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전 국민대 교수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거국내각 총리로 내정되면서 이미 넘어간 사람이니 새삼스레 ‘갔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때는 노무현의 참모였던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반발은 없었다. 정치권에서는 다들 능히 그럴 사람으로 여겼다. 김병준은 자신을 위한 때가 되길, 기회가 오길 기다린 지 오래된 사람이다. 비록 강태공처럼 진득하지는 못했어도 어쨌든 김병준은 평범한 사람은 하기 어려운 선택을 했다.
 
김병준은 처음부터 야심이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병준은 정치나 입각에 욕심이 없다고 했지만 야심을 내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병준은 “이미 학문으로 정상이 보이는데 뒤늦게 무슨 정치냐? 다만 모순된 정치, 사회 구조와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고 싶은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에서 여러 직책을 받은 이유를 들었다.
 
학문의 정상이 보인다는 말도 학자로서 쉽게 주워섬기기 어려운 말이지만,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고 싶다는 말은 정치나 입각에 욕심이 없다는 사람이 내보일 속내는 아니다.
 
김병준이 내면의 야심을 외면하고 자신의 진가를 몰라주는 진보 개혁 진영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 김병준이 자유한국당으로 간 것은 비난받을 일은 아니고, 직업 선택의 자유에 속하는 일로 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정치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고, 김병준은 자신의 야심을 펼칠 자유가 있다. 평가는 엇갈린다. 김병준이 자유한국당을 시대에 맞는 보수 정당으로 탈태환골시키면 국가적으로도 좋은 일이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김병준이 정치학자로도 공직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낸 적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시중의 왈가왈부와는 별개로 김병준은 자신의 선택이 어떤 의미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우선, 김병준의 월경(越境)은 노무현과 이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실 김병준은 박근혜의 거국내각 총리를 받아들이는 시점에서 노무현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노무현을 끊임없이 소환해서 정치에 이용하는 자들은 지금도 차고 넘친다. 노무현이란 사람을 만난 인연이 인생의 홍복(洪福)이 된 국회의원, 장관, 차관도 한둘이 아니다. 그 목록에 굳이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까지 더할 필요는 없다. 자신을 발탁한 당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하지만, 김병준에게 노무현의 그늘은 깊고 넓어 보인다. 자신의 행보마다 노무현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논리가 구성되지 않는다. 김병준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이유로 ‘진영논리, 계파싸움을 넘어선 정책경쟁이라는 노무현의 꿈’과 ‘노무현의 상생의 정치’를 들고 있다.
 
지금도 노무현의 죽음을 떠올리면 자유한국당 쪽을 곱게 볼 수 없는 친노 진영에서는 기가 막힐 일이다. 사실, 김병준 입장에서도 노무현은 더 이상 후광이 되기 어렵다. 망가진 보수 진영을 구원할 메시아에게 “노무현이라면...”식의 어투는 어울리지 않는다.
 
김병준이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려면 노무현과 다른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의원 입법으로 초중고 커피자판기를 금지하는 것을 두고 국가주의 운운한 것은 그럴 법하다. 실용주의 대 국가주의 구도로 대여 투쟁을 해보겠다는 의도가 보인다. 일단 금을 그었으니 어떤 것들로 성을 쌓고 공성전을 벌일지 두고 볼 일이다.
 
자유한국당이 김병준에게 손을 내민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이 지금처럼 망가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김병준이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노무현의 아류에 그치지 말고 자신만의 콘텐츠와 노무현을 넘어서는 불굴의 용기를 내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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