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남북 이웃들과 관계 껄끄러워

멕시코 89년 만에 처음 좌파 대통령 당선
미 동맹 캐나다, 1일 미국산 제품에 보복 관세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지난 1일(현지시간, 이하 같음) 실시된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정당 모레나(MORENA·국가재건운동) 후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64) 전 멕시코시티 시장이 53% 득표로 당선됐다. 멕시코에서 좌파 정권이 탄생하는 것은 89년 만이다. 오브라도르는 오는 12월 1일 6년 단임 대통령에 취임한다. 미국의 많은 언론매체들은 오브라도르가 취임하면 그가 멕시코의 대미(對美) 관계를 험악하게 끌고 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오브라도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변덕스럽고 오만하다’고 했으며, 심지어 ‘들어라, 트럼프!’라는 제목의 책까지 출간해 트럼프의 멕시코 공격과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설치 구상을 비판했다. 오브라도르는 골수 좌파이며, 그가 2013년 창당한 MORENA는 새로 구성될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했고, 여기에 더해 이번 선거에서 주지사 9명 가운데 5명을 당선시켰다. 따라서 오브라도르와 그의 MORENA는 앞으로 급진적인 정책을 펼치는 데 거리낄 것이 없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브라도르는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훨씬 덜 급진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며 혁명보다 안정을 추구할 것이라고 던컨 우드가 지난 3일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기고문에서 예상했다. 던컨 우드는 미국 의회가 우드로 윌슨(미국 28대 대통령, 재임 1913-1921년)을 추모하기 위해 1968년 설립한 연구소인 윌슨 센터에 속한 멕시코연구소 소장으로 멕시코-미국 관계를 20년 이상 연구해 온 전문가다. 오브라도르는 외교 관계에 있어서도 유연한 입장을 보여 왔다. 그는 트럼프와 손발을 맞출 것임을 이미 시사했으며 미국-멕시코-캐나다 간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 멕시코 번영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오브라도르는 당선 소감에서 “부정부패와 폭력 문제를 척결하는 데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겠다"면서 “내수 시장을 강화해 국민이 일하기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데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부정부패·폭력범죄·불평등에 염증이 난 멕시코 민심이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면서 “최저임금 인상·노인 연금 인상·비료 무상 제공 같은 그의 포퓰리즘 공약도 당선에 한몫했다"고 했다. 오브라도르는 대통령 급여 절반 삭감, 대통령궁 대신 자택 거주 등 탈(脫)권위를 내세운 공약도 내걸었다. 빈민가 출신인 오브라도르 후보는 22세이던 1976년 멕시코 국립자치대 정치학과를 졸업하며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인권운동가로 이름을 알린 그는 지방의원·주지사 선거에 계속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하지만 2000년 멕시코시티 시장 선거에서 당선되며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시장 재임 중 노인과 빈민층 학생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인프라 개선 정책을 시행하며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여세를 몰아 2006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근소한 차이로 낙마했다. 2012년 대선에 재도전했지만 역시 패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모레나 정당을 창당하며 기성 정치권과 차별되는 이미지를 가꿔 나갔다. 이번에 삼수 끝에 당선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 트위터를 통해 “오브라도르의 당선을 축하한다"면서 “그와 함께 협력할 것을 기대한다"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오브라도르의 첫 번째 도전은 좌파가 정권을 장악할 멕시코를 보는 국제시장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누그러뜨리는 일이다. 오브라도르가 차기 정부 재무장관으로 선발한 카를로스 우르주아는 당장 선거 다음 날인 2일 투자자들 및 시장 분석가들을 상대로 전화회견을 갖고 안정과 지속의 메시지를 강조했다. 멕시코의 차기 좌파정권이 국제 금융시장과 화폐시장에 그릇된 메시지를 보내면 멕시코 경제가 어떤 징벌을 받는지 오브라도르도 잘 알고 있다. 오브라도르의 두 번째 과제는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효과적으로 펼쳐 땅에 떨어진 법과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전 정부들은 12년간 1000억 달러 넘는 비용을 써 가며 범죄와의 전쟁을 벌였지만 멕시코의 폭력 수준은 낮아지지 않았다. 원만한 대미(對美) 관계도 중요하다. 오브라도르는 선거 유세 때 “트럼프가 공격적인 트윗을 날리면 나는 그것에 응수하겠다”고 말했다. 던컨 우드는 이제 선거가 끝난 만큼 오브라도르는 유세용이었던 이 발언을 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권고했다. 불같은 성격의 트럼프에 같이 불처럼 맞서다 보면 멕시코-미국 관계에 어떤 안 좋은 상황이 빚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오브라도르는 1일 트럼프가 보내온 당선 축하 인사를 계기로 오브라도르-트럼프 관계를 새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오브라도르가 이끌 미국 남쪽의 차기 멕시코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래의 부담이라면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지휘하는 북쪽의 캐나다는 트럼프가 촉발한 무역전쟁의 와중에서 미국에 대립각을 세우는 등 전통적인 미국-캐나다 동맹 관계가 무색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미국으로 수입되는 강철과 알루미늄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한 보복으로 캐나다는 1일 미국산 제품에 126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강철과 철이 대부분인 일부 미국산 제품은 캐나다에서 25% 관세를 물게 된다. 이는 지난 5월 말을 시작으로 미국이 수입 강철에 부과한 고율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케첩에서 피자, 주방 세제에 이르는 여타 미국산 수입품에는 캐나다 국경에서 10% 관세가 부과되는데 이는 미국이 수입 알루미늄에 부과하는 관세율과 같다. 트럼프는 수입 강철과 알루미늄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며 따라서 이들 제품에 추가관세를 물리는 것은 적법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캐나다를 비롯한 미국 동맹국들을 분노케 했다. 미국에 캐나다는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다. 트뤼도 총리는 1일 온타리오 주 리밍턴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에 맞서 단결해 주어 고맙다고 캐나다 국민들에게 인사했다. 트뤼도는 미국산 제품을 구매할지 말지를 고려할 때 “상황에 맞게 선택하라”고 캐나다 국민들에게 촉구했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트럼프는 북쪽 이웃나라의 통상정책을 거듭 공격해 왔다. 캐나다를 공격할 때 트럼프는 세 자리 수인 유제품(乳製品)에 대한 캐나다의 관세를 곧잘 들먹인다. 그런데 유제품이 미국-캐나다 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1%에 불과하다. 지난해 미국은 캐나다와의 교역에서 28억 달러의 흑자를 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