “주주들의 성원에 보답하고자 더욱 열과 성을 다해 작게는 회사가치를 높이고 크게는 통신사업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겠다”며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거대재벌 LG의 도전을 독자적인 힘으로 물리쳐낸 윤사장의 향후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그는 회사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 국내 시장에서도 입지가 더욱 넓어진데다 향후 두루넷 인수를 둘러싸고 또 한차례 LG와 맞불을 공산이 커진 상황이라 LG와의 두차례에 걸친 맞대결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업계는 물론 재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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