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구본준 부회장이 LG그룹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새롭게 그룹을 이끌어 나갈 조카 구광모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다.

그동안 LG역사에서는 장자가 총수 자리를 승계할 때 새 총수의 삼촌은 물론 동업 관계에 있던 허씨 가문도 물러선 바 있다. 업계는 구 부회장이 연말 임원 인사 때 퇴임하면서 계열 분리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 일선 퇴진은 계열 분리 위한 전초 작업
금성반도체 입사…주요 계열사 대표이사 역임

 
㈜LG는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LG전자 구광모 ID사업부장의 신규 등기이사 선임안을 가결했다.


이어 열린 이사회에서는 ㈜LG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했다. 4세 경영 시대의 막이 오르는순간이다. 구광모 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전 회장과 구장경 명예회장, 고 구본무 전 회장에 이은 4세 경영인이다. 1978년 1월 23일생으로 만 40세다.


4세 경영의 막을 올리면서 LG그룹은 그동안 구본무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책임졌던 구본준 부회장의 퇴임을 알렸다.


구 부회장은 이사회 이후 LG그룹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연말 임원인사에서 각종 보직 퇴임 수순을 밟아나갈 계획이다. 구 부회장은 현재 ㈜LG 부회장과 LG전자·LG화학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다. 이 직책을 연말 임원인사에서 모두 내려놓는다.


구 부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으로 현재 1987년 당시 금성사(LG전자) PC·모니터 기획담당 부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LG화학·LG반도체·LG 필립스LCD·LG상사 등을 두루 거치며 일했다. 최근에는 고 구본무 회장을 보필하며 전장부품(VC) 신사업 육성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스트리아 전장업체 ZKW 인수도 구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6년부터는 (주)LG로 소속을 옮겨 신성장사업추진단장 등을 맡으며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했다. 구 부회장은 구 전 부회장의 건강이 악화된 이후부터는 문재인 대통령 초청 호프미팅이나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간담회 등 대외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재계 안팎에서는 구 부회장이 ‘경영 수업’중인 구 회장의 지분 상속과 승진 등 예상되는 승계 수순이 마무리될 때까지 ‘징검다리 총수’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난 5월 중순 구 전 회장의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LG그룹에서도 장자인 구광모 회장의 승계 작업이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형제의 난’은 이번에도 없다

 
LG그룹은 장자가 경영권을 승계하면 다른 형제는 계열 분리를 통해 그룹 경영에서 퇴진하는 장자 승계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구 부회장의 퇴진도 결국 LG그룹 ‘장자 승계 원칙’에 따랐다.


LG의 장자승계 원칙은 과거에도 있었다. 구인회 창업주의 바로 아래 동생인 구철회 명예회장 자손들은 1999년 LG화재를 들고 나와 LIG그룹을 세웠고 여섯 형제 중 넷째부터 막내인 구태회·구평회·구두회 형제는 2003년 계열 분리해 LS그룹을 설립했다.


2대 회장이었던 구자경 명예회장의 차남인 구본능·구본식은 희성그룹으로 독립했다.
이에 따라 구 부회장의 경영 일선 퇴진은 자연스럽게 계열 분리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계열 분리 대상 회사로는 구 부회장이 한때 몸담았던 LG상사와 LG디스플레이 등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LG이노텍과 범한판토스 등도 입길에 오르고 있다.


이 중 LG상사(시가총액 9400억 원)는 지난 2007년 대표이사를 지냈다는 점에서, LG이노텍(시총 약 3조4300억원)은 1998년 LG반도체 대표이사를 지내며 전문성이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99년부터 7년간 이끌었던 LG디스플레이의 경우, 시가총액이 6조5000억 원이 넘고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LG전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품회사라는 점에서 계열 분리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LG이노텍도 그룹이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장부품(VC)사업을 LG전자와 함께 주도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계열 분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LG이노텍이 계열 분리되면 LG그룹이 4대 그룹의 지위를 롯데그룹에 내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다.


다만 LG디스플레이는 LG그룹의 핵심 계열사라는 점에서 구 부회장에게 넘어갈 것인지는 현재까지 미지수다.


LG전자가 약 3조 원에 해당하는 37.90%의 LG디스플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이를 인수하려면 1조 원 이상의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도 구본준 부회장에겐 적잖은 부담이다.


㈜LG 관계자는 “현재 확정된 것은 구 부회장이 연말에 직책을 내려놓는다는 점”이라며 “계열 분리는 이제 천천히 논의를 시작하는 단계이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이 예삿일이 된 한국 기업사에 LG그룹은 흔치 않은 미담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고 있다”며 “다른 기업들도 본받을 부분은 본 받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