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 열정이 필요

미국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공화당 차기 주자로 거론되던 촉망받는 정치인이다. 28살에 하원의원이 됐고, 45살에 미국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되었다. 폴 라이언의 정계은퇴 선언은 미 정가에 충격을 던졌다.
 
여러 해석이 뒤따랐지만 폴 라이언은 가족, 특히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라고 은퇴 이유를 밝혔다. 앞날이 창창한 정치인이 비리나 치정에 연루된 것 없이 정치를 떠나는 풍경은 우리에게는 아직 낯설다.
 
우리 정치사에도 여러 정치인들이 정계를 은퇴했다. 민주화의 거목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한 다음 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DJ에게서 희망을 보았던 많은 사람들의 낙담하고 가슴에 구멍이 뚫렸다.
 
다음 해 1월 그는 영국으로 떠났고 2년여 뒤인 1995년 7월 18일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DJ의 정계은퇴는 대선 패배 이후에 닥칠 정적들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DJ의 정계은퇴와 복귀는 대선 승리로 보답받았다.
 
한때는 유력 대권 주자였던 손학규 전 의원도 정계은퇴를 한 적이 있다. 손학규는 2014년 7월 30일 치러진 수원 병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전남 강진의 만덕산에 있는 토굴로 들어갔다. 무려 2년 동안 토굴 생활을 했지만 그의 정계복귀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DJ의 발자취가 서린 호남에 은거해서 DJ의 성공모델을 따르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전망대로 손학규는 정계에 복귀했지만 DJ와 달리 매번 타이밍을 놓치면서 이제는 ‘타이밍의 마술사’로 희화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안철수 전 의원이 정계은퇴를 하느냐 마느냐가 정치권의 화제가 됐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3위에 그치고, 바른미래당이 완패하면서 ‘안철수의 시간’이 끝났다는 평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안철수 전 의원은 은퇴가 아닌 후퇴를 선택했다. 그는“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면서 독일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2011년 서울시장 후보 양보에서 시작해 2017년 대선 출마와 바른미래당 창당까지 달려온 안 전 의원의 정치시계는 총선을 앞두고 다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모든 직업, 직종에는 은퇴가 있고 대부분의 직장에서 정년퇴직은 반강제적이다. 정년은 나이를 기준으로 하지만 신체적, 정신적 노화 때문만은 아니다.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야 하는 사회적 선순환의 필요성 때문이다.
 
일할 만큼 했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줘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요즘은 정년에 앞서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으로 40대에 구조조정을 당하는 경우도 많으니 60세 정년도 행복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에는 정년이 없다. 20대 국회의원은 2년 전 등원 당시 평균 나이가 55.5세였다. 다른 직종에선 정년이 지났을 60대 이상은 86명이었다. 70세가 넘은 국회의원도 5명이나 있었다. 정치에 정년이 있다면 20대 국회의원 중 3분의 1 정도가 은퇴했을 것이다.
 
현실은, 정년을 훌쩍 넘은 노년의 정치인들이 경륜을 무기로 정치를 좌지우지한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도 73세의 문희상 의원이 선출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에 66세인 이해찬 의원이 출마한다고 해서 술렁이고 있다.
 
정치는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 열정이 필요한 분야다. 선출직이라는 것이 방패가 될 수는 없다. 은퇴해야 할 때 은퇴하지 않는 정치는 결국 유권자의 결심을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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