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포비아 공포’ 정부의 뒷북 행정 탓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제주도 예멘 난민신청자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비화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정부는 심사인력 부족 등의 문제로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심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신규 인력 투입과 신속한 처리를 약속했다. 정부의 뒤늦은 대처 때문에 애먼 국민들 사이 갈등이 일었다. 확인되지 않은 각종 소문과 불안감, 이른바 ‘난민포비아’가 SNS와 언론을 통해 전국을 휩쓸었기 때문이다. 

압둘라 “가족이 전쟁으로 고통, 통화 못한 지 좀 됐다”
후세인 “예멘에서는 그냥 죽는다. 한국 이외 갈 곳 없다”


현재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인은 500명이 넘는다. 국제 분쟁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내전을 피해 자의 반 타의 반 자국을 등진 예멘인이 제주도를 새 삶의 터전으로 정해 몰린 것이다. 

지난 28일 법무부 등에 따르면 올해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 549명이다. 이 밖에 중국인 353명, 인도인 99명, 파키스탄인 14명, 기타 48명 등 총 1003명이 난민 신청을 접수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인이 난민 신청자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내전을 겪는 예멘인은 지난해 42명에 비해 11배 이상 크게 늘었다.

일요서울은 제주도에 입국해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3일 현지를 찾았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은 지난달 14일과 18일 두 차례 예멘 난민신청자들을 대상으로 취업박람회를 열었다. 난민신청 심사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한시적으로 취업 길을 열어준 것이다. 하지만 예멘 난민신청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취업 박람회에는 도내 어업, 양식업, 식당업 등의 직종 사업자들이 참여했지만 배를 타본 적도 없는 예멘인들은 배를 타고 나갔다 일손을 돕기는커녕 하루종일 구토에 시달리다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나마 양식업과 식당업은 편안한 직종에 속했지만 대부분 이슬람교도인 이들은 일을 하다가도 기도시간이 되면 기도를 하기 위해 일을 멈춰야 하는 등 사업주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은 게 사실이다.

현재 난민 신청을 한 예멘인들은 제주도 내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더 이상 공식적인 채용박람회가 없는 만큼 각자 알아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멘 난민 신청자들
이미 5월경부터 입국


난민 신청한 예멘인들을 만나기 위해 지난달 23일 제주도를 방문한 기자는 제주 시내에서 세 명의 예멘인을 만났다. 

그들의 이름은 압둘라(33세), 오마르(33세), 후세인(25세)이다. 이들이 제주도에 들어온 시기는 모두 다르다. 압둘라와 오마르는 약 한 달 정도 됐고 후세인은 한 달 반 정도 됐다. 후세인은 영어가 유창해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지만 압둘라와 오마르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의사소통을 하기가 힘든 상태였다. 기자는 영어와 구글번역기를 이용해 이들과 대화를 나눴다. 

예멘 난민신청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시기는 6월이지만 이미 5월 이전부터 예민인들은 제주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세 명은 모두 말레이시아를 거쳐 제주도로 들어왔다. 말레이시아에서도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멘에서 말레이시아행을 선택했던 난민신청자 중 난민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거나 난민신청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 제주도로 온 것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제주도까지 직항로가 열려 있다. 게다가 제주도는 비자가 필요없는 무사증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이들이 손쉽게 올 수 있었다.

나이가 제일 어린 후세인은 일자리를 구한 상태다. 현재 묵고 있는 호텔의 도움으로 일을 시작했다. 기자와 만난 호텔 측 관계자 A씨는 “지금 남아있는 예민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다”라며 “그나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쉽다”고 전했다.

한국 이외에는 
갈 곳 없다는 그들


이날 기자와 만난 후세인은 때마침 야근을 하고 쉬는 날이었다. 기자가 한국에 온 이유를 묻자 후세인은 “안전을 위해 한국에 왔다. 예멘에는 음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일을 하러 외국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예멘에서는 그냥 죽는다. 한국 이외에는 갈 곳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말레이시아가 받아 주고 어떤 사람은 받아주지 않았다”며 자신의 상황을 설명했다.  

후세인은 기자와 이야기하는 동안 예멘이 전쟁 중이라는 설명을 여러 차례 했다. 압둘라와 오마르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예멘 현지 전쟁 상황을 찍은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압둘라에게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가족이 전쟁으로 고통 받고 있다. 전화통화를 못한지 좀 됐다”며 예멘에 남아 있는 가족을 걱정했다. 이어 “어린아이들이 많이 희생됐다. 전쟁으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는 이들에게 한국 정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후세인은 “안전을 보장해 주고 일자리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압둘라와 오마르도 마찬가지로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로 오기 전 후세인은 대학에서 공부하며 일을 했다고 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대학에서 공부를 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압둘라와 오마르는 자동차 정비 계통에서 일했다고 말했다. 현대차, 기아차 등을 고치고 정비하는 일을 했단다.

제주도에서 이들의 삶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후세인은 일자리를 구해서 다른 예멘 난민신청자 보다는 형편이 낫지만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일할 곳이 없는 압둘라와 오마르는 기자와 만난 날에도 제주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을 이들도 잘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이들에게는 당면한 생존 문제를 해결하려면 일자리를 찾는 일이 더 시급하다.

이들은 한글 공부도 하고 있다. 호텔 인근의 한 교회에서 이들에게 한글을 무료로 가르쳐 주고 있다. 

아시아 최초 난민법 국가
그동안 뭘 했나?


예멘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정부도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족했던 난민 심사 인력과 통역 인력을 늘리기로 한 것이다. 소극적이었던 제주도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인권위도 이들의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경찰은 국민들의 우려를 인식해 제주도 내 치안 활동 등을 더 강화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1994년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난민협약국이다. 난민 신청이 접수되면 심사가 진행되는 6개월~1년 동안 체류 자격이 주어진다. 심사에서 탈락해도 소송을 통해 최대 3년까지 머무를 수 있다.    

문제는 정부가 ‘아시아 최초 난민법 제정국가’라는 타이틀을 취한 채 그동안 후속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도 문제지만 정부의 안이한 대처도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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