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리 시험장 폐쇄 언급만 하며 ‘지연 전술’…진정성에 ‘회의론’ 증폭

<뉴시스>
“북, 비핵화 언급 없어” vs “미, 체제 보장 의지 없어”
‘비핵화↔체제 보장’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신경전 가열
‘先 비핵화 vs 동시 행동’ 이견…향후 협상 험로 예고
중재자 나서는 文 ‘경제·종전 선언’ 카드로 북미 설득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6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있었다. 6.12 북미정상회담 이후 첫 고위급 인사의 방북이라는 점에서 북미협상의 분수령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비핵화에 관한 진전은 전혀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근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게 보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에서도 비핵화 관련 언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북한이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기존의 동창리 엔진시험장 폐쇄 문제만을 언급하면서 ‘시간 끌기’로 하나하나에 일일이 보상받는 ‘살라미 전술’에 본격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을 두고 비핵화 의지가 진정 있느냐는 회의론이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한미 양국은 6.12북미회담 이후 북한이 그간 극도의 거부감을 보인 한미연합훈련을 비롯해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 최근엔 한국정부 차원의 비상연습인 을지훈련까지 대부분의 군사훈련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국내외에서는 북한도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해체와 같은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북미회담 한 달, 비핵화 진전 ‘無’
 
하지만 북미회담 이후 한 달이 지났지만 이러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은 비핵화 문제를 푸는 분수령으로 꼽혔으나 ‘빈손 방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비핵화 시간표에 대한 합의, 시간표까지는 아니지만 큰 틀에서의 비핵화 로드맵, 그리고 핵 폐기 검증 대상과 방법 등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합의가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과 기대가 나왔지만 이를 둘러싼 진전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에도 북이 요구하는 ‘관계 개선’만 언급이 돼 있을 뿐 북미 간 핵심 쟁점인 비핵화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북한은 이번 협상 이후 외무성 담화를 통해 미국이 비핵화 문제를 두고 “강도 같은 일방적 요구”를 했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북한도 비핵화 로드맵을 보여주지 않고 관계 개선 문제를 다시 한 번 강하게 제기했다는 점에서 ‘시간끌기’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한 매체 인터뷰에서 “(현 상황을 보면) 북한이 비핵화 문제를 굉장히 뒤로 늦추겠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북한이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오로지 (동창리 미사일) 엔진시험장 폐쇄 문제만 얘기한다”고 말했다.
 
김 안보전략실장은 “미국은 핵물질 생산시설과 저장시설, 핵무기 생산시설과 저장시설 등에 대한 리스트 제출과 시설 동결 등 초기 이행 조치를 바라는데 여기에 대해 북한이 전혀 언급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번 폼페이오 방북 때 체제 보장 측면에서 ‘종전 선언’을 강하게 요구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없는 만큼 이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고 버티면서 회담은 종료됐다. 이러한 북한의 종전 선언 요구도 ‘지연 전술’이라는 분석이 있다.
 
미국이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하자 현실적으로 어려운 7월 종전 선언(정전협정 65돌에 맞춘)으로 맞받아치면서 비핵화 협상을 뒤로 늦추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비핵화 요구에 무리한 요구로 되받아치면서 비핵화 문제를 지연시켰다는 분석이다.
 
“서로 다른 이행 방식, 이견 좁혀져야“
 
북미정상회담 이후 양국 간 협상 물꼬는 텄지만 비핵화 문제에 있어 북한의 기본 전략인 지연 전술이 되풀이되면서 결국 이번에도 협상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완료됐다”던 미군 유해 송환 문제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당초 12일 양국이 관련 실무회담을 열 예정이었으나 15일로 다시 늦춰졌다. 북한이 유해 송환이나 미사일 엔진실험장 폐기에 대해 일일이 보상을 받으면서 협상을 이끌어 나가려고 하는 ‘동시 행동’ 전술을 강하게 고수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북한의 지연 전술로 비핵화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 한쪽에만 치우쳐 사안을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자고로 협상이란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으며 입장 차를 좁혀가는 것”이라며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라고 말하려면 ‘미국의 체제 보장 의지가 후퇴한 것은 아닌가’라고도 반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 ‘비핵화↔체제 보장’을 주고받는 협상에서 일방적으로 비핵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양 교수의 설명이다. “강도 같은 요구”라며 북한이 반발한 것도 체제 보장에 관한 진전된 안 없이 일방적으로 비핵화만 요구한 데 대한 문제 제기라는 의견이다.
 
이와 관련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TBS 라디오에서 “미국이 막 가서 ‘당장 비핵화 해내라’고 하는데 제가 수 백번 얘기를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말과 종이로 (체제 보장) 약속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그거 믿고 어떻게 북한 핵시설과 핵무기들을 폐기하느냐”며 “자기들은(미국은) 찢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여기는(북한은) 큰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센토사 선언’에 따라 북한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1항)과 함께 종전 선언, 불가침조약, 북미수교 등으로 표현되는 평화체제 구축(2항)을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3항)와 미군 유해 송환(4항)을 각각 원하는 상황이다.
 
결국 비핵화와 체제 보장에 관한 구체적 이행 방식을 두고 서로 다른 양국의 셈법을 얼마만큼 좁힐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양 교수는 “미국은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원하고 있고 북한은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따른 보상을 원하는 ‘동시 행동’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서로 다른 이행방식에 대해 이해관계가 좁혀지지 않는 한 협상은 험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북미협상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우리 정부의 역할이 다시 중요해지는 시기가 오고 있다.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양국을 설득하기 위해 현 정부의 중재 역할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경제 번영’ 고리로 비핵화 유도하는 文
 
문재인 대통령은 싱가포르 국빈 방문 마지막 날인 지난 13일(현지시간) 권위 있는 세계적 강연 프로그램인 ‘싱가포르 렉처’의 강연자로 나서 한반도 항구적 평화 정착 등에 관한 구상을 밝히며 다시 한 번 중재자를 자임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소강상태에 빠진 북미협상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 ‘경제’ 카드를 꺼내들며 북미 양국의 시선을 끄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한국은 그 누구보다 평화를 원한다. 나는 한국도 대담한 상상력을 실천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며 “한국에는 상가포르에 없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또 하나의 기회가 있다. 바로 남북 경제협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을 통해 대북제제가 해제되면 한때 활발했던 북한과 아세안 간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북한과 아세안 모두의 경제발전의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서도 “김 위원장은 이념 대결에서 벗어나 북한을 정상국가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욕이 매우 높았다”며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지킨다면 자신의 나라를 번영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 번영’을 고리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도록 적극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북한이 원하는 평화체제의 첫 관문에 해당하는 종전 선언도 연내를 목표로 추진 중이다. 오는 9월 말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3국 또는 중국까지 참여하는 방안이 유력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올해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면서 “시기와 형식 등에 대해서는 미국과 북한 등과 긴밀히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문 대통령은 싱가포르 렉처 과정에서 북미 양국에 ‘약속를 지키지 않으면 심판받을 것’이라는 경고성 발언도 내놓아 주목된다. 그는 “만약 국제사회 앞에서 (북미) 정상이 직접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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