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부도때 일부 계열사만 건진채 그룹서 분리차명으로 골프장 위장소유·비자금 조성 등 혐의옛 재벌가 출신이 차명으로 골프장을 위장소유하고 있던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골프장을 소유하기 직전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회사를 고의로 부도냈던 사실까지 드러났다. 문제의 기업주는 쌍방울 창업주 이봉녕 전회장의 차남 이의종씨. 이씨는 98년 쌍방울이 부도가 나자 그룹 경영권을 잃고 일부 계열사만을 건진 채 그룹에서 분리해 나왔다. 그나마 이 회사들도 동반부도를 내고 차명을 동원, 골프장을 편법으로 사들였다. 지난 12일 검찰이 이의종씨를 전격 구속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이 사건은 이씨와 그의 사촌형제간 재산 분쟁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전북 익산에 위치한 ‘익산컨트리클럽(익산CC)’. 익산CC의 전사장 손성공씨에 따르면 이의종씨는 익산CC 소유자인 ‘대원개발’의 실소유주로, 익산CC의 주주들은 이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람들에 불과하다.

이의종씨가 차명을 통해 대원개발을 설립한 때는 지난 99년 1월12일. 이씨가 대원개발을 설립한 이유는 법원에서 경매물로 내놓은 익산CC를 낙찰 받기 위해서였다. 이씨는 자신의 의도대로 같은 해 1월18일, 350억원에 골프장을 낙찰 받았다.골프장이 법원 경매물로 나오기 전 이씨가 골프장의 소유주였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이씨가 빚을 갚지 못하자 채권단이 골프장을 압류했고 법원에 경매 신청을 했다는 얘기다.손성공 전사장과 익산CC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의종씨는 쌍방울 부도 직후 계열사였던 석탑건설과 익산CC 운영회사였던 덕원관광개발만을 건진 채 쌍방울그룹에서 손을 뗐다.그러나 97년 10월, 석탑건설에 이어 익산CC마저 부도처리 되며 이씨는 빈털터리로 전락했다. 석탑건설의 경우 97년 부도직전 금융권으로부터 대출 받은 500억원을 결제하지 못했고 익산CC는 채권단에 담보물로 제공됐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껍데기에 불과하던 석탑건설은 포기하더라도 경매로 할인된 값에 알짜배기를 건졌으니 이씨에게는 남는 장사였던 셈.익산CC는 2001년에 이어 지난해까지 연속 흑자행진을 기록하며 이의종씨의 기대에 부응했다.막후에서 재기의 칼날을 갈고 있던 이의종씨는 그러나 올초 불의의 피격으로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씨에게 일격을 가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그의 사촌형인 이의선씨. 이의선씨는 이의종씨가 자신의 대리인격인 손성공 사장을 견제하기 위해 2000년 7월 익산CC의 전무로 임명한 인물.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의선씨는 손 사장과 손잡고 사촌형을 공격하게 된다. 골프장 내 장비 이동수단인 전동카트의 수익을 둘러싸고 사촌 형제간 배분 문제를 놓고 갈등에 휩싸인 게 원인이 됐다.손성공 전사장에 따르면 이의선씨는 이의종씨의 허락을 받아 2002년 7월 ‘건영산업’을 설립, 전동카트 운영권을 얻었다. 이 사업은 당초 예상보다 짭짤한 수익을 안겨줬다.

대원개발의 현 최고경영자인 박효수 사장에 따르면 전동카트 운영으로 월 평균 1억2,000만원의 수익이 발생했다고 한다.지난해말까지만 해도 이씨 형제는 마찰 없이 잘 지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이의종씨가 전동카트 운영 수익에 욕심을 내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갈등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발전하자 올초 손성공 사장과 이의선씨가 해임됐다는 게 대원개발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손 사장의 경우 표면적으로 사촌간 분쟁을 관망했다고는 하나 은근히 이의선씨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손 사장은 전동카트 운영회사인 건영기업에 50% 출자를 했었기 때문.사촌형에 의해 익산CC에서 쫓겨난 이의선씨는 그를 상대로 앙갚음에 나섰다. 대원개발의 실소유주는 이의종씨라는 사실에서부터 익산CC 경영을 통한 비자금 조성, 60억원대 내부 자금 횡령 등 굵직한 의혹들을 폭로한 것.손 전사장 등에 따르면 비자금 조성은 입장객 수를 고의로 줄이는 방법을 동원했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모은 돈이 10억여원대.의선씨가 제기한 의혹 가운데 가장 베일에 가려진 부분은 60억원대 자금 횡령이다. 지난해 익산CC의 순이익이 9억5,000만원이라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의선씨는 “(의종씨가) 익산CC 경매에 참여할 때 들어간 입찰보증금 60억원을 되찾기 위해 회사 자금을 빼돌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찰이 35억원, 나머지는 당좌수표였다는 게 의선씨의 주장.60억원의 행방은 대원개발이 99년 1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발행한 전환사채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본지 취재 결과 대원개발은 1, 2회차에서 각각 35억원, 25억원 등 모두 60억원어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인수자는 동원창투였다. 이 사채는 오래지 않아 Y사가 일괄 인수했다.Y사는 표면적으로 의종씨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전환사채를 매입한 이후의 행적은 의종씨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대원개발은 Y사의 사채를 상환하기 위해 3, 4회차에 또 다시 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사채는 다시 Y사가 매입했다. 사실상 Y사는 자기 자금을 동원해 대원개발을 지원했던 것. Y사와 대원개발의 사채 거래는 5회차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이후 대원개발은 2001년 12월말 6∼9회차에 걸쳐 무보증사채 등을 발행해 40억원대 자금을 마련하고 여기에 회사자금을 보태 Y사 사채를 상환했다. 이때 사채인수자는 대원개발의 최모 이사를 비롯해 신모씨, 조모씨 등이었다. 대원개발 내부관계자에 따르면 신모씨와 조모씨는 과거 이의종씨가 경영하던 석탑건설의 임직원이었다고 알려졌다.대원개발은 감사보고서에서 위의 사채 발행이 익산CC 경매자금조달을 목적으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만약 의선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채 인수자가 의종씨와 전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의종씨가 조성했다는 비자금의 조성경위와 행방을 쫓고 있다. 검찰은 의종씨를 둘러싼 의혹을 상당 부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의선씨는 쌍방울이 부도나기 전 의종씨가 중국 현지 법인을 통해 거액을 대출 받는 등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미 혈육간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이들 주위의 반응이다.옛 오너인 이의종씨 일가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쌍방울의 한 고위관계자는 “당시 쌍방울은 비자금을 조성할 규모가 되지 않았고 그와 관련해 전혀 확인된 바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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