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6.13 지방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여당은 PK 입성에 성공하며 ‘전국 정당’의 초석을 다졌다. 당내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 등 ‘대권 잠룡’들도 넘쳐난다. 반면 야권에선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특히 홍준표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의 부상이 심각하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는 2017년 대선에서 각각 24%와 21%의 득표율을 올리며 야권을 이끄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번 지선은 이 둘의 정치 인생에서 중대한 ‘변곡점’이 됐다. 야권 안팎에서 두 사람의 ‘정계 은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친다. 당사자들 역시 ‘작별’을 예고했다. 다만 이들의 ‘작별’에는 ‘기약’이 있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무엇을 더 하려고 훗날을 ‘기약’하는 것일까. 홍준표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의 ‘복귀 시나리오’와 그 ‘가능성’을 점쳐봤다.
 

- 洪, 복당파 시간 벌고 ‘친박 청산’ 명분 복귀?
  安, 바른미래 예고된 결별에 ‘또’ 구원 등판?
- “홍준표·안철수 떠난 지금이 보수 대통합 ‘적기’... ”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와 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대표가 6.13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났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후보이기도 했던 이들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위상에 걸맞은 득표력을 보이지 못하면서 당내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까지 ‘정계 은퇴’를 압박받고 있다.
 
자유한국당 재건비상행동은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 앞에서 “정치의 무거운 힘을 내려놓고 후배들이 새로운 정치의 장을 열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의 희생물로 바치자”며 홍준표 전 대표를 포함한 총 16명의 인사들에게 정계은퇴와 총선 불출마 등을 요구했다.
 
앞선 19일엔 이종훈 정치평론가가 바른미래당 워크숍에서 안철수 전 대표에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안철수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 안철수가 정계 은퇴해야 한다”며 “이번 선거 패배 원인은 3가지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조급한 통합, 일명 ‘꼼수 통합’과 이어진 당의 내분, 그리고 확고한 국가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안철수 후보다.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3대 요인의 근원은 안철수에서 시작한다”며 “안철수의 조급증, 차기 대권으로 가기 위해선 서울시장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작용했고, 안이한 상황 판단은 바른미래당의 최대 리스크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사마귀의 꿈’ 이루려는 洪에
복당파 ‘시간 벌기’ 의구심

 
상황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두 사람의 ‘정계은퇴 선언’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홍준표 대표는 11일 미국으로 출국해 로스앤젤레스에서 당분간 머물며 휴식을 취할 예정인데, 이 기간 동안 그가 집필할 계획이라 밝힌 ‘당랑의 꿈’(가제)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은 그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해당 제목은 춘추시대 제나라 장공의 수레를 막아선 사마귀의 일화에서 나온 고사성어 ‘당랑거철’을 연상케 한다. 이는 자신의 힘을 넘어서는 강자에게 덤비는 무모한 행동을 뜻하기도 하지만, 현실의 벽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홍 전 대표가 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보수 세력 재건 등 ‘당랑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재기를 노린다는 해석이 나왔다.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등 복당파가 새 지도부를 구성할 전당대회 시점을 최대한 늦추려고 하는 것 역시 홍 전 대표의 ‘복귀’를 염두에 둔 행보로 읽힌다. 김 권한대행과 홍문표 사무총장, 장제원 의원 등이 일단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운 뒤 전당대회 시점을 연말, 내년 초로 미루려는 것은 홍 전 대표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행보라는 것. 홍 전 대표가 미국 체류 기간을 2~3개월 정도라고 한 것 역시 이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이후 홍 전 대표는 복당파가 깔아 놓은 판에 등장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쩔 수 없었다며 ‘재신임’을 물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측근 역시 통화에서 “홍 전 대표는 어떻게든 당을 구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계파 청산을 위해서도 애썼다. 이러한 노력이 4%정당을 30%까지 올린 계기가 됐다”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방선거 참패가 홍 전 대표만의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도당 위원장들이 자기들이 해놓고 실패한 책임을 홍 전 대표에 돌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선 당시 논란이 된 홍 대표의 ‘막말 논란’에 대해서도 “당권을 생각하는 사람들, 당권을 통해 공천권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막말 프레임’을 씌운 것이다. 홍 대표가 이재명과 같은 입에 담지 못한 욕을 한 것은 아니지 않나. 직설 화법이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친박계와 나경원·심재철·정우택 의원 등 잔류파는 지방선거 후폭풍을 최대한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전당대회 시기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책임론 프레임’이 느슨해질 것이고 이는 당내 주류 계파인 복당파에 시간을 벌어 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만약 김 권한대행 등 복당파가 당 혁신안을 내세워 비박계와 바른정당 복당파 중심으로 당을 다시 장악한다면 그 첫 행보는 자연스레 ‘친박 청산’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친박계가 ‘분당’까지 염두에 두며 결사적인 이유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 관계자는 “김 권한대행의 혁신안이 친박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대로 추진되다면 그동안 ‘친박 청산’을 주장해 온 홍 전 대표의 입지는 자연스레 넓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홍 전 대표가 ‘친박 청산’이라는 복귀 명분을 얻어 당대표 출마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당분간 당내 친박 대 비박 간 권력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安, ‘용기’ 중요하다지만...
친안계조차 “‘휴지기’ 가져야”

