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방위로 확산되는 미국발(發) 통상공세로 기업들은 숨 가쁘다. ‘이란 돌발변수’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협정(JCPOA) 탈퇴를 선언하고 11월부터 이란산(産) 원유 수입국을 제재하겠다고 나섰다. 철강업계, 자동차업계에 이어 정유업계도 발등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는 작년 기준으로 원유 수입물량 중 이란산 비중이 13.2%에 달한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단기간에 수입처 다변화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러한 ‘통상 태풍’에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보호무역 파고’는 국가적 재앙이 될 수 있다. 국가적 난제인 통상현안에 대한 방향 설정이나 대책 마련에 대해서는 정부가 기업의 의견을 들어보고 해법을 찾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정부가 과연 기업과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가뜩이나 새 정부 들어 주눅이 들어있는 기업 쪽에서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통상당국을 중심으로 외교·민간 라인 등을 총가동해서 보호무역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세계 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 경제성장률이 장기적으로 하향추세에 있다는 건 분명한 현실이다. 반도체 업종과 상위 기업 몇몇을 제외하면 상당수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국익을 지켜낼 ‘통상외교 실력’이 요구되는 때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간의 관계가 틀어질 때는 통상적인 방식뿐만 아니라 특사(特使)나 비밀 민간사절 카드가 동원된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는 ‘춘추 5패(五覇)’ 중 첫 번째 패자가 되었다.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로 강성한 국가였다. 제나라가 이처럼 강국으로 성장한 바탕에는 관중과 안영(晏嬰, 안자晏子) 같은 명재상의 활약이 있었다. 관중은 환공을 도와 춘추시대 초반을 주도했고, 안영은 영공, 장공, 경공 세 임금을 절검(節儉)과 역행(力行)으로 보좌하여 국가의 위상을 높였다. 사마천은 “만일 자신이 안영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면 그의 마부가 되어 채찍질하는 것을 자랑스레 여길 것”이라고 안영을 추앙한 바 있다. 약육강식의 패권질서 환경 속에서도 안영의 탁월한 외교능력과 전략은 시대를 초월한 전범(典範)이 되었다.안영의 외교관으로서의 주체성과 당당함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춘추5패 가운데 강국인 초(楚)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화이다. 안영은 단신에 볼품없는 외모였다. 사신을 얕잡아 본 초나라 대신은 대문 대신 쪽문으로 가도록 안내했다. 안영은 “개(狗)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면 개구멍으로 들어가겠지만,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므로 그리할 수 없다”고 응수하여 대문을 통과했다. 초나라 영왕(靈王)은 “제나라에 그렇게 인물이 없느냐”고 안영의 단신과 외모를 빗대 수모를 주자, 안영은 “제나라는 상대국 수준에 맞게 사신을 파견하는데, 자신은 하등(下等)의 인물이기 때문에 초나라 사신으로 왔다”고 역공했다.
 
초왕이 안영과 함께 거리를 걷는데 관원이 죄수 한사람을 묶어 끌고 왔다. 초왕이 “어디 사람이며 무슨 죄를 지었느냐”고 묻자 관원은 “제나라 사람인데 도둑질을 하다 잡혔다”고 대답했다. 초왕은 “제나라 사람들이 도둑질을 잘하는 모양이구나”하고 말하자, 안영은 “강남에 귤을 강북인 우리 제나라에 옮겨 심었더니 귤이 열리지 않고 탱자가 달렸습니다. 환경 탓이지요.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모릅니다. 그런데 제나라 사람이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을 했다면 그 역시 초나라 환경 탓이겠지요”라고 받아쳤다. <안자춘추>에 나오는 유명한 ‘귤화위지(橘化爲枳)’의 고사이다. 
 
한반도 정세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다.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후 3주가 지났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진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동해선·경의선 철도 연결 및 현대화를 위한 공동연구조사단 구성 등 남북경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는 ‘선(先) 비핵화-후(後) 경협’ 원칙에 위배된다. 유엔 대북제재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대북제재가 풀리기 전까지 성급한 경협은 자제돼야 하며 주어진 시간에 체계적인 경협 방안의 준비를 차분히 해나가야 한다.
 
연합훈련 않는 동맹은 ‘죽은 동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가 한·미 연합훈련은 물론 국군 단독훈련도 중단·연기했다. 나아가 첨단무기 개발을 보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패배하기 마련이다. 군이 들떠서 이 같은 선제 조치로 안보를 자해(自害)하면 ‘송양의 인(宋襄之仁)’처럼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군사 분야는 외교, 체육, 문화, 경제 분야의 교류가 충분히 진전된 후 마지막 단계로 따라가야 한다. 평화협상 등이 진행될 때, 협상 결렬에 대비하기 위해 더 강력한 국방태세로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군(軍)의 기본적 태세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투철한 안보의식과 강력한 방위능력만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 김정은의 호의와 선택에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비핵화의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위의(威儀)도 지키고 실리도 거둘 수 있는 안영 같은 명 외교관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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