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주 52시간 근무제가 지난 2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반기는 직장인들이 늘었다.


반면 시간외 수당 등 실질 임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걱정도 적지 않다. 일요서울은 4일 오후 5시 30분께 재계 분위기를 살펴봤다.

대기업들, 사전 운영 통해 혼란 막아…근로시간 대응 ‘총력’
임금 부족 우려하는 생계형 직장인들 ‘투잡’ 찾는 경우도

“오늘 업무 마감 준비하세요. 10분 후에 PC종료됩니다” 이른바 ‘셧다운 근무제’를 도입한 기업들의 오후 업무 풍경이다.


셧다운 근무제는 특정 시간을 정해 PC접속을 차단하는 프로그램이다. 대표적인 곳은 삼성전자다. 스마트폰 등을 개발하는 IM부문의 경우 게이트에 출근 기록이 찍힌 시점부터 10시간 후 PC가 자동으로 꺼지는 PC셧다운제를 일부 시행 중이다.


임신 중인 ‘모성보호’ 근로자와 그룹장 등을 대상으로 했다. 관리자부터 일찍 퇴근해야 근로시간 단축 문화가 정착된다는 취지에서 그룹장들의 PC가 출근 10시간 후 꺼지게끔 조치한 것이다.

‘퇴근시간 30분 남았습니다’

다만 업무 특수성을 고려해 PC셧다운제는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신제품 개발을 맡은 특정부서에서는 근로시간 뿐 아니라 업무수행방법까지 근로자가 정하는 재량근로제로 대응한다.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65%를 차지하는 반도체의 DS부문 개발 담당 임원들에게는 ‘저녁 8시 이전 퇴근’ 지침을 내렸다. 8시 이전 퇴근을 지키지 않는 임원들은 인사팀으로부터 경고 메일을 받을 정도다.


저녁 8시 이후 임원이 직원들에게 업무 이메일을 발송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를 빈번히 지키지 않는 임원들의 순위도 집계한다.


KT도 마찬가지다. KT는 근무 외 시간인 오후 6시 30분 이후부터 다음 날 오전 8시 30분까지 사내시스템 접속을 제한했다. 또 주말과 휴일을 비롯해 연차 사용일에는 전 시간대에 사내시스템 접속을 차단한다. 다만, 사전 승인을 받은 건에 한해서 계획한 시간대에만 업무를 위한 접속을 허용하기로 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LG 유플러스 본사 업무용 PC에는 정시 퇴근을 알리는 알림창을 통해 직원들의 정시 퇴근을 유도했다.


롯데는 이미 올해 초부터 퇴근시간 30분이 지나면 사무용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를 전 계열사에서 단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CJ도 사무직의 PC가 정해진 근로 시간이 아닌 경우 켜지지 않고 근로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지는 PC 오프제를 시행하고 있다. 울산의 현대중공업도 퇴근 시간(오후 5시) 30분 이후 모든 사무직 직원의 PC를 강제로 종료한다. 일단 오후 5시가 되면 모든 PC에 퇴근을 알리는 팝업 메시지가 뜨도록 했다.


또 직원이 연장근무를 하려면 퇴근 시간 전 근로시간 관리시스템을 통해 미리 신청하고 승인받도록 했다. 승인을 받아야 퇴근 시간 30분이 지나도 PC가 종료되지 않는다.


증권업계에서는 NH투자증권이 PC오프제를 도입해 실행 중이다. 총 업무시간을 정해 PC를 켜고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후 7시만 되면 그냥 PC 자체가 꺼져버린다. 만약 야근이 필요할 경우에는 미리 승인을 받아야 오후7시가 지나서도 PC를 사용할 수 있다.


직장인들의 퇴근시간이 빨라지면서 학원가와 백화점 문화센터 등도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맞춘 강의를 개설, 일찍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파고다아카데미는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는 7월 첫 주부터 ‘파고다 직장인환급반’을 ▲강남 ▲종로 ▲신촌 ▲인천 ▲부산 서면·대연·부산대 등 전국 7개 지역 파고다어학원에서 시행한다.


직장인환급반은 직장인은 물론 일반인도 조건 없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내일배움카드 없이도 환급반 등록이 가능하다. 수업 참여를 독려하고자 출석률 80% 이상만 되면 주중반 3만 원(1개월 기준), 주말반 4만 원(2개월 기준)을 각각 환급할 예정이다.
파고다 관계자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시행으로 직장인 수강생 또는 환급반 수강생 수가 늘어날 것”이라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저녁반 강좌를 점진적으로 확대 개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은 대체로 주 52시간 근무에 만족하는 분위기다. 업무에 집중도를 높일 수 있고 초과 근무에 대한 수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올여름 문화센터 강좌 수를 지난해보다 1900개 늘렸다. 늘어난 강좌는 퇴근 이후 시간인 오후 5시 이후 시간대에 직장인들을 겨냥한 강좌가 대부분이다.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역시 최근 20∼30대 직장인 여성 고객 비중이 전년 대비 2배로 늘었다. 롯데백화점도 ‘워라밸(일과 생활의 균형)’ 관련 강좌를 전년 대비 150% 늘렸다. 또한 신세계는 아침 개장 시간을 늦추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미리 대비를 하면서 큰 혼란을 피했지만 시간외 수당 등 실질 임금이 줄어 걱정하는 직장인도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남아있는 논란의 불씨

경기도 가평에서 워크숍 전문 펜션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지난해만 해도 여름휴가에 앞서 단합대회 형식으로 직장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는데 올해는 한 건의 예약도 없는 상태다”라며 한숨 지었다.


국회는 52시간제 시행으로 노동자 15만 명의 임금이 41만 원씩 정도 줄어들 거라고 예측했다.


한편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지난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실시됐다. 주중 40시간, 휴일·야간 1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제한되고 이를 어기면 사업주가 처벌 받는다.


50~300인 이하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50인 이하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단 사업주 처벌·단속은 6개월간 유예한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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