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현대 아산 회장의 비극적인 죽음이 전해지던 날 우리는 모두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회사 관계자들도 당황한 탓에 경황이 없어 보였다. 투신한 시신을 수습하는 현장 그림이 화면에 그대로 비춰졌다. 그런 과정에서 있었던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주검이 들것에 수습되어 옮겨지는 과정에서 시신의 한 발이 들것 밖으로 삐져 나와 흔들리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바지 가랑이는 걷어 올려진 채 양말 신은 발목까지가 시트 밖으로 아무렇게나 뻗친 그 모양은 왈칵 설움이 북받치게 했다. 그와 개인적으로 특별한 친분이나 관계가 없는 평범한 시청자건만 참을 수 없게 다가오는 설움이었다.이렇게 흐트러진 자신의 주검 모습을 생전의 그는 절대로 ‘TV 중계로’공개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서러운 몰골인가.그 모습은 오래 전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행사의 단상에서 쓰러졌던 날을 기억나게 했다. 혼비백산하여 아수라장이 된 행사장에서 아내를 떠메어 내보낸 박정희 대통령은 남은 연설을 마치고 그래도 꼿꼿이 단상에서 퇴장을 했다. 그렇게 퇴장을 하던 때였다. 그는 발 앞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져 있는 흰 고무신 한 짝을 발견하고 몸을 굽혀 그것을 주워 들었다. 그것은 떠메어 나간 육여사의 것이었다. 자신 때문에 대신 흉탄을 맞고 실려나간 지어미의 발에서 흘려진 한 짝의 고무신. 그는 대통령이므로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것을 집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내의 흰 고무신 한 짝을 반사적으로 몸을 굽혀 손수 주워들고 그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그것은 보는 마음에 통곡을 치솟게 하는 장면이었다. 서러운 한짝의 신발이었다. 한복을 아름답게 입는 육여사는 그 무렵의 다른 여인들이 그러는 것처럼 치마저고리 밑에 하이힐을 신는 일을 하지 않았다. 한복에는 고무신이 참하고 격식 있는 입음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키가 작은 편인 남편을 생각해서 자신의 키를 낮추는 배려와 속내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고무신 한 짝을 이렇게 단상에 흩트려 놓고 떠메여 나갔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치욕스러워 했을까. 성한 정신이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지아비 대통령은 그래서 그것을 통곡을 삼키며 주워 들었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우리 매체들도 이제 죽음의 품위를 고려하는 예의 같은 것을 배려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전에 일본의 고베 지진이 있었을 때였다. 그 많은 피해 현장이 소개되는데 한번도 주검을 수습하는 장면을 그대로 보인 적이 없었다. 흰 장막을 딱 가려놓고 그 안에서 수습했고 매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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