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심의위 의원들에게 뇌물써 삼성물산 제치고 공사수주 경실련 “포항시는 계약해지해야 한다” 감사원에 감사청구재입찰 결정싸고 포항시·조달청 핑퐁에 시민단체들 ‘열불’현대건설이 대형 건설 입찰에 참여하며 심사위원들에게 뇌물을 돌린 것이 들통나 낙찰 결과가 뒤집어질 위기에 처해졌다. 현대건설은 지난 3월 포항시 신청사 건립에 시공사로 선정돼 조만간 본격 공사에 착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얼마전 심사를 맡은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바친 사실이 드러나 자칫 현장 철수까지 예상되고 있다. 포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장주·박성대)은 “현대건설이 뇌물로 공사를 따낸만큼 포항시는 수주계약을 해지해야 한다”며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냈다.

뇌물 공여 사건에 관한 검찰 기소에 앞서 감사원까지 비리 전모를 밝히는데 개입하게 된 것이다.포항시는 지난 93년부터 신청사 건립을 준비해왔다. 도시계획 재정비 시민공청회, 신청사 건립부지 결정 등을 거쳐 지난해 10월 실시설계 적격자 입찰공고를 냈다. 적격 심사를 거쳐 입찰 등록까지 마친 곳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양자 대결에서 승리자는 현대건설이었다. 지난 3월 현대건설은 설계적격심사와 시공능력 평가에서 삼성물산을 제치고 시공사로 선정됐다.포항시 신청사 건립은 945억원대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로 포항시가 조달청에 일괄입찰에 따른 계약요청을 한 상태였다. 즉, 설계와 시공을 일괄적으로 맡는 계약방식을 택하되 시공사 선정을 조달청에 의뢰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조달청은 심사결과 현대건설을 택했고 이 결과를 포항시와 현대건설에 통보해줬다.수주액 규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청사 공사는 포항시가 10년에 걸쳐 야심찬 계획하에 준비해오던 것이었다. 지난해 7월 포항시가 꾸민 견적서에 따르면 대지면적 22만4,500여평에 청사면적 1만6,140평, 지하3층 지상 14층 규모에 달하고 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도시 개발 공사 뺨치는 수준.

대형 공사 수주로 자축 분위기에 빠져있던 현대건설은 시공사로 선정된 지 3개월만에 불의의 통보를 받았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현대건설이 일부 입찰 심사위원들에게 뇌물을 공여한 정황을 포착한 것. 그 결과 지난 6월 경찰은 현대건설 양모(52) 상무와 심사를 맡은 공무원 4명을 불구속 입건조치했다.포항경실련은 현대건설이 수주를 받아내는데 뇌물이 오갔다는 사실에 주목, 포항시에 재입찰을 실시하라고 요청을 넣었다. 그러나 포항시는 “조달청이 시공사를 선정하고 포항시는 이를 따랐을 뿐”이라며 재입찰 결정을 조달청에 넘기고 있다.경실련이 현대건설과 시공사 계약을 파기하고 재입찰에붙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첫 번째는 현대건설이 공정한 심사를 받지 않았다는 것과 두 번째 조달청을 통한 관급공사 입찰에 필요한 ‘청렴계약이행각서’의 이행 등이다.경실련에 따르면 조달청은 ‘당해공사 수행능력’과 ‘입찰가격평가’, ‘설계평가’등 3가지 항목을 입찰 심사 기준으로 삼았다.

조달청은 이중 ‘설계평가’에 한해 경상북도 심의위원회에 평가를 맡겼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당해공사 수행능력’과 ‘입찰가격평가’ 등 2개 항목은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에 같은 점수가 나온 반면 ‘설계평가’에서는 현대가 삼성을 앞섰다는 것. 사실상 현대건설이 수주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경북 심의위원회의 평가가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입건시킨 심사위원들 4명은 모두 경북 심의위원회 위원이었다.‘청렴계약이행각서’는 이름 그대로 입찰 참여 업체로부터 청렴성을 요구하고 이를 공증화한 문서다. 조달청을 통한 관급공사 입찰에는 참여자와 관련공무원 사이의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입찰 참여 업체로부터 각서를 받는다. 또 낙찰업체에 한해 대표자가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

‘청렴계약 입찰특별유의서’ 제5조에 따르면 입찰, 계약체결 및 계약이행과 관련하여 관계공무원에게 뇌물을 제공할 경우 낙찰 결정을 취소하거나 계약을 해제한다. 또 각서에 의해 조달청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아무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포항경실련은 이상의 두 가지 이유를 근거로 포항시가 현대건설과 맺은 시공사 계약을 무효화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포항시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시공사 선정 책임자인 조달청에 책임을 넘기고 있다. 조달청은 뇌물 공여·수수가 형사고발된만큼 재판 결과에 따라 입장을 정리할 방침이다.경실련측은 포항시와 조달청의 ‘핑퐁’ 게임만 지켜보다 재판에 몇 해가 소요되고 그러다보면 현대건설에 의해 신청사가 만들어진다고 보고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감사원 감사가 훨씬 빠를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이에 대해 현대건설 관계자는 “재입찰 결정이야 포항시나 조달청이 알아서 할 일이지만 유죄 여부를 가려내는 게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포항시에 따르면 뇌물 비리로 관련자들이 불구속입건 된 이후에도 공사는 일정대로 진행되고 있다. 아직 착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설계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뇌물 비리가 발생하자 입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와 정부 및 시 등 관계기관의 변명에 감사원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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