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분기 증권 수수료 239억으로 지난 분기대비 27%급감대대적 조직·영업구조개편등 일련의 변화에 ‘회의론’거세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브랜드 삼성은 그동안 국내 산업 각분야에서 선구자적 역할을 주도해 왔다.주변여건이나 업종특성 등 때문에 어려워 보이는 개혁과제들도 대부분 성공적 결실을 거둬 그 산업이나 업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공헌한 적이 많다.금융산업에서도 생명보험, 손해보험 등 삼성의 주력계열사를 통해 그때마다 이른바 質경영, 신경영 등 명칭은 달랐지만 남들이 섣불리 하지 못하는, 그 분야의 고질적인 병폐에 메스를 가하는 어려운 과제들을 거뜬히 해냄으로써 해당업종의 리딩컴퍼니로서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한 발 더 나아가 해당업종 전체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해왔다. 역시 삼성은 증권에서도 남들보다 빨리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고객중심의 정도영업”, “천수답 영업구조 타파”, “선진화된 종합증권사 변신”으로 대변되는 현 삼성증권사장이 주창한 ‘황영기論’이 바로 그것이다.그러나 황사장의 시도는 ‘언젠가는 가야할 길, 지금은 주변 여건 때문에 다소의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성공할 것’이라는 동정은 받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영’이라는 것 자체가 내외적 변수를 모두 염두에 둔 고난도 게임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국 ‘황영기론’으로 대변되는 삼성증권의 변신은 과거 타 금융 업종의 그것만큼 성공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황영기 사장의 진두지휘아래 삼성증권은 약정경쟁을 중단하고 대대적으로 조직 및 영업구조를 개편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시황산업’이라는 특수성에 힘겨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증권업계 일각에서는 “역시 믿을 건 약정뿐이었다”는 자괴감 섞인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또 국내 증시에 성숙된 투자문화가 정착되기 전에는 황영기論이 자칫 이상에 지나지 않는 성급한 판단이 될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01년 6월 취임이후 황영기 사장은 줄곧 정도경영과 종합자산관리 위주의 영업구조 개편을 주장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트렌드에 맞게 대대적으로 조직과 영업구조를 개편해 나갔다. 당시 황 사장은 “금융시장이 글로벌화되면서 국내 증권사도 수탁수수료 중심의 영업형태에서 벗어나 선진화된 금융사로 거듭나야만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과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천수답식 영업구조 속에서 허덕이던 증권업계는 황 사장의 선언에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을 보냈다. 경제 곳곳에서 ‘삼성’이라는 브랜드와 ‘삼성이 하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삼성증권의 변화가 증권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줄 것으로 내심 기대했던 것. 대형증권사들이 삼성증권의 변화에 잇따라 동참, 박자를 맞췄던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증권업계 구조조정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당국도 이런 삼성증권의 변화를 적극 지지했다는 후문이다.

물론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황 사장의 선언을 의심하거나 시샘했던 목소리도 많았다. ‘정도경영’, ‘영업구조 개선’등은 증권사 대표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 되던 레퍼토리였고 현실적으로도 변화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지와 관심, 의심과 시샘속에서 2년이 지났지만 안타깝게도 삼성증권은 표면상 특별한 변화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성과를 말하기엔 짧지만 삼성증권이 내놓은 성적표가 기대이하의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1/4분기 삼성증권의 영업실적을 살펴보면 영업구조 개편이후 주력했던 자산관리 영업은 SKG 카드채 사태로 판매고가 감소하면서 오히려 퇴색된 모습이다. 1분기(4∼6월) 삼성증권의 수익증권 취급수수료는 239억원으로 지난 분기에 비해 26.6%, 전년 동기 대비로는 42.0%나 급감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기준 25조원이 넘었던 판매고가 올 3월 SKG 카드채 사태로 22조원대로 급락했기 때문. 또한 시중금리 하락에 따라 혼합형과 채권형 펀드의 평균 수수료율이 하락한 것도 이 부문 실적부진에 한 몫했다. 자산관리 영업과 함께 삼성증권이 주력했던 기업금융 부문도 아직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마찬가지. 지난 1분기 삼성증권의 인수주선수수료는 전년동기대비 19.8% 증가한 133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는 카드채 사태이후 삼성카드등 신용카드사들의 전환사채(CB)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급증이라는 특수한 상황때문이란 것이 업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PO의 경우 삼성증권은 전분기에 이어 1분기에도 한 건의 실적도 기록하지 못했다. 자산관리 영업과 기업금융 부문이 저조하거나 지지부진한 데 반해 수탁수수료 수익은 전분기 대비 42.7%나 증가한 893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증권 자료에 따르면 위탁 부문 시장점유율도 0.2%포인트 증가한 9%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정경쟁 중단, 지점 자산관리영업 집중, 위탁영업조직의 대대적인 축소, 개편으로 다소 주춤했던 수탁수수료 실적이 오히려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부문별 실적 비율을 보면 수탁수수료 부문 52%, 자산관리 부문 14%, 투자은행 부문 8%, 자산운용 부문 6%, 기타 20% 순이다. 수탁수수료 부문은 지난해 12월 기준보다 오히려 2%포인트 늘어났다. 이는 황 사장이 이상적인 수익구조로 설정한 수탁수수료 30%, 자산관리 30%, 투자은행 20%, 캐피털마켓업무 20%라는 이른바 ‘3:3:2:2구도’와는 거리가 멀다. 삼성증권이 기대이하의 실적과 평가를 받게 된데 대해 업계에서는 주변 여건이 안좋았다는 ‘동정론’이 우세하다. 실상 삼성증권이 대대적인 조직과 영업구조를 개편하고 본격적으로 나선 지난해 12월이후 때마침 SKG 카드채 사태가 터지면서 수익증권 판매고가 급감, 자산관리 영업은 물론 수익구조가 크게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형증권사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 삼성증권의 실적도 기대이하지만 이는 조직개편이후 증시 주변여건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성공여부를 판가름하기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그러나, 황사장의 시도가 우리 증권산업에 접목되기에는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근본적인 ‘회의론’도 적지않다. 오히려 현재 국내 증시 여건상 대대적인 조직 및 영업구조를 개편한 삼성증권이 얻을 것 보다는 잃을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삼성증권 역시 시황에 따라 영업실적이 크게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국내외 애널리스트나 외국계 투자자들의 삼성증권에 대한 평가도 매섭다. UBS 도이치증권등 국내외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자료를 통해 삼성증권의 기대이하 실적과 고비용 구조, 수익증권 판매고 급감 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은 삼성증권에 대해 매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증권의 외국인 지분율도 지난 12일 기준 17.33%로 급락했다. 17%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99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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