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7월 2일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주중 40시간, 휴일·야간 1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제한되고 이를 어기면 사업주가 처벌받는다.


50~300인 이하 사업장은 2020년 1월부터, 5~50인 이하 사업장은 2021년 7월부터 적용된다. 단 사업주 처벌·단속은 6개월간 유예한다. 일요서울은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변화를 알아본다. 그 중에서도 가계 민심과 임금 하락에 따른 우려에 대해 집중해 봤다.

 
<뉴시스>


자영업자 걱정, 오피스상권 타격 불가피
 
정부가 주 52시간으로 근로 시간을 단축하면서 300인 이상 기업의 직장인들은 생활 방식 변화를 모색 중이지만 기업 주변 상인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상인들은 정책 시행 전 퇴근 이후 자유시간이 많은 직장인들의 유입이 많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식업계 울상

 
취재진이 지난 11일 찾은 을지로의 위치한 기업 빌딩에서 5시 반 이후에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과거 드문드문 퇴근하던 직장인들의 모습과는 분명 차이를 보였고, 일부 직장인 무리에서는 팀장과 팀원이 함께 회사 문을 열고 나와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A(31)대리는 “예전에는 퇴근이 눈치 보였다. 오히려 저녁을 먹고 할 일이 없는 회사에 다시 들어가 상사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가는 일도 더러 있었다”며 “최근 법 시행이후 5시 반에 PC종료제가 시행되면서 눈치보지 않고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 행선지를 물어봤더니 자기계발을 위해 학원에 간다고 했다.


그의 입을 통해 또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친목 도모 차원의 회식이 없어졌다는 것.


거래처와 저녁식사도 줄이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는 “영업사원들에게 거래처와의 상담은 낮에만 진행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면서 “직원들이 개인적 친분으로 거래처와 저녁을 먹는 것까지는 말릴 수 없지만, 법인카드 사용은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법 시행에서 팀원 간 회식이 업무시간에 포함되지 않다는 해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고용부의 근로기준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내 친목도모를 위한 회식은 근로시간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들은 회식을 가급적 자제하거나 직원 동의하에 최소한도로 시행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유통 등 일부 업계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유연근무제를 도입, 조기 출근조와 마감조를 분리해 다함께 모이는 회식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기업들은 거래처와의 식사나 영업상 접대 역시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최소화하고 가급적 근무시간 내에 대외 업무를 마무리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유흥, 외식업계는 일단 부정적 여파가 클 것으로 우려한다.


을지로 일대에서 오랜 기간 고깃집을 운영했다는 B(48)씨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한바탕 소용돌이를 만들고 지나가니 미투(ME TOO)운동 논란으로 기업 회식이 줄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회식마저 제재를 받게 되면서 매출은 4~5년 전에 비해 1/3로 줄어들었다”며 “매출이 오를 것을 기대하는 게 빠른지 식당을 접는 게 옳은 선택인지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이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국내 외식업계의 영향을 조사한 결과, 식당 10곳 중 6곳 이상(66.2%)은 매출이 감소했다. 평균 매출이 22%나 줄었다.


일부 식당에선 올 초부터 오른 최저임금 여파로 한 차례 가격을 올린 데 이어 회식 손님이 줄어들 경우 메뉴 가격을 또 올리겠다고 벼르고 있다.  을지로 일대에서 고급 한식당을 운영하는 C(45)씨는 “점심, 저녁 영업을 하면 근무시간이 길어 최저임금 영향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는 데다 물가까지 오르고 이젠 박리다매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안 돼 가격을 올리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해명했다.


택시·대리기사들의 근심도 엿들을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한 대리운전자 L(40대·남)씨는 대리운전 전화가 오지 않아 초조해 하고 있었다. 판교에서 서울로 손님을 태운다는 L씨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오후 11시쯤 되면 손님을 볼 수 있었는데 이번 주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런 제도가 시행된 것을 알았다면 오늘 판교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부어라 마셔라’식의 부정적 회식문화가 사라지는 대신 개인적 모임이나 가족 단위 건전한 외식문화가 활성화돼 외식업계에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주류업계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회식 빈도가 줄면 아무래도 술 소비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수입맥주나 위스키, 와인같은 고급 술을 찾는 이들이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형 마트나 편의점 등 유통업계에 긍정적인 요인이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현재 주류시장은 가정과 유흥주점이 반반씩 차지한다”면서 “회식이 줄어도 개인 모임이나 혼술이 늘어날 수 있는 만큼 당장 어떤 영향이 있을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고용부·직장인 동상이몽

 
한편 고용부는 회식은 근로로 볼 수 없다면서도 회식 때 다치거나 하는 사고에 대해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건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왕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은 “회식 관련 모든 사고는 근로자 보호의 필요성이 높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만, 근로계약에 의해 정해진 업무가 수행돼야 임금지급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을 따지는 것은 좀 더 엄격한 기준을 갖고 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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