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나쁜 입·검은 손…끊이지 않는 ‘권력형 성범죄’

<뉴시스>

[일요서울 | 권가림 기자]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불붙은 ‘미투’(#Me Too·나도 말한다) 운동이 음악계에서 다시 터져 나왔다. 제보에 따르면 성추행 가해자는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A교수다. 피해 사실이 있더라도 재학 중 불이익을 우려해 항의가 어려운 점을 악용한 성추행이었다. 음악계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최근까지도 학생들에게 비슷한 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하지만 경희대 측은 공식문서로 제보가 들어오지 않아 조사를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도제식 교육 문화가 뿌리 깊은 탓일까. 경희대 교수 성추행 사건을 들여다봤다.


- 음악계, 유명 스승 입김 ‘절대적’…도제식 교육의 그림자
- 경희대 측 “성추행 관련 정식접수 이뤄지지 않아 조사 어려워”



제보자에 따르면 A교수는 자신이 논문 지도를 맡은 학생들에게 졸업심사 권한을 언급하며 ‘모텔에 가자’는 성희롱 발언을 하는가 하면 몸을 더듬는 등 성추행을 했다.

A교수는 지난 2012년 9월 자신이 기획한 뮤지컬 작품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을 연주자로 섭외했다. 제보에 따르면 그는 연습과 공연 등이 끝나고 이뤄진 뒤풀이 자리에서 여학생들만 남도록 유도한 후 신체 접촉 등을 했다.

특히 A교수는 당시 술에 취한 대학원생 B씨를 숙박업소로 데려갔다. B씨는 A교수가 옷을 벗는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쳐 나왔다고 제보자가 당시를 설명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B씨의 남자친구는 A교수를 찾아가 어깨를 때리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 같은 A교수의 추행이 학교 내에 퍼지자 학생들 사이에선 ‘A교수를 경계하라’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잠자리 거절하자
“음악계서 불이익 당할 것” 협박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 건 어느 날 밤이었다.

A교수는 지난 2012년 5월 본인이 지도했던 논문 지도 학생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가졌다. 식사가 끝난 후 함께 모임에 참여했던 경희대 특수대학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생 C씨를 본인의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A교수는 제안했다.

대리기사를 불러 C씨와 함께 뒷자리에 동석한 그는 C씨의 몸을 더듬는 등 과도한 신체 접촉을 했다.

욕설과 폭언도 함께였다. C씨가 잠자리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A교수는 끈질겼다. “연락을 받지 않으면 석사 졸업을 시켜줄 수 없고 음악계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할 것”이라고 협박하며 모텔에 갈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C씨는 졸업논문 심사에서 불합격처리됐다. 이후 그는 지도교수를 변경했지만 계속 학업을 이어갈 경우 A교수와 마주쳐야 한다는 두려움에 끝내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 C씨는 현재까지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교수는 동료 교수까지 성추행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그는 지난 2013년 9월 한남동 UN빌리지 앞 일식 이자카야 선술집에서 7명의 동료와 함께 술을 마셨다. 당시 경희대 겸임교수 신분이었던 D교수도 함께였다.

제보에 의하면 A교수는 식사 중간에 화장실로 간 D교수를 뒤따라가 성추행했다. 정신적 고통을 갖게 된 D교수는 당시 식사 자리에 함께 있었던 동료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고소하려 했지만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질적인 갑을 관계 구조
음악계, 유명 스승 입김 ‘절대적’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입을 열지 못하는 피해자도 많다. 개인 간 도제(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거나 받은 사람)식 교육이 불가피하고 갑이 을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직일수록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학교부터 직업까지 소수 인맥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음악계는 이른바 ‘대가’로 불리는 유명 스승의 입김이 절대적이다.

이는 결국 성추행·성희롱 피해가 공론화되기 어려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경희대를 졸업한 한 음악인은 “당시 재학생들도 끊임없이 제보하려고 했지만 좁은 음악계에서 소문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A교수의 지위와 지도교수의 권력이 끼칠 보복이 두려워 신고를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음악계 한 교수는 “A교수는 교육자로서 용납되지 않는 행동을 했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도 너무 잘못된 행실”이라며 “지금도 성범죄를 당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보복이 두려워 피해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을 것이다. A교수가 최근에도 계속 비슷한 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제는 바로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A교수의 성추행 사건은 경희대 졸업생들에 의해 학교 측에 전달됐다.

다만 제보를 보낸 이의 신원 등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조사 진행이 어렵다는 게 경희대 측 입장이다. 경희대 관계자는 “성폭행·성추행 관련 문제가 학교 내에서 발생하면 ‘성평등상담실’에서 조사가 이뤄진다. 이번에 A교수 성추행과 관련한 제보 형식의 메일을 받은 건 사실이다”라면서도 “누가 보냈는지 등의 구체적 신원이 나와 있지 않았으며 도메인이 네덜란드로 돼 있었다. 제보자의 신원이 밝혀져야 통화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정식으로 접수 요청을 해 달라’고 답변을 보냈지만 그 이후로 회신이 없다”라며 확실한 접수 과정만 충족된다면 정식 조사를 통해 처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A교수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대학교수의 제자 성추행은 지위를 이용한 대표적 ‘권력형 성범죄’다. 권력형 성범죄 가운데 대학 내 성범죄 문제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실제 지난 2015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이 같은 권력형 성폭력은 지난 2000년 140건에서 지난 2014년 283건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보복 등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한 피해자 수를 고려하면 피해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

일각에선 대학교수-제자 성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학교 측의 솜방망이 처벌을 꼽았다. 학내에서 발생한 성범죄 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졌지만 대학 측 대응은 여전히 부실하다.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로 신고가 들어와도 철저한 제도적 감시는커녕 피해자 합의를 통해 조용히 덮으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학생들을 성추행했던 교수에게 강의를 그대로 맡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김병욱 의원실에 따르면 성범죄 교수 중 해임이나 파면으로 교수직을 상실한 교수는 11명으로 전체 성범죄 교수의 31.4%에 불과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 가운데 68.6%는 그대로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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