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치·정책·공천 투명화보다 ‘사람’ 중요… 先인적 청산해야
- ‘당헌·당규’ 당대표 권한…‘당협위원장 교체’가 답(答)

 
자유한국당 혁신 비대위원장으로 김병준 교수가 추대됐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가치와 논쟁’의 중심이 되는 정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계파 논쟁과 진영 논리를 배척하고 만약 현실 정치를 내세워 반발한다면 싸우다가 거름이 되는 게 영광이라고 비장함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 교육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에 지명됐다가 철회됐고 한국당 내에서 꾸준하게 차기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됐다. 마침내 ‘뜻’을 이룬 그에게 여야 반응은 싸늘하다.
 
친박계에서는 김 위원장이 홍준표.김성태 등 비박계가 ‘김병준 카드’를 내세워 차도살인(借刀殺人,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뜻) 하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차기 총선은 1년 10개월이나 남았지만 어떠한 형태든 자신들을 내칠 것이라는 두려움에 ‘김병준 비대위’에 대해 비토를 놓고 있다.
 
반면 야당에서는 ‘盧의 남자’가 한국당 비대위원장이 된 것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한 친문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올리지 마라’, ‘권력의 금단현상에 시달리는 자’라고 혹평을 했다. 또 다른 중진급 의원은 참여 정부에 김 위원장이 몸을 담고 있었지만 ‘친재벌 성향’이 강한 인물로 묘사했다.
 
김병준 비대위는 당 안팎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친박계는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으로 재미를 본 여당 입장에서 한국당의 공격 패턴과 유사하게 대응하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남의 집 잔치에 감 내놓아라 배 놓아라 해도 안 되지만 이정도면 초상집에 가서 상주보고 자리 비우라는 꼴이다.
 
대형 악재는 아니지만 ‘손 끝에 가시’같은 사건도 터졌다. 바로 ‘골프접대 논란’이다. 경찰은 지난해 8월 강원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있었던 KPG투어 프로암 경기에 초청을 받은 김 위원장이 118만 원가량의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할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초대’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정당국의 분위기는 강경한 모습이다.
 
김 위원장이 본격 비대위를 출범시키기도 전이다. 하지만 아군과 적군뿐만 아니라 사정기관까지 나서 전면적으로 ‘김병준 흔들기’에 나서는 모양새가 ‘음모론’까지는 아니어도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길이 가시밭길인 이유는 자명하다. ‘사지’에 몰려 있는 친박계의 반발은 차치하고라도 여당 입장에서는 지금처럼 제1야당이 지리멸렬해야 향후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에 도움이 된다. 또한 차기 총선에서 지방선거와 마찬가지로 대승을 이끌어 내 중앙-지방-의회 권력을 다 잡을 수 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김 위원장이 한국당을 제대로 재건시킨다면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신은 여기도 대한민국 저기도 대한민국”이라고 강하게 여당의 공격에 맞서고 있다. 또한 “노무현 우파가 있고 노무현 좌파가 있는데 난 노무현 우파”라고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전통 보수층 끌어안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나아가 김 위원장은 ‘보수 가치 재정립’과 함께 분명한 ‘인적 청산’을 예고하고 있다. 보수의 가치와 정책의 재정립은 보수 진영 내 ‘엘리트층’을 겨냥한 발언으로 읽힌다. 실제로 보수 여론을 이끄는 영남 보수 원로들의 주장은 ‘한국당 내 당풍을 바꿔야 하다’, ‘진보에 빼앗긴 보수의 전통적 가치를 되찾아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당헌·당규’에 따른 당대표 권한을 분명하게 행사할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친박 비박이니 과거 지향적인 관점의 인적청산에 반대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이념을 잣대로 인적 청산을 할 것임을 암시했다.
 
김 위원장의 임기는 제한이 없지만 2020년 총선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공천권을 통한 인적 청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럴 수도 없다. 한국당 내 혹자는 ‘투명한 공천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차기 지도부 몫이지 김 위원장의 몫이 아니다.
 
김 위원장이 만약 공천권에 욕심을 보인다면 그 즉시 한국당은 사분오열되고 혁신은 둘째치고 김 위원장도 죽고 한국당고 죽게 된다. 또한 당 조직 개편이나 당명 변경이니 하는 것도 차기 지도부에 일임해야 한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 필요가 없다.
 
김 위원장은 ‘당헌·당규’에 따라 당 대표로서 당협위원장 교체 권한을 내세우고 이는 모습이다. 현직 국회의원이 통상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치와 이념에 맞지 않는 당협위원장을 교체함으로써 사실상 물갈이를 하겠다는 복안이다. 정책과 가치 그에 따른 기준에 따라 인적 청산을 해야 잡음이 없다.
 
하지만 그 전에 거쳐야 할 일이 있다. 바로 책임과 반성이다. 헌정 사상 초유의 자기 당 소속 대통령이 탄핵되고 그로 인해 정권을 빼앗긴 것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첫 단추로 탄핵 백서팀을 비대위 산하에 둬야 한다. 여력이 된다면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백서를 부록으로 만들어 33%의 보수 세력에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보수의 최고 덕목이 책임을 지는 자세다. 이를 통해 김 위원장은 당내 합리적인 중진 의원을 대상으로 ‘자발적 기득권 내려놓기’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 당협위원장직을 포기하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든 아니면 2선 후퇴를 하든 캠페인처럼 자발적으로 하게 만들어야 한다. 인위적인 인적 청산은 앞서 언급했듯이 김 위원장이 ‘구원투수’가 아닌 ‘파괴자’로 남을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력이 된다면 새로운 보수정당의 구심점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정치를 한다. 누가 차기 보수 정당의 구심점이 되느냐에 따라 당이 지속될 수도 사라질 수도 있다. 민주당은 ‘정치를 안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설득해 권력을 교체하는 데 성공했다. 대안으로 안철수 전 의원도 영입했다. 민주당이 10년 정권을 잃어버린 후 되찾는 과정을 한국당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때다. 김 위원장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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