 
한편 안철수 전 대표 역시 지난달 27일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계속 일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용기가 중요하다”라며 정계에서 ‘철수’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사무처 당직자들과 오찬을 갖고 “성공이 끝이 아니고, 실패가 완전히 마지막도 아니다”라며 “성공이건 실패건 계속 용기를 가지고 그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 전 대표가 한국당의 ‘내홍’을 재기의 발판으로 노리고 있다면 안 전 대표의 복귀는 불안정한 바른미래당의 앞날과 맞물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비대위를 띄워 당권을 외부인사에 맡길 예정인 반면 바른미래당은 당 지도부가 일괄 사퇴하고 새로 판을 짜는 방식이 아닌 국민의당 출신 인사들이 당직을 이어받았다.
 
지선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동철 의원이 비대위원장을 맡고 김관영 의원이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최근 연찬회에서는 ‘진보’가 선언문에 채택됐고, ‘개혁보수’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에 대해 유승민 의원과 지상욱 의원 등을 비롯한 친유계는 상당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결별’이 임박해 보이는 바른미래당의 상황은 안철수 전 대표 입장에선 괜찮은 ‘기회’다. 일각에서 그에 대한 ‘구원등판’ 요구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전 대표는 지난해 8월과 대선 패배 뒤 3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당을 구해 달라”는 요구와 ‘반발’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전대 출마를 강행해 당권을 쥔 바 있다.
 
그러나 친안계에서조차 ‘정계은퇴’까지는 몰라도 이번만큼은 ‘휴지기’를 길게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 바른미래당의 전당대회가 예정된 ‘8월 복귀’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장 안 전 대표는 지난 4일 당 소속 의원들의 수요 정례 오찬 자리에 참석하려 했으나 “정치 행보로 비칠 수 있다”는 의원들의 우려에 의사를 철회했다.
 
바른미래당 주승용 의원 역시 ‘안철수 8월 복귀설’에 대해 “100%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주 의원은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 전 대표가 8월 선출대회에 나선다는 괴소문이 있어 제가 직접 (만나) 확인했다”라며 “안 전 대표는 ‘절대로 당대표에 출마하는 일은 없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라고 밝혔다.
 
안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도식 전 안철수 대표 당무비서실장도 “안 전 대표께서는 전당대회 출마를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확고하다”면서 “‘만약 출마한다면’이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洪·安 ‘정계 은퇴’가
‘정계 개편’ 촉매제다?

 
이렇듯 여의도에선 홍준표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를 놓고 ‘정계 은퇴’냐 ‘복귀’냐 갑론을박이 한창이지만 양쪽 모두 홍 전 대표보다 안 전 대표의 ‘회생 가능성’이 낮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홍 전 대표는 자신이 호언했던 ‘광역단체장 6곳 플러스알파’를 지켜내지 못했다. PK마저 민주당에 내줬다. 그럼에도 한국당엔 여전히 홍 전 대표를 위시하는 복당파가 주류 계파로 남아있다.
 
반면 안철수 전 대표는 홍 전 대표에 비해 당내 계파가 탄탄하지 않다. 안 전 대표가 직접 지방선거 선봉장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신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계파 기반도 다지고 나아가서는 당이 외연을 확대해 나갈 기폭제가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박원순 시장은 물론이고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까지 밀리면서 한국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정치권에서 안 전 대표의 의중과 별개로 그의 정계 은퇴에 대한 당위론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상황이 이쯤 되자 일각에서는 안 전 대표의 정계은퇴가 야권 발 정계개편의 촉매제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안 전 대표는 과거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서 나와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이후 바른정당과 합당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평화당이 갈라져 나왔다. 당시 현 민주평화당 의원들은 안 전 대표를 이유로 바른미래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결국 안 전 후보의 존재와 영향력이 상실된다는 것은 아니러니하게도 민주평화당 의원들과 바른미래당 내 국민의당 출신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촉매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바른미래당 내 친유계는 자연스럽게 자유한국당 내지 외부의 ‘빅텐트’로 이동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안철수 전 대표의 등장 당시 정치권은 진보 세력의 분열을 예상했다”면서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안 전 대표로 인해 보수가 분열됐다. 이번 지선을 통해 보수 대통합 없이는 여권을 당해 낼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2020년 총선 전 보수 대통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안철수 전 대표에 보수 진영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바른미래당 친유계가 한국당 복당을 꺼리는 이유는 홍준표 전 대표 때문이고 국민의당이 민평당과 바른미래당으로 분열된 것은 안철수 전 대표 때문이다. 결국 이 둘이 정치권에서 물러난 지금이 보수 대통합의 적기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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