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감사원·사법부까지 요직 곳곳 ‘민변天下’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그야말로 ‘민변 전성시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민변(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출신 인사들이 요직을 두루 차지하고 있어서다. 청와대는 물론 법무부와 법무부 외곽기구에 감사원뿐 아니라 사법부까지 권력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여기에 민변 출신 국회의원도 10여 명 돼 행정부·입법부·사법부 등 3부 권력 핵심에 자리 잡는 추세다. 한국 사회의 신(新)주류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이러한 ‘민변 출세’ 흐름은 이 단체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의 배경과 무관치 않다. 이 같은 ‘민변 라인업’을 두고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뜻을 같이 하는 인사들의 발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특정 단체 출신의 지나친 발탁은 견제와 균형을 상실하고 새로운 권력의 독점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순수 재야’ 민변 출신 김선수, 첫 대법관 제청…‘민변 요직行’ 이슈 부상
진보 성향 대표적 법조시민단체 민변, 文정부 ‘인력 풀’ 역할 출세 가도
창립 이끈 文, 민변과 끈끈한 관계…전해철 등 민주당 내 민변 출신도 다수
“‘국정 코드’ 맞는 인사 등용 당연” vs “특정 단체의 지나친 ‘권력 독점’ 우려”

 
진보 성향의 대표적 법조단체인 민변이 3부의 핵심 요직을 장악하는 모습이다.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와 사법부까지 민변 출신 인사들의 등용이 가속화하고 있는 형세다. 특히 지난 2일 신임 대법관 후보로 민변 출신 ‘재야’ 변호사가 임명 제청됨에 따라 민변 소속 변호사들의 요직 진출이 정·관계의 이슈로 부상했다.
 
판검사 경력 전무
金, ‘통진당 전력’ 도마

 
대법관 후보로 제청된 김선수 변호사(57)는 판검사 근무 경력이 없는 민변 경력의 순수 변호사 출신이다. 김 변호사는 민변 창립 멤버이자 사무총장과 회장을 지낸 바 있다. 김 변호사가 대법관으로 최종 임명될 경우 민변 출신 첫 대법관이 된다.
 
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의 이 같은 ‘파격 발탁’은 법조계와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선 진보 성향의 법원 내 학술단체 ‘국제인권법연구회’(우리법연구회 후신) 출신인 김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래 진보 인사들의 본격 사법부 장악이 시작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수 진영에서는 김 변호사의 ‘통진당 변호 전력’을 사법부 편향의 대표적 사례로 꼽고 있다. 김 변호사는 2013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 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진당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바 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통진당 위헌 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진당을 변호한 만큼 대법관 자격 논란이 있다”며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어긴 헌법 침해 세력에 대한 고민과 이해가 낮은 대법관 후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통진당 전력은 향후 대법관 임명의 최종 관문 격인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우리법연구회·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인사 역시 사법부 주요 요직을 장악하는 추세다.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에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임명됐으며, 법원 인사 실무를 총괄하는 핵심 보직인 김영훈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도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이다. 인권법연구회 간사로 활동했던 김형연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도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에 임명된 바 있다.
 
‘행정·입법·사법’
3부 곳곳 민변 약진

 
청와대와 감사원, 법무부 산하기관 곳곳에서도 민변 출신 인사가 포착된다. 지난해 임명된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광철 선임행정관과 김미경 법무행정관은 대표적 민변 출신이다. 이 행정관은 과거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당시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와 함께 통진당을 대리하기도 했다.
 
법무부가 ‘탈검찰화’의 일환으로 외부에 개방한 법무실장에 사상 첫 비검찰 출신의 민변 이용구 변호사가 발탁됐다. 이 법무실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의 국회소추위원 대리인을 맡기도 했다. 또 법무부 인권국장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자리에도 민변 출신인 황희석 변호사와 차규근 변호사가 각각 기용됐다.
 
50여 일째 공석으로 있던 법무부 산하 재단법인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에도 민변 출신 조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가 선임됐다. 3년 임기의 이사장으로 낙점된 조 교수는 민변 소속 당시 교육문화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법무부 산하 각종 개혁기구에도 민변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검찰 개혁을 위해 대검찰청 내 설치된 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인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은 민변 회장을 역임했으며, 법무부 전반적 개혁을 위해 출범한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인 김진 변호사와 김남준 변호사, 정한중 외대 로스쿨 교수, 차정인 부산대 로스쿨 교수도 민변 소속이다.
 
경찰청 내 설치된 경찰개혁위원회에도 민변 소속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와 김희수 변호사, 최강욱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다. 또 지난해 말 발족한 검찰과거사위원회 위원 9명 중 6명도 민변 출신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기타 정부 부처에도 포진해 있다. 문 대통령이 나온 법무법인 부산에서 한솥밥을 먹은 김외숙 법제처장도 민변 출신이고,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김진국 감사원 감사위원도 민변 소속이다.
 
민변과 각별 文
잘 하면 한 자리 한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도 민변 출신 의원이 적지 않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주로 소속돼 있는데, 이종걸 박범계 진선미 전해철 이재정 안호영 박주민 김해영 의원 등이 포함된다. 야당에서는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 바른미래당 박주현 의원 등이 민변 출신이다. 한편, 지방정부를 책임지는 주요 광역단체장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가 민변 출신인 점도 눈길을 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문회에서 낙마한 인사들 중 민변 출신도 있다. 비상장 주식 등을 이용해 거액의 수익을 올린 ‘주식 대박’ 의혹으로 결국 자진 사퇴한 이유정 전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민변 출신이다.
 
‘민변 전성시대’의 배경에는 민변 출신인 문 대통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문 대통령은 30년 가까이 민변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민변 초기 부산 지부장을 지내면서 창립을 이끌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25일 30주년을 맞은 민변 창립행사에 “헌신과 열정으로 민주주의의 버팀목이 돼 줬다”며 축전을 발송, 신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같은 인연에 힘입어 민변은 현 정부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다.
 
민변은 사법 개혁을 주장해 온 법조계의 대표적인 진보 단체로, 과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부터 2016년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 기획탈북 의혹 사건 등 주요 시국사건 변론을 맡고 있다. 이 외에도 사법·노동·과거사청산·민생경제·국제연대 등 산하에 15개 위원회를 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전국 주요 시·도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5월 말 기준 소속 변호사는 1180명으로 전체 변호사 2만4851명의 5% 정도다.
 
현 정부와 ‘코드’가 맞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앞으로도 정권 요직에 중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에는 정부에서 각종 산하 위원회를 만들 때 지방변호사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민변에 후보 추천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내는 경우가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주류 교체’ 흐름이라고 분석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계 소수이자 비주류였던 민변이 권력 상층부로 발탁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주류 교체’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주류 사회의 표준을 새로 정의하는 ‘뉴 노멀(new normal)’로 표현되기도 한다.
 
‘뉴 노멀’은 그동안 권력 변두리에 머물렀던 계층이 대거 권력 핵심부로 진입하는 것을 뜻하는데, 예컨대 관료가 힘을 갖던 조직에 시민단체 인사를, 보수가 강세였던 곳에 진보 인사를, 고시 출신이 장악한 분야에 비(非)고시 출신 등을 진입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이러한 흐림이 ‘쏠림’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일부 특정 소수 단체가 권력 상층부에 지나치게 몰릴 경우 견제와 균형이 사리지고, 새로운 권력의 독점화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민변 내에서 ‘잘 하면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 분위기”라며 “과열될 경우 충성 경쟁이 벌어질 수도 있고, 이는 정부 전체의 신뢰를 깎아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